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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발자취(26)—광주봉기 중편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중앙인민방송 ] 발표시간: [ 2011-08-24 09:47:46 ] 클릭: [ ]

답사팀은 광주봉기기념관을 찾아갔다. 기념관은 광주시 기의로(起义路) 200번지에 위치하고있었다. 기의로는 원 유신로였고 기념관 주건물이 바로 적공안국건물이였다. 봉기군은 당시 국민당 광동성회(广东省会) 공안국으로 사용되였던 이곳을 점령한후 이곳에 로농홍군 총지휘부를 설치하고 또 쏘베트정부를 수립하였던것이다.

광주봉기기념관정원에 세워진 봉기지도자들 석상.

기념관에 도착해보니 철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월요일이면 모두 출근하여 근무를 볼줄 알았는데 기념관에서는 공휴일에 시민들에게 기념관을 개방하기 위해 정상근무를 하고 월요일에 휴식한다는것이였다. 당직을 서는 사람을 찾아온 의사를 이야기하고 기념관을 볼수 있었다.

철문을 열고 들어서니 노란색 회칠을 한 2층 건물이 나타났고 건물앞에는 흰 대리석동상들이 줄지어있었다. 광주봉기의 지도자들인 장태뢰, 팽배, 주문옹의 동상이였다. 정원에는 해묵은 나무가 두그루 있었고 주건물량측에 역시 2층 건물이 붙어있었는데 남루(南楼)와 북루(北楼)라고 했다. 당직일군이 소개한데 의하면 이 주건물이 바로 쏘베트정부 집무실로 사용되던 건물이였고 3층으로 된 남루는 경위련이 주둔하고있었다. 북루는 홍군총지휘인 엽정의 사무실로 사용되였다 한다.

기념관 총면적은 5,990평방메터였는데 가운데 청사는 장태뢰 사무실, 쏘베트정부 회의실, 쏘베트위원 사무실, 구호실로 복원되여 있었다. 일본침략군의 폭격으로 일부 파괴되였던 남루는 잘 수건되여 지금 광주봉기 진렬실로 사용되고 북루는 광주시 공안국에 소속되여있었다.

사하진과 연당의 적을 숙청한 양달부와 김산이 지휘부에 도착한것은 새벽 4시경이였다. 적 공안국은 이미 점령되였고 혁명위원회 사령부가 이곳에서 일을 보고있었다. 엽정에게 상황을 회보한후 양달부와 김산은 사하진으로부터 오는 포로들을 기다렸다.

1000여명 포로들이 공안국정원에 도착하자 양달부는 김산의 통역을 거쳐 포로들에게 연설하였다. 연설을 마친 그는 믿을만한 병사 200여명을 뽑아 그들에게 총과 탄약을 주어 봉기에 참가하게 하였다. 양달부는 이 부대를 이끌고 공방전이 치렬하게 진행되고있는 적 12사단 사령부가 위치한 문덕로(文德路--20세기 2, 30년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광주시의 유명한 골동품거리였다. 골동품 전문점이 많았고 난전도 많았다)로 달려갔다.

적은 길목에 기관총진지를 설치해놓고 미친듯이 소사하고있었다. 봉기군은 도저히 머리를 들수 없었고 진퇴량난의 경지에 빠지게 되였다. 위급한 시기 이곳에 도착한 양달부는 상황을 파악하고 일진의 전사들에게 철수명령을 내렸다. 그리고는 지휘부로 달려가 대포를 끌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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