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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우공》이라 불리우는 사람

편집/기자: [ 전춘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6-03-14 16:15:51 ] 클릭: [ ]

한국 제주도 분재예술원 성범영원장을 만나

1995년 11월 17일 당시 국가주석인 강택민이 분재예술원을 방문했다.

1998년 4월 30일 당시 국가부주석인 호금도가 분재예술원에서 나무를 심고있는 장면.

《생각하는 정원》 중문판출판기념식에서 싸인하고있는 성범영원장.

불모의 땅에 기적을 창조한 이가 있다. 한국 제주도 북제주군 어느 한 척박한 땅에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아름다운 《분재예술원》(盆栽論減苑)을 일떠세워 세상을 놀라게 한 그, 그가 바로 이 예술원의 원장인 성범영씨. 중국의 현임 국가주석인 호금도, 전 국가주석인 강택민 등을 비롯해 중국의 많은 지도자들이 몸소 이 곳을 다녀가면서 제자를 써주어 중국과 특별한 연분이 있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는 한국의 분재예술인이다. 바로 중국인으로부터 《한국의 우공》이라는 평판을 받고있는 성범영원장을 만난것은 일전 북경현대문학관에서 있은 그의 저서 《생각하는 정원》출판기념식에서였다.

세계 유일의 분재공원

성범영은 지난 세기 60년대에 원래는 상인이였다. 와이샤쯔 전문 가공공장이 있었고 서울의 번화한 거리에 복장 전문점도 있었다. 원래 까근한 성격에 항상 믿음을 장사에서 첫째 가는 요소로 간주한 그는 한때 한다 하는 복장상인으로 소문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하루 제주도에 있는 한 친구의 전화가 그의 인생길을 뒤바꿔 놓을줄이야. 어릴때부터 시골에서 자란 성범영은 수목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고있었다. 그는 친구의 말을 듣고 제주에 농장을 차릴 타산으로 땅 한뙈기를 샀고 이때로부터 그의 기나긴 수목인생이 시작되였다. 당시에 북제주군에 사놓은 이 땅은 군데군데 림지가 있고 가시덤불이 뒤엉킨 황무지였다. 이 척박한 곳을 개조하려고 개척의 첫발을 디뎠던 성범영원장은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감개를 털었다.

《저도 당시에는 이곳이 지금처럼 이렇게 아름다운 분재공원이 되리라곤 생각못하였지요. 허나 이곳의 면모를 꼭 개변해야 하고 또 반드시 개변하고야말것이라는 신념만은 굳혔습니다. 제주에 온 그날부터 흙을 한삽한삽 퍼옮기고 여기저기 널려있는 돌을 하나하나 옮기면서 일을 시작하였지요. 그러는 저를 보고 당지의 사람들은 <미치광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아마 당시에 그들도 리해하기 어려웠음은 당연한 일이지요. 어지간한 신념과 의지 가지고는 이같은 창업을 한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였으니까. 허나 저는 결국에 해냈습니다.》

수수한 갈옷차림, 흰 머리, 흰 눈섭 모두가 성범영원장의 범상치 않는 경력을 말해주듯 퍽 인상적이였다.그 간고한 창업초기에 전기가 없어 초롱으로 조명하고 수도물이 없어 비물을 받아 생활용수로 하였다는 이야기, 더우기는 고된 일을 하다가 여러번 다쳐 6번이나 수술대에 오르지 않으면 안되였던 등등의 사연들은 진한 감동을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1992년 7월, 마침내 이 황량한 곳에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분재예술원이 고고성을 울렸고 세계적으로 유일한 분재공원으로 널리 알려졌다. 현재 부지면적이 33000평방메터되는 이 예술원에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분재들이 수없이 진렬돼있으며 독특한 풍격과 매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흡인하고있다.

중국과 특수한 인연을 맺아

성범영원장이 중국과 특수한 인연을 맺은것은 바로 1995년 11월에 당시 국가주석인 강택민이 제주도를 다녀가면서부터였다. 이해 강택민주석은 몸소 분재예술원을 돌아보고 감동한 나머지 제자까지 써주었던것이다. 이에 앞서 4월에 《인민일보》 주필인 범경의가 분재예술원을 방문한후 기행문을 써 신문에 발표하였는데 이것을 계기로 분재예술원이 최초로 중국에 알려지게 된것이다. 1998년 4월에 당시 국가부주석인 호금도도 분재예술원을 방문, 그는 몸소 정원에 나무를 심는것으로 중한우의를 표시하였다. 중국의 《인물》잡지는 《한국우공의 조경이야기》라는 기사를 써 실음으로써 더욱 홍보가 빠르게 되였다.

중국지도자들의 방문은 당연하게 여론의 주목을 받았고 따라서 분재예술원도 보다 넓은 범위에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그후 세계 여러 나라 고위층 지도자들이 련속부절히 발길을 돌렸는데 방문록만 하여도 50권이 넘는다고 하였다.

《사실 저의 분재예술원은 95년도를 전후하여 제일 어려웠습니다. 별로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고 찾아주는 사람은 더욱 얼마 안되였습니다. 허나 중국의 지도자들이 다녀간후부터는 상황이 완전 달라졌지요.우선 중국인들이 밀려들기 시작하였는데 많을 때에는 하루에 수천명으로 정원이 전에없이 흥성거렸지요.중국인들이 보는 시각도 매우 달랐습니다.단지 분재의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분재예술을 그 어떤 신념과 리상 그리고 위대한 철학이 조화된 결정체로 보더군요.  정말로 그들의 높은 견식과 학식에 놀라움을 금치못하였습니다.》

금방 걸음마를 타기 시작하여 휘청거릴 때 중국지도자와 중국인들의 련속부절한 방문으로 재빨리 정상걸음을 걷게 되였다며 성원장은 깊은 감격에 젖어있었다.  한 농부로서 이처럼 외국의 고위층 지도자를 맞이했다는것 역시 간단치 않은 일이라 분재예술원은 2001년에 한국관광부문으로부터 《2001년 외교창구공로패》를 수상했다.

성범영원장은 때를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중국인들과 교류를 하면서 많은 벗들을 사귀였으며 여러차례 초청을 받고 중국에 와 강연도 하였다. 2000년도에 북경림업대학의 초청으로 이 학교의 원림교수와 조경학과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여 환영을 받았고 2002년도에는 유일한 외국인으로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1000개 현 공정》1주년 기념식에 참가하여 《농부의 일생》이라는 테마로 연설을 하였다.

우선 부지런한 농부이면서 또 이름있는 분재예술가인 성범영원장은 지금은 외교에서도 남다른 재질을 보여줘 《농부외교가》라는 별칭도 갖고있다.

《생각하는 정원》―개척과 창업의 서사시

수목인생을 살아 36성상, 그 기나긴 세월속에 엮어져있는 수많은 비장한 사연과 뜻깊은 이야기를 담은 책 《생각하는 정원》이 출판되자 대뜸 독자들로부터 반영이 강렬했다.

분재예술원의 각종 분재의 배육과정과 이 정원에서 벌어진 재미있는 사례들을 주요내용으로 36년간의 간고한 창업의 려정을 서술한 이 책은 세계 분재예술계 특히는 분재예술의 발상지로 지목되고있는 중국인들의 지대한 호감을 자아냈다.

이 책은 우선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기자인 리옥화씨에 의해 중문으로 번역, 그는 다음과 같이 번역소감을 털고있다.

《한국방문중에 동료의 알선으로 제주도의 분재예술원을 가보게 되였는데 세상에 이런 곳도 있는가싶게 그 아름다움에 깊이 매료되였습니다. 특히 성범영원장님의 창업사를 듣고 정말로 한국의 우공이 되기에 손색이 없는 분이라고 생각하였고 <생각하는 정원>을 중문으로 번역하여 중국에 알리려는 강렬한 욕망도 생기게 된겁니다.》

이 중문판의 서언을 쓴 원 《인민일보》 주필인 범경의는 《분재의 철학, 철학의 분재,한 분재철학가의 심각한 사색》이라 내심의 격동을 토로하면서 그 영향력을 중국전역을 휩쓸었던 《대장금》 못지않게 평가하였다.

《생각하는 정원》의 중문판 출판기념의식이 지난 2월 17일 북경현대문학관에서 열렸는데 이날 중공중앙대외련락부, 전국정협, 인민일보사, 중국작가협회 등 중국의 여러 부문의 지도자, 학자 그리고 한국의 유명인사 수백명이 참가하였다. 이들은 중국의 인민출판사와 한국의 분재예술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기념행사는 중한우의의 새로운 발전단계를 의미한다고 인정하였다.

특히 기념의식의 축하문에 이 책의 의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있어 특별히 음미할 필요가 있다.

《<생각하는 정원>에서 체현한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개척하는 우공정신은 사회주의 새농촌을 건설하는 당중앙의 새로운 목표를 실현함에 있어서 수요되는 새로운 정신력량이다. 강택민주석이 분재예술원을 방문할 때 《한 보통농부의 개척정신을 따라배우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정신은 바로 우리가 사회주의 새 농촌과 초요사회를 건설하고 특색있는 사회주의 사업의 새 국면을 열어나가는데 수요되는것이다. 때문에 이 책의 출판가치는 단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의 철학적사고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발전관과 전면적으로 초요사회건설을 관철락착함에 있어서 적극적인 의의가 있는것이다.》

한 중국인은 분재예술원을 방문한후 《생각하는 정원 성공의 길》이라는 제자를 남겼는데 말그대로 《생각하는 정원》은 이제 수많은 사람들을 성공의 길로 이끌것이며 이로 하여 한국의 아름다운 섬―제주도에 뿌리내린 분재예술원은 보다 눈부신 빛을 뿌릴것이고 이 예술원의 창조자인 성범영원장은 더욱 큰 성공을 안아올것이다.

본사기자 전춘봉: quancf@jlcxwb.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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