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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발자취(26)—광주봉기 중편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중앙인민방송 ] 발표시간: [ 2011-08-24 09:47:46 ] 클릭: [ ]

광주봉기 첫날 가장 치렬한 전투는 적의 공안국을 점령하는 전투였다. 혁명적 광주시민들에게 있어서 광주시 유신로(维新路)에 위치한 공안국(公安局)은 반동군벌의 소굴이였고 적의 완고한 보루였다. 그러므로 이곳을 신속히 점령해야만이 혁명적 군민들을 고무할수 있었다.

유신로에 위치한 적 공안국 옛건물(지금은 민가로 사용).

봉기가 시작되자 교도퇀의 부분적 부대는 엽용(叶鏞)의 인솔하에 로동자 적위대와 함께 공안국을 공격하였다. 조선인 혁명가 리영(李瑛)이 참모신분으로 엽용을 도와 공격전을 지휘하였다.

리영의 원명은 리용(李鏞)이다. 그는 《헤그밀사》의 한사람이였던 리준의 장남으로서 일찍 청산리전투에 참가했고 그후 쏘련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쏘련군사고문의 신분으로 광주에 와있었다. 리용은 한때 국민혁명군 산두시 포병영 영장을 맡기도 하였다.

(권립 교수) 《다른 한편 조선족군사고문 리용은 엽용과 함께 적의 완고한 보루인 공안국을 들이쳤습니다. 봉기군은 적의 장갑차를 짓부시고 2000여명의 혁명자들을 구출해냈는데 그중에는 조선인이 6명이나 있었습니다.》

공안국 공격전은 로동자적위대주력이 맡았다. 부대는 두길로 나뉘여 공안국을 포위하였다. 적공안국 국장인 주휘일(朱晖日)은 급급히 보안대, 경위퇀을 불러 사수하려 했지만 경위퇀도 이미 봉기에 참가하였다. 그는 황급히 남은 부대를 이끌고 요충지를 사수하는 한편 기회를 보아 도주하려 하였다.

사면으로 공격해오던 로동자적위대는 혜애로(惠爱路)에서 적의 장갑차와 부딛쳤다. 적들은 장갑차를 리용해 많은 봉기자들을 살상하였다.

위급한 시각 엽검영이 교도퇀전사들을 거느리고 도착하였다. 조선인혁명가 리용은 기관총화력을 조직해 효과적으로 적의 화력을 통제하였고 몇몇 용사들은 폭약을 들고 장갑차에 덮쳤다.

두려움 없이 싸운 봉기군 용사들은 장갑차를 까부시고 공안국으로 돌진하였다. 치렬한 육박전에서 많은 적들이 소멸되고 주휘일은 일반인 옷을 바꿔입고 도주해 버렸다. 30여분의 전투에서 봉기군은 1000여명을 포로하고 공안국을 점령하였다.

전투가 끝난후 봉기자들은 공안국의 감옥문을 부시고 적들에게 감금되였던 2000여명 혁명자들을 구해냈다. 그속에는 조선인혁명자 6명도 포함되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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