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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만큼이나 희귀한 고고학의 대가 김창주박사

편집/기자: [ 김경 특약기자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7-10-15 15:19:18 ] 클릭: [ ]


중국 유일의 선후배가 없는 고고학권위 김창주박사는 조선족이다.

너무도 뜻밖인 박사님

물론 우리 신문에서 사회 여러 분야에서 우수한 업적을 쌓아가는 조선족들을 찾아 독자들에게 널리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특별기획란을 만들어 이미 여러편의 기사들을 다루었지만 고고학에도 이런 전문가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고고학을 전공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가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우리 시대에 언제 전공과목을 선정할 계제가 있었습니까? 대학에 입학하는것만도 꿈같은 일이였는데!》 라고 대답하는것이였다. 자연히 그가 걸어온 인생길이 대한 화제에 오른다.

그의 할아버지는 1900년대 경기도 김해시 부근 동네의 유명한 한학자였다고 한다. 학원을 설립하고 학생들에게 우리글을 가르치다가 《한일합병》후 일제의 민족어 말살탄압으로  쏘련 원동지방으로 이주, 원동지역에서 태여난 부친이 1930년대에 연변으로 다시 이주한다. 연변 자치주 설립의 핵심맴버로 사업한 부친은 그후 연변자치정부 교육국장, 시 가무단 당서기, 연변과학원 등에서 사업하다가 문화대혁명시기 《문화부내 주자파로》로  락인되여 왕청으로 하향한다.

당시 연변 제1중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김창주 박사는 《주자파자제》로 분류되여 길림성 안도현 집체호에서 농사를 하게 된다. 1년반후 왕청에 계시는 부무님들이 돌봐줄 손이 수요되여 상부에 호소하여 왕청복흥공사로 이동하는데 이 공사는 훈춘현과 잇닿은 하늘아래 첫 동네로 그때가지 49년에 전국적으로 있은 《토지개혁》도 이루어지지 않은 심심산골이였다. 농사일하는 여가시간에도 언젠가는 해명이 될것이다, 그때는  기어코 대학을 가야한다, 일생에 반드시 대학공부는 할것이다라고 작심하고 손에서 책을 놓치 않았다고 한다. 그때는  연변 1중을 졸업하였다고 하면 연변일대 민족사회에서는 선망의 대상이였는데 졸업후에도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 왕청현 중학교에 화학 대리교사로 임용되여 주 3회 무보수강의도 하게 된다.

당시 주자파대상의 자제들의 능력에 따르는 제일 큰 보상과 신임이 《도시호구》로 이적시켜주거나 혹은 해방군에 보내주는것이였는데 여러차례 현 지도부의 추천을 받았지만 대학 진학의 꿈때문에 모두 사절하였다고 한다.

마침 세월이 바뀌여 1968년 교육중시정책의 혜택으로 고시에서 현 수석으로 대학진학의 길이 열리게 된다. 개혁의 초시기여서 수석이였지만 장춘광산지질대학(2000년 길림대학에 합병) 지질학부에 편입하게 되였다. 주자파 자제가 대학에 간다는것만 생각해도 다행인 시절이라 광산대학이던 무슨 대학이던 가릴경황도 타발할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대학공부인지라 입학하여 오직 공부에만 몰두하였는데 운도 좋았다고 김박사는 회고한다.

《당시 배움에 대한 열정 못지 않게 운도 좋았던것 같습니다. 광산대 교장이 동북 3성의 우수학생 25명으로 시험 수재반을 만들고 담임을 겸하면서 엄격히 가르쳤습니다. 밤늦게 공부하다가 학교의 문이 잠겨 창문을 뛰여넘어 다닌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습니다. 그때는 정말 공부만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고고학의 권위자가 되여

1976년 대학을 졸업한 김박사는 현재의 중국과학원 고척추동물 및 고인류연구소에 배치받았다.

1992년 학계의 우수연구사로 인정되여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일본 오사까사립대학에 학위취득을 위한 유학을 가게 되였다. 그 당시 연구분야에서 학위제가 회복되지 않은 국내 사정으로 외국에서만 학위를 취득할수 있었고 정부에서는 인재의 양성을 위해  과학원 유학기금을 제정하여 우수인재를 해외에 보내주었다고 한다.

일본에 가서도 열심히 공부와 연구사업에만 몰두하여 국제과학권위지인 《지질과학》, 《제 4기 지질》에 륙속 논문을 발표하고 이어서 《중국북부 대거산, 기반산과 대련해모상시의 식충류, 설치류동물의 진화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고고학박사를 취득하고 귀국하였다. 지금도 이 논문은 일본국회도서관에 자료로 비치되여 있다고 한다.

1997년 귀국하여 동과학원 국제학술교류쎈터 주임을 거쳐 현재는 중국과학원고척추동물과 고인류연구소 교수 , 이학박사,  포유동물실 주임, 중국제4기 지질학연구위원회 사무부총장, 중국제4기 지층고생물전문위원회 사무총장, 중국고척추동물학회 사무총장, 중국조선족과학자협회 부회장, 중국조선족과학자협회 북경지회장 등 사회직을 맡고 있으며 2007년 9월 호주에서 진행된 세계 제4기 태평양지질층위원회 연차대회에서 5년 임기의 회장에 피선되였다고 한다.

기원전 고대역사를 고생대, 신생대로 분류하는데 신생대시기를 기원전 6천만년전부터 1만년전으로 본다고 한다. 그에서 기원전 260만년전부터 1만년전시기를 4기라고 하며 이 시기에 인류가 출현하였다고 하여 인류기 혹은 4기라고 한다고 한다.

고고학연구에서의  쾌거

가장 인상깊은 연구분야에 대해 김박사는 2000년~2004년 사이 중국 과학기술 9.5 계획의 일환으로 진행된 《인류기원과 기원시기의 배경》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연구사업에 대해 말하는것이였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첫 화석이 발견된것으로 하여 인류의 탄생을 유럽에서 보는 견해가 고고학에서 굳어진 학설이였다고 한다. 정부의 지원으로 진행된 4년간의 연구과정에서 김박사의 지도하에  중국 안휘성 번창시에서 유럽보다 근 100만년 앞선 화석을 발견함으로써 아세아지역에서의 인류 탄생이라는 새로운 학설을 세우게 되였다고 한다. 이미 16개 나라 고고학 학자들이 다녀갔으며 이에 동감하는 론문들이 육속 발표되고있다.

일본유학시기 일본 고고학박물관에 입장료가 일본엔으로 1만엔씩하는데도 관람객으로 붐비는것을 보고 우리 중국에는 언제 저런 시절이 있겠나 싶어 한없이 부러웠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고생물학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 투자가 점차 확대되고 그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학생들의 박물관 관람자수가 부단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고 한다. 지난시기 중국의 고고학박물관은 무료 관람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한달 관람자수가 10명도 되나마나 하였지만 지금은 입장권이 인민페로 30원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정부의 투자로 장강류역에서의 남북 동물의 기원전 존재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한다고 한다. 특히 현재 일본 오끼나와에서만 존재하는 《다섯주름의 검은 토끼》를 기본으로 중국 안휘성 일대에서 연구사업을 진행하고있다고 한다. 이 토끼는 기원전 유럽에서, 중국에서는 기원전 500만-300만년전에 이미 멸종된 동물인데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 오끼나와에서만  현재까지 번식하고있는데 고대 중국지역에서 파생 이전하여 갔을것으로 추측하고 연구한다고 한다. 그것이 사리로 해명된다면 인류의 아시아지역에서의 탄생은 기존 학설을 뒤엎는 새로운 학설을 더 깊이있게 론증하게된다는것이다.

고고학은 어떤 분야에 이용되는 학설인가

고고학은 인류의 기원을 돌이켜 봄으로써 미래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특히 생명기원, 지구기원은 인류기원에 대한 학설연구가 기본이라고 하며 그 연구 성과는 석유, 광산, 탄광의 자원개발에도 가장 기초적인 분석자료로 이용되는 동시에 철학에서도 인류의 기원과 미래를  연구하는데 응용된다고 한다.

/김경 특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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