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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발자취(27)—광주봉기 하편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중앙인민방송 ] 발표시간: [ 2011-08-24 10:24:45 ] 클릭: [ ]

광주봉기 첫날 쏘베트정부의 수립을 보았지만 봉기군은 국부적인 승리를 이룩했을뿐이다. 광주에 주둔하고있던 영국과 일본 제국주의자들도 반동군벌들을 도와 공격해왔다. 광주시 외곽에서는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 되였다.

12월 12일 점심, 쏘베트정부에서는 원 계획대로 쏘베트정권을 옹호하는 대형군중집회를 조직하고 쏘베트정부의 성립을 선포하였다. 광주의 로동자, 농민, 병사 대표 만여명이 서과원(西瓜园)에 모여 로동자, 농민, 병사 대표대회를 소집하였다.

(권립 교수) 《이날 점심 광주 서과원에서 광주쏘베트정부 옹호대회가 열렸습니다. 장태뢰동지를 대리주석으로 한 광주쏘베트정부에도 조선족용사들이 참가했습니다. 쏘베트정부 숙반위원회에는 조선족혁명가 김성숙이 있었고 로동무장부에는 김산이 있었습니다.》

김규광의 안해 두군혜녀사.

당시 김규광의 련인이였던 두군혜(杜君慧)녀사는 이번 군중집회에 대해 회억록에서 이렇게 적고있다.

《봉기 이튿날 광주시 서과원광장에서 대회가 열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였다. 조선동지들이 소속된 련대가 광장의 호위를 책임졌기때문에 규광과 7, 8명 조선동지들이 대표로 대회에 출석하였다. 그속에는 최용건도 있었다.》

서과원은 광주시 번화한 월수구(越水区) 인민남로(人民南路)에 위치하였다. 광주시 당사판공실의 황수생(黄穗生) 연구원의 안내에 따라 가보니 지금은 광주일보사(广州日报社) 청사가 그곳에 자리잡고 었다. 만여명이 모일수 있는 거대한 공지라고는 생각할수 없었다. 서과원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로동자대표들이 여러가지 회기(会旗)를 들고 가장 앞에 앉았고 광주주변의 농촌에서 온 수백명 농민대표들도 전신무장을 한대로 한쪽에 모여있었다. 그리고 전투는 긴장하였지만 교도퇀, 경위단, 적위대의 군인대표들도 와있었다. 이들뿐만 아니라 녀성, 상인, 점원, 학생대표들도 있었다.

회장정면에는 붉은바탕에 검은 글로 《광동공농병대표대회(广东工农兵代表大会)》라고 씌여있었고 주석대정면에는 맑스와 레닌 초상이 걸려있었다. 전신무장한 장태뢰가 주석단에 나서자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졌다.

장태뢰는 혁명정세를 보고하고 쏘베트정부 시정강령을 하나하나 이야기하였다. 《모든 정권은 로동자, 농민, 병사 대표대회에 귀속된다. 반동군벌을 타도하고 로동인민의 권리를 수호한다. 모든 토지를 국유로 한다. 쏘련과 련합하고 모든 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한다...》

시정강령조목이 선포될 때마다 장내는 환호소리로 진동하였다. 흥분된 사람들은 목이 터져라 구호를 웨쳤고 손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다.

그러나 주변의 총소리는 더욱 자지러지게 울렸다. 대회는 앞당겨 끝마치게 되였고 쏘베트정부 일군들과 대표들은 각기 자기의 위치로, 전선으로 달려갔다.

지휘부로 가던 도중 장태뢰가 적의 저격을 받아 불행히 희생되였다. 광주봉기의 최고지도자였던 장태뢰의 희생소식은 한동안 공개되지 않았다.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알리지 않았을수도 있었다. 봉기자들은 계속 드높은 기세로 적과 치렬한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이때 상서롭지 못하게 비까지 내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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