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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60인]우리 문화는 우리 경제가 살려야 합니다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9-10-15 15:20:15 ] 클릭: [ ]

[공화국창립60돐 기념 특별기획 60주년에 만나본 60인] - 기획보도(32)

산동성 청도시 청도코리아수정실업유한회사 회장 남룡해 인터뷰

남룡해 프로필: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연변촬영가협회의 직원, 부비서장,부주석,주석. 길림성촬영가협회 부주석, 중국예술촬영가협회 부주석 등 직무를 력임
연변조선족자치주《진달래문화상》  수상
전국덕예쌍형 10대 우수촬영가, 중국촬영가협회 국제문화교류기여상
한국 《영상의 해 》문화공로패 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상 수상
1993년에 청도에 진출
청도시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 및 중한경제발전협회 부회장
2007년에 청도조선족과학문화인협회 창립
청도시조선족운동대회 및 제9차 전국조선족축구대회 조직
연변가무단의 《장백의 아리랑》 청도에 유치
현재 청도시정협 위원

개혁개방이후 연해 대도시에 진출한 각 계층 조선족들가운데는 문화교육계의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새로운 조선족의 삶의 터전에서 자신의 높은 문화와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창업에 성공했으며 또 한편 현지 조선족사회의 문화를 창설하고 이끄는 코기러기로  되면서 조선족사회의 건강발전을 이끌고있다.

청도시조선족과학문화인협회 회장인 남룡해(56세)씨가 바로 그중의 전형적인 사람의 하나다. 청도시20만명 조선족사회의 민족경제와 지역문화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

2003년 연길에서 펼쳐진 개인 사진전 및 작품집 《지나칠 수 없는 순간들》첫 발행식 현장

연변에 있을 때 연변조선족자치주촬영가협회 주석, 중국예술촬영가협회 부주석 등 직무를 담임하였고 《전국덕예쌍형 10대 우수촬영가》에 선정되고 또 한국 《영상의 해》 문화공로패 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상을 수여받은 그는 철두철미  문화인이였다.

그러나 1994년도 청도에 진출해 상업에 뛰여들면서 청도시의 유명한 청도코리아수정실업유한회사를 일떠세웠다. 선후로 청도시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 중한경제발전협회 부회장, 사단법인 중일한경제발전협회 부회장, 옥타 청도지회 지회장 그리고 2007년에는 청도조선족과학문화인협회를 창립하고 회장을 담임하고있는 그는 성공한 기업인이면서 또 문화인이다.

예술의 꿈 이루려고 타향에서 상업에 진출

남룡해회장이 상업진출을 결심하고 청도에 진출했던것은 1994년도의 일이다. 당시 연변조선족자치주 문련에서 촬영작가로 이미 두각을 나타냈고 또 연변주촬영가협회 주석으로 활약하던 남룡해씨에게 있어서 상업무대 진출은 나름대로의 의미와 뜻이 담겨져있다.

그당시 남룡해씨는 사진예술가가 꿈이였으나 높은 경지의 예술을 지향하는 과정은 부득불 경제가 밑받침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것이 문인 남룡해씨를 상업에 종사하게 부추겼다. 상업에서 실패해보아야 원상복귀로 정든 카메라를 다시 들고 사진을 찍으면 된다는 배짱 하나만을 가지고 남룡해씨는 1994년도에 정든 고향땅 연변을 떠나 산설고 물선 산동성 청도시로 진출했다.

사업성공의 비결 : 남들이 보아내지 못하는것들을 보아내고 그것을 경제적가치가 있게 변화시키는 독특한 안광

남룡해회장이 청도에 진출한지도 올해까지 이미 만 15년철이다. 그동안 남룡해회장은 9000여평방메터 규모의 상업건물에 대한 소유권과 사용권을 가지게 됐으며 청도시정협위원에 외교부소속 중일한 경제발전협회 부회장 등 성공적인 기업인으로 성공했다.

산설고 물선 낯선 타향에서 경제적인 성공을 거둘수 있게 된데는 남보다 먼저 상업기회를 보아내고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그만의 독특한 상업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청도시에 있는 향항중로가 지금은 전 청도시에서도 가장 번화한 황금위치가 되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별반 투자자들의 중시를 받지 못하는 거리였다. 1994년 청도진출당시 남룡해회장은 향항중로가 조만간 번화한 상업거리로 탈바꿈할것임을 판단하고 이 곳에 점포 하나를 임대했다.  집을 임대할 때에도 향후 늘어나게 될 건물수요에 대비해 면적을 더 늘릴수있는 단층건물을 임대하였다. 아니나 다를가 95년도 이후부터 향향중로는 상업거리로 서서히 탈바꿈하면서 투자자들이 대거 몰려들기 시작, 상업용 건물들이 딸리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언녕 예견한 남룡해씨는 단층건물우에 추가로 2층과 3층 건물을 더 지어 건물사용면적을 임대면적의 배로 늘렸다. 남들보다 앞선 생각과 안광이 상업기회를 만들어주고 또 부를 창조하게 한것이다. 남룡해씨가 향항중로에 임대한 건물은 후에 전 청도시에서도 유명한 코리안타운의 노란자위가 되였다.  이어 낡은 주택을 임대하고 개조하는 등 여러 가지 경로로 규모를 부단히 확장하여 나중에는 《촌토촌금》인 청도 향항중로에 수천평방메터의 경영장소를 확보하였다.

제1차 창업 성공에 이어 남룡해회장이 제2차 창업을 시작으로 청도시 세계무역중심 지하에 건물을 임대하고 진출했던것은 1998년도의 일이다.

제 13회 중국 조선족 발전을 위한 학술 심포지움에서 주제 발표중인 남룡해 회장

당시 건물지하를 임대맡은 남룡해회장을 두고 당지 사람들은 장사가 지하에 들어가니 망할수밖에 없다면서 《호박쓰고 돼지우리에 들어간다》고 비웃었다. 당지사람들의 인식에 장사는 지하에 들어가면 망한다고 믿었던터인데 거기에 또 800만원이나 되는 돈을 지하에 투자한다니 리해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옆사람들 이야 뭐라든 남룡해회장은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세계무역중심 지하건물을 임대하여 청도에서 가장 호화로운 대형사우나인 수정궁사우나를 오픈했다.

수정궁사우나가 후날 전 청도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지게 되고 청도의 사우나문화를 선도했다고도 말할수 있는데 이는 남룡해회장이 중국식과 한국식 사우나문화를 접목시킨 결과라고도 말할수 있다.

이를테면 한국식사우나는 목욕탕물이 깨끗하고 랭온탕 온도가 시종일관 고른데 반해 차 한잔 나누면서 쉴수 있는 곳이 없는것이 흠이다. 그러나 중국식목욕탕은 목욕탕물이 정수가 잘 안됐고 물온도가 들쭉날쭉한 반면 차 한잔이라도 마실수 있는 쉼터가 있는 우점이 있다.

남룡해회장은 상술한 중국식 및 한국식 사우나방들의 부족점은 미봉하고 우점은 리용하는 방식으로 사우나환경도 좋고 휴식공간도 있는 목욕과 휴식, 오락이 어우러진 새로운 사우나문화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이같은 사우나들을 곳곳에서 만날수 있지만 12년전인 당시에만 하더라도 이같은 사우나 문화들은 주변에서 볼수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선풍을 일으켰으며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다른 사람들이 장사가 안된다고 하던 지하상가에 사우나를 오픈했지만 장사가 잘되여 나중에는 지하상가 건물을 매입하게까지 되였다.

남룡해회장은 남들이 보아내지못하는것들을 보아내고 그것을 경제적가치가 있게 변화시키는 독특한 안광이 있다.

향항중로의 쓸모없는 자투리땅이라고 모두에게 외면받던 변전소자리를 옮겨 그 곳에 4400평방메터이나 되는 상가건물을 앉히자 비로소 당지 사람들은 그 자리에 이렇듯 훌륭한 상가건물을 지을수 있었구나 하고 뒤늦게 경탄했다.

또 세계무역센터의 사용률이 아주 낮은 회의실을 개조하여 원래의 2200평방메터되는 면적을 3200평방메터로 늘리고 또 회의실을 대형건신방, 나이트클럽, 음식점, 회사사무실 등으로 활용할수도 있게 하자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사회의 힘 모아 현지 민족 교육문화의 터전 마련

남룡해회장은 돈벌면 골프치고 좋은 자가용 타고다니고 잘 먹고 잘 입는것보다는 자라나는 우리 민족 후대들에 대한 교육문화전수가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청도시에 살고있는 조선족들은 거개가 개인사업을 위주로 하는 군체이기 때문에 개성이 강하고 어떤 조직적인 제한과 지배를 받기 싫어한다. 이런 상황에서 남룡해회장은 자세를 낮추고 그들과 가까이 하면서 함께 여러 가지 모임들을 만들면서 우리 민족 문화를 말하고 예술을 말하면서 문화적인 이벤트를 많이 조직했다. 처음에는 이러한 행사들을 기업인들 위주로 펼치다가 점차 문화인들도 가담시켜 날따라 행사의 질을 업그레이드 시켰다.

그동안 경로대잔치, 제1차 청도조선족운동대회 등 여러 가지 활동들을 조직하여 청도조선족들을 단합하고 힘을 모으는데 일조했다. 2004년도에 청도시에서 중국조선족축구대회 소집, 성사를 주도, 현재 청도지역에서 우리 말로 된 연변위성TV프로그람 시청 사업을 추진,  이미 청도시 성양구 일부지역에서는 연변위성 TV시청이 가능해졌으며 조만간 청도전역에서의 시청도 가능해질것으로 보인다.

청도 조선족 학교에 놀이터 기구들을 기증하는 남룡해 회장

조선족을 대상한 중학교는 원래 청도시에는 없었거니와 만들자고 해도 엄청난 자금이 들지만 청도국기외국어국제학교에 조선족반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조선족어린이들이 유치원에서부터 고중에 이르기까지 우리 말 교육을 받을수 있도록 적극 협조했다. 조선족집거구가 아닌 타지역에 조선족학교를 세운 경험은 당면 존재하고있는 조선족 산재지역교육의 출로와 경험이지 않을수 없다.

향후 남룡해회장은 현유의 청도시 2개 조선족소학교를 국유화하는 문제와 조선족문화센터를 세우는 일을 적극 협조, 추진할 예정이다. 《이같은 일들은 민족 문화 및 교육에 관한 중대한 일들로써 내가 하지 않아도 어차피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루라도 일찌기 서둘면 그만큼 리득도 크다》는게 남룡해회장의 주장이다.

우리 문화는 우리 경제가 살려야 한다

남룡해회장의 민족사업에 대한 견해는 바로 《우리 문화는 우리 경제가 살려야 한다》는것이다. 그는 민족사업은 희생이 필요한것이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민족사업의 무풍지대라고도 할수 있는 청도시조선족사회에서 하면 할수록 깊어지고 하면 할수록 어렵고 하면 할수록 힘이 드는 민족사업은 쉽게 거창한 성과를 바라기는 어려울것이다. 그러나 남룡해회장은 《나의 작은 노력이나마 민족사업에 자그마한 흔적이라도 남기고싶다》고 말한다.

《내가 번 돈은 다 내 돈인것은 아니다. 내가 번 돈을 사랑하는 민족사업에 쓰는것은 참말이지 아주 유익한 일이지 않을수 없다》이는 남룡해회장의 말이다. 그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 자신이 이렇게 했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이끌었다.

기자의 취재중에도 남룡해회장은 연변무용가협회의 새해 《당대조선족무용》전시공연 연구토론활동에 대한 후원기획을 의뢰받고있었다. 동북3성 범위내에서 무형문화재로 선정된 작품들로 행사를 조직하게 된다고 남룡해회장은 알려주었다.

청도 조선족 민속 축제에서 떡메를 휘두르는 남룡해 회장

그동안 남룡해회장은 청도 조선족 제1회 운동대회,  새천년맞이 중한친선의 밤, 청도 조선족로인 경로대잔치,  제9회 전국조선족축구운동회, 《청도 조선족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학술세미나,  청도 조선족차세대 무역 스쿨 ,  전국 제13회 《중국 조선족 발전을 위한 학술심포지엄》, 《중한 하나로》 가요제, 연변가무단 《장백 아리랑》청도 초청공연 등등 허다한 민족행사들을 주최하면서 청도지역 조선족사회 경제문화발전에 적극적인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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