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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발자취(12)—조선혁명가 김규광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중앙인민방송 ] 발표시간: [ 2011-08-12 11:30:33 ] 클릭: [ ]

20세기 20년대말 광주에 모여든 수많은 조선혁명가들을 리론적으로, 조직적으로 묶어세우고 이들을 성세호대한 중국혁명과 더불어 세계피압박민족의 해방을 위한 투쟁에로 이끌어간 사람이 바로 유명한 조선혁명가 김규광(金奎光)이다.

당시 북경에서 공부하는 한편 혁명활동에 종사하던 김규광은 1925년경에 광주로 갔다. 그는 광주에서 중산대학 정치과에 입학하였고 김원봉, 김산 등과 함께 류월동지회의 결성을 주도하였고 비밀조직인 조선민족독립당을 창건하였다. 그는 중국혁명에 동조하는 한편 공산주의리론을 전파하면서 광주의 조선인 혁명가들을 단합시켰던것이다.

답사팀은 북경시 목서지북리(木樨地北里)에 위치한 김규광의 셋째아들 두련(杜链)의 집을 찾았다. 그의 차남 두건(杜键)도 함께 우리를 맞이하였다. 김규광은 중국에서 두군혜(杜君慧)와 결혼하여 아들 셋을 두었던것이다. 중앙음악학원을 졸업한 장자인 두겸(杜钳)은 광동악단(广东乐团)의 지휘(指挥)로 광주에 있었고 미술학원을 졸업한 차남 두건은 미술가였으며 항천(航天)대학을 졸업한 셋째 아들 두련은 중국첨단기술분야에서 사업하고있었다.

김규광의 차남 두건과 셋째 아들 두련이 우리에게 아버지에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두건) 《아버지의 상황은 우리들도 잘 모르고 여러 전문가들에게서 얻어들었습니다. 아버지는 1898년에 출생하여 3.1운동에 참가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중국에 손중산을 비롯한 혁명자들이 있고 로씨야 10월혁명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철학도 많이 공부하셨습니다. 3.1운동때 아버지는 체포되여 옥고를 치르다고 금강산에 가서 승려로 계셨습니다.》

                                         

     
차남 두건과 셋째 아들 두련(오른쪽)         중산대학 학적부에 나오는 김성숙

운암(云岩) 김성숙(金星淑1898--1969)으로 널리 알려진 혁명가 김규광은 1898년 3월 10일 조선 평안북도 철산군(铁山郡) 서림면(西林面)강암동(江岩洞)의 한 빈곤한 농가에서 태여났다. 가정이 빈곤했기때문에 그는 어려서부터 농사일을 도왔고 1910년 철산 독립학교에서 2년간 공부하다가 한일합방이 되자 일본학교에서 공부하기를 거부하고 마을 선비들에게서 한학(汉学)을 배웠다. 1916년에 그는 독립군에 참가하려는 목적으로 중국 동북으로 건너왔다가 일본헌병들에게 구금되여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금강산에 들어가서 중이 되였다. 조선의 명산 금강산 한가운데 있는 유명한 유점사(榆■寺)에서 그는 불교뿐만 아니라 현대철학도 연구하면서 1919년까지 머물러있었다. 

3.1운동때 김규광은 손병희(孙秉熙)와 만해(■海) 한룡운(韩龙云)의 지도를 받으며 반일독립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승복차림으로 3.1운동의 진두에 섰던 김규광은 일본경찰에 체포되여 서대문감옥에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 후 그는 계속 선전활동을 진행했으며 이 시기 맑스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혁명에 대한 신념을 굳히게 되였다.

1922년 김규광은 다른 젊은 승려들과 함께 비교적 쉽게 정치활동을 할수 있는 중국 북경으로 건너갔다. 이들은 북경에서 철학, 시, 단편소설, 문학 등 내용을 포함한 <황야(荒野)>라는 잡지를 만들었다. 이시기 그는 10살 년하인 김산을 만나 함께 활동하였고 또 북경에서 최초의 공산주의 잡지인 <혁명>을 간행하였다. <혁명>잡지는 초창기 중국공산주의자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기도 하였다. 중국공산당 창시자의 한사람인 리대소는 늘 이 잡지를 열독하고 글을 발표했으며 가끔씩 비판과 충고도 주었다. 잡지의 편집을 맡았던 김산은 <아리랑>에서 김충창이라는 가명으로 잡지와 김규광에 대해 이렇게 회억하고있다.

이 잡지는 공산당동조자, 민족주의자, 무정부주의자들한테서 지지를 받았다. 이 잡지는 32페지짜리로 창간호는 800부를 찍었는데 6개월내에 3000명의 고정 독자를 가지게 되였다. 이 잡지는 국내, 만주, 씨베리아, 호놀룰루, 캘리포니아, 유럽에 있는 조선학생들에게 발송되였고 1926년까지 계속 발간되였다. 김충창은 이 잡지의 주필이였으며 이 잡지를 위해 수많은 주옥같은 론문을 썼다.

이 시기 김규광은 북경 민국대학(民国大学)에서 공부하였다. 2003년 12월 23일 답사팀이 원 민국대학 유적지인 북경 제2실험(实验)소학교를 찾아보았다. 북경시 선무문내(宣武门内) 신문화가(新文化街)에 위치한 옛 극근군왕부(克勤郡王府) 자리였다. 흰 돌담에 붉은 문을 가진 건물은 문앞에 커다란 돌사자 두개가 있어 더욱 위엄있어 보였다. 붉은 널문을 열고 들어서니 커다란 정원이 있었고 옛 층집이 삼면으로 정원을 둘러싸고있었다. 지금은 모두 교실로 리용되고있었다.               

 

극근군왕부는 1917년부터 학교로 사용되였다. 처음에는 민국학원으로 있었고 1923년에 민국대학으로 되였다. 중국의 대문호인 파금(巴金)도 행적을 남겼던 민국대학에서 김규광은 정치과와 경제학 공부를 하는 한편 혁명활동을 전개했던것이다. 그는 <혁명>잡지를 꾸리는 한편 창일당(创一党)활동도 적극 전개하였다. 

1925년 겨울, 중국혁명이 한껏 고조되고있는 광주로 갔다. 그는 중산대학 법학을 전공하면서 계속 혁명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조선청년들이 가장 많았던 황포군관학교와 중산대학 조선학생들은 서로 래왕하면서 자주 련락을 가졌다. 1916년 봄, 김규광은 손두환, 김원봉, 전동식, 장지락 등과 함께 류월한인회를 기초로 조선혁명청년련맹을 조직하고 기관지 <혁명운동>을 발행하였다. 김규광과 김산은 이 기관지의 주필과 부주필을 맡았다.

1927년 5월 김규광은 여러 혁명가들과 함께 민족유일당조직인 광동촉성회를 성립하였는데 회원이 무려 170명에 달했다. 회원 다수가 조선청년련맹과 의렬단 성원들이였다. 김규광은 또한 의렬단을 중심으로 비밀조직인 조선민족독립당을 창당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 김규광은 중산대학에서 공부하고있는 두군혜(杜君慧)와 사랑에 빠졌다. 해방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1차 대표대회 대표, 중화전국민주 부녀련합회 대표, 중공중앙 제8기 당대표로 사업했던 중국 녀성운동가이며 교육가였던 두군혜는 1904년 광주의 소자산계급 가정에서 태여났다. 그녀는 1924년 첫기로 중산대학 녀학생으로 되였고 저명한 중국 녀혁명가 진철군(陈铁军)과 한학급, 한 책상에서 공부하였다.

대학에서 선진문화를 접수하고 혁명사상을 접하게 되였던 두군혜는 혁명경력이 풍부하고 혁명리론으로 무장된 김규광을 사모하게 되였다. 그들은 함께 공부하고 함께 혁명을 담론하면서 조용한 학교정원과 아늑한 광주 72렬사공원을 거닐었다.

 

(두건) 《외할아버지는 수화보험사의 직원이여서 광주에서 괜찮게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중산대학의 첫기 녀대학생으로 공부하였습니다. 진철군렬사는 어머니와 한 책상에서 공부했습니다. 당시 중산대학 첫기에는 녀 대학생 7명뿐이였습니다. 하여 청혼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조선혁명가와 사귀게 되였습니다. 아버지는 그때 어머니의 집에 와서 생무우가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씻어 생걸 그대로 잡수셨습니다. 그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중국인들은 생식을 하지 않았기때문입니다. 이런 사람하고 결혼한다고 하니 많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였습니다. 다행히 외할머니가 매우 활달한분이였습니다. 외할머니는 늘 어머니를 두둔해주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어머니의 학업을 지지한것도 외할머니의 설득이 많았기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뚜르게네브의 소설 <전야>를 어머니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진보적인 사상을 접한 어머니는 피압박 민족의 해방이란 사상을 깨닫기 시작하였고 점차 혁명을 지향하게 되였습니다.》

이때로부터 조선혁명가 김규광과 중국 진보적 녀성인 두군혜가 사랑을 맺게 되였고 슬하에 선후로 세 아들을 두게 되였다. 녀성 운동가인 두군혜는 온갖 정성을 다해 조선혁명가인 김규광을 도왔으며 조선혁명을 동조하였다.

두군혜는 김산을 동생처럼 관심해주었고 녀동생 두군서(杜君恕)를 다른 조선혁명가 오성륜에게 소개하였다. 1926년 황포군관학교 로어교관으로 있었던 오성륜은 김규광, 김산 등과 아주 가까운 사이로 보내였던것이다.

/ 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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