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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주서 꿋꿋이 일어서기까지

편집/기자: [ 리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9-06-13 11:23:08 ] 클릭: [ ]

ㅡ조선족 현충혁씨의 남방성공담

항주경제기술기발구에 자리잡은 중한합자 항주천량생물공정유한회사에는 키가 휜칠하고 다부지게 생긴 40대초반의 국제업무부 부장 현충혁(41, 조선족)이 있다. 30대 후반에 이미 항주란 대도시에서 한국회사 (주)코미팡의 현지파견 대표신분으로 중한량측 리사회의 중요업무결책에 참여하기까지 현충혁은 시련의 모진 언덕을 넘고 또 넘어야 했다.

룡정태생인 현충혁은 1992년 7월 길림림학원을 졸업했다. 졸업후 차례진 일자리란 상상도 못했던 화룡시 용화림장 윈시림속 땅굴집생활이였다. 현실에 머리 숙일줄 모르는 그는 2년후 1994년 10월에 결연히 모든것을 버리고 강소성 소주구내의 한 한국독자기업에 취직,  그후 강소 소주시 1년, 상해서 6년 보내는중 무역회사 업무경리, 한국인 및 친구들과의 무역사무소 동업, 일본인과의 한국식당 동업, 단독 무역사무소 운영 등등 수많은 경력을 쌓으며 시련에 시련을 이어가야만 했다.

7년 강남생활에서 가장 어려웠던 때가 상해서 일본인과 한국식당을 동업하던 1999년이라고 한다. 반년만에 동업식당은 벌써 밑지는 국면이여서 건져보겠다고 그후 반년 개인경영기간 번 돈을 다 밀어넣었지만 밑굽빠진 항아리신세, 설상가상으로 무역사무소 운영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리를 옮긴것이 바로 항주 서호가의 한 수수한 불교사찰. 사찰에서 한달간 조용한 시간을 보내며 살아온 인생길을 검토, 심각한 자아반성을 했다고 한다.

현충혁은 다시 거뜬한 마음으로 사찰문을 나서며 홀몸으로 절강 의오에 진출, 한국으로 나가는 공예품, 판촉물 무역에 종사하면서 의오에서 새 도약의 3년생활을 보낸다. 2005년부터는 중한합자 항주천량생물공정유한회사 국제업무부 부장자리를 맡아 안정된 회사생활을 시작한다.

한국측의 신임으로 현충혁은 한국회사의 당당한 현지파견대표로 나선다. 한국회사측은 백신제조 기술력을 인정받아 현재 벤처기업으로 등록되여있고 한국 코스닥상장 유망기업중의 하나로 받들리는 기업. 이에 걸맞게 중국측회사 항주천량회사는 중국농업부에서 지정한 28개 수용생물제품 생산공장중의 하나이고 농업부 GMP개조항목무상지원단위중의 하나이다. 현재 합자회사 총자산은 1억 2000만원, 지난해 회사 판매액이 1억 5000만원, 그가운데는 한국회사측을 대표한 현충혁의 노력도 한몫 있다.

현충혁은 《21세기의 바이오산업 즉 생명공학분야가 국가의 부(富)를 가늠하는 시대가 도래할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있다》면서 이미 배운 지식의 한계를 깊이 느끼고 지난해 3월―9월 기간 항주시간부양성쎈터에서 조직한 미국 PMI협회 PMP과정을 수료하면서 실무자질을 끊임없이 높여왔다. 오늘도 현충혁은 회사업무에 열중하는 한편 겨레사회를 위한 유익한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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