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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덕해동지생애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1-04-03 09:30:46 ] 클릭: [ ]

주덕해(1911-1972) 원명 오기섭(吴基涉),1911년 음력 3월 5일, 로씨야극동지구에서 한 가난한 조선족농민의 아들로 태여났다.

1920년 3월 길림성화룡현수동촌에 정착, 1929년 혁명의 길에 들어서며 1930년에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1931년 5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한다.1936년 6월 조직의 파견을 받고 쏘련모스크바동방로동대학에 가 맑스주의원리를 계통적으로 학습하고 사회주의제도를 직접 체험하며 당에 대한 리상과 신념을 굳게 다진다.

1937년 주덕해동지는 연안으로 돌아와 8로군 359려 718퇀 특무련 지도원이 되며 1942년 항일군정대학과 연안해외연구반에서 학습하고 정풍운동에 참가한다. 

1943년 연안조선혁명군정대학 당위위원, 교무위원 겸 총무처장을 담임. 당시 섬감녕변구의 극심한 경제곤난시기에 직면하여 당의 호소에 따라 황무지를 개간하고 석탄을 캐고 벽돌공장,사탕공장을 꾸리며 《대생산능수》로 된다.

1945년 일본제국주의가 투항한후 연안을 떠나 동북으로 진출하며 동북민주련군 의용군 3지대 정치위원을 담임하고 할빈해방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1948년 4월 동북행정위원회 민정부 민족사무처 처장을 담임하며 후에는 동북행정위원회 부주임으로 된다. 이 시기 동북지구 조선족인민들의 생산과 생활실제에 근거하여 민족교육,민족문화, 민족정책 선전 등 사업을 밀고나간다. 

새중국이 성립되기 전야인 1949년 3월 연변으로 돌아와 중공연변지위서기와 연변공서전문위원을 담임하며 그해 4월에 연변대학 교장으로 겸임한다. 6월 중국조선족인민과 연변인민을 대표하여 전국정치협상회주비회의에 참가하며 제1차정치협상회 전국위원회 위원으로 중화인민공화국 개국대전에 참가한다. 

그후 연변조선족자치구 당위서기,자치구 주석, 연변조선족자치주 주당위 제1서기, 자치주 주장,연변군분구 제1정치위원, 연변주정치협상회 주석을 력임한다. 길림성 부성장, 성당위 상무위원 등 령도직무에 오르며 제8기중앙후보위원, 제1,2,3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제1차전국정치협상회 위원으로 당선된다.주덕해동지는 갓 해방을 맞은 연변의 산과 들을 마주하고 높이서서 멀리 내다보며 미래를 설계하면서 자치주의 경제사회발전에 력사적인 중대한 공헌을 하였다. 

문화대혁명시기 주덕해동지는 박해를 받고 1969년 호북농장에 로동개조를 가며 1972년 7월 3일 61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1978년 6월 20일 길림성당위의 비준을 거쳐 중공연변조선족자치주당위에서는 대회를 열어 주덕해동지의 억울함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시켰다. 

주덕해동지는 연변에서 사업하는 기간 시종 민족단결을 중시하면서 《단결은 자치주의 각항 사업을 흥성발전시키는 담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민족문화교육사업을 발전시킬것을 중시하고 연변지구의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건설을 위하여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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