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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발자취(26)—광주봉기 중편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중앙인민방송 ] 발표시간: [ 2011-08-24 09:47:46 ] 클릭: [ ]

(권립 교수) 《공안국을 점령하자 공안국정면에는 광주쏘베트정부라는 간판이 내걸리고 붉은기가 휘날렸습니다.》

공안국이 봉기군의 손에 들어오자 봉기군은 이곳에 봉기군 지휘부를 설치하였다. 날이 밝자 봉기군 각 부대 로동자, 농민, 병사 대표들이 비밀리에 총지휘부로 모여왔다.

공안국은 곧 새롭게 단장되였다. 벽에는 맑스와 레닌의 초상이 걸렸고 십여개 책상을 한데 모아 대회주석단이 만들어졌다. 주석단주변에는 많은 등나무걸상을 배렬해놓았다. 공안국대문에는 《광주쏘베트정부》라는 주문옹(周文雍)의 친필 액자가 걸려있었다.

9시쯤 되여 3만여명의 대중집회가 열렸다. 양달부, 김산, 김규광을 비롯한 조선혁명자들도 집회에 참가하였다. 사람들은 국제가를 부르면서 쏘베트정부의 수립를 기다렸다. 집회에서 광주 로동자 농민의 민주정부를 설립하고 16명 위원을 선출하였다. 소조정(苏兆征)이 정부 주석으로 선거되였지만 그는 농민군을 동원하기 위해 동강(东江)으로 갔기때문에 장태뢰가 주석대리를 맡았다.

집회에서는 몇가지 결의를 지었다. 광주쏘베트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세계인민들에게 알리는 선언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반동파들을 숙청하고 해륙풍쏘베트정권과 련락을 취하며 로농홍군을 조직하기로 하였다.

광주쏘베트정부의 수립은 광범한 로동자, 농민, 병사, 학생들의 열렬한 옹호를 받았다. 거리에는 붉은기가 휘날렸고 곳곳마다 프랑카드가 걸려있었다. 광주거리는 혁명가곡을 부르는 노래소리로 넘쳐났다.

그러나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음산남부 번화가인 장제(长堤)부근의 전투는 계속 치렬하게 진행되고있었다.

양달부는 소분대를 거느리고 적 4군 사령부로 달려갔다. 장발규의 4군 사령부는 광주시 주강이북의 장제에 위치하고있었다. 이때 조선인혁명가 리빈도 북부경계임무를 완수하고 장제부근에서 싸우고있었다.

로농홍군은 더욱 효과적으로 적을 대치하기 위해 관음산에 대포를 걸어놓았다. 양달부와 리빈을 비롯한 몇몇 우수한 조선인 포술 전문가들이 모여 적 사령부를 포격하려 하였다. 양달부가 직접 포를 조준하였다. 그는 지형에 익숙한 로동자 적위대대원이 가리키는 곳을 정확히 측량하고 발포하였다. 포탄은 사령부부근에서 터졌지만 적들은 계속 사수하였다. 전투는 대치단계에 들어갔다.

이날 밤 지휘부에서는 작전회의가 소집되였다. 엽정은 12일 새벽부터 주강북안의 적의 거점을 철저히 제거하기 위해 새로운 공격을 시도할것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공격부대를 조직하여 주강이남의 적을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12월 12일, 날이 밝기 시작하자 광주의 정세는 위급해지기 시작하였다. 장발규, 진공박, 황기상을 비롯한 국민당군 두목들은 주강 남안의 리복림을 사촉하여 봉기군을 진압하려고 계획하였다. 그리고 광주에 주둔하고있던 영국, 일본 제국주의 함대도 조계지의 교민들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봉기에 간섭해나섰다.

이날 아침 사면(沙面)의 주강에 정박하고있던 제국주의군함이 봉기군을 향해 포를 쏘았다. 부근에서 작전하고있던 리빈을 비롯한 조선인장병들은 더욱 큰 적개심으로 불탔다. 일본포함 두척이 함부로 발포하면서 부대를 상륙시키고있었던것이다.

조선인 장병들은 조선을 강점하고 조선인민을 마음대로 수탈하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을 보자 모두 혈안이 되였다. 리빈은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대포를 끌어왔다. 그는 직접 적함을 조준하고 발포하였다. 포탄은 정확히 명중되여 일본군함 《야마모도(山本)》호에 치명타를 안겼다. 중상을 입은 일본포함은 검은 연기를 길게 토하며 도주해버렸다.

봉기군은 계속 제국주의포함과 격전을 벌였다. 양달부와 기타 조선인 장병들도 달려와 참전하였다. 조선인 포술전문가들은 정확히 포 세방을 쏘았다. 백발백중이였다. 적 포함 연통 세개가 박살나 허공에 날렸다. 질겁한 적포함은 기를 내리드리우고 급급히 자리를 떴다.

장제에서 바라본 사면 전적지(지금은 번화한 관광지로 변함).

사면은 주강이 두갈래로 나뉘는 백아담(白鹅潭)의 한 섬이였다. 섬북쪽 광주시의 비교적 번화한 곳이고 옛날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있는 조계지였다. 월수산에서 남으로 오다가 연강로(沿江路)를 따라 가노라면 즐비한 서양식건물들을 많이 보게 된다. 이곳은 술집도 많았다. 다정한 모습으로 거리를 다니는 련인들도 많이 볼수 있었다. 이전에나 지금에나 광주의 가장 번화하다고 하는 장제를 지나면 강에 커다란 섬 하나가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사면섬이다.

돌을 던져도 그냥 닿을만한 거리였다. 강에는 유람선 몇척이 정박해있는것이 멀리 보였다. 밤이 되면 관광객들은 류람선을 타고 주강에서 광주시의 황홀한 야경을 감상한다는것이다.

/ 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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