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불멸의 발자취(30)—중국공산당 한인지부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중앙인민방송 ] 발표시간: [ 2011-08-25 10:47:54 ] 클릭: [ ]

 (권립교수): 《1927년 9월에 중국공산당 한인지부가 섰고 특수한 역할을 하고있었습니다. 한인지부의 명칭은 상해 법남구 한인지부였습니다. 지부는 우리 민족 혁명가들이 중공에 가입하는 첫 시작이였습니다. 이때 려운형, 조봉암, 홍남표, 무정을 핵심으로 건립된 이 조선단체에는 청년동맹, 반제동맹, 호조회, 녀자구락부 등 많은 유력한 우리 민족 외곽단체들을 갖고있었습니다. 이 한인지부는 우리 민족 해방투쟁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훌륭히 일으킬수 있었습니다. 상해의 조선족지부는 그 자체가 상해에 있었기에 중공 특과의 소재지인 상해에서 당 6기 3중, 4중 전원회의에 출석하였습니다. 그 자체가 중국조선족의 첫 중공조직이였기에 특수한 역할을 일으키게 되였습니다.》

상해 한인지부가 있었던 곳(뢰미로 30번지 옛터의 골목길).

조선공산당 상해지부의 주요 책임자들로는 선후로 려운형, 홍남표, 량명(梁明), 조봉암(曹奉巖), 구연흠(具然钦), 김단야(金丹冶) 등이 있었다.

상해지부는 처음 상해의 프랑스조계지인 포석루(蒲石楼) 128번지에 위치한 려운형의 집을 활동장소로 하였다. 그러다가 1930년에는 프랑스조계지 뢰미로(雷米路) 30번지로 옮겼다.

상해지부는 1929년 10월, 류호한국독립운동가동맹(留沪韩国独立运动家同盟), 1930년 2월 상해한인청년동맹(上海韩人青年同盟), 1931년 12월 상해한인반제동맹(上海韩人反帝同盟), 중국혁명 호제회(互济会) 상해 한인분회(韩人分会)를 비롯한 외곽단체를 조직해 활동하였다.

1931년 12월, 강소성당위원회 법남구(法南区)위원회 한인지부의 홍남표와 조봉암, 장태준(张泰俊)에 의해 상해한인반제동맹이 설립되였다. 그들은 조계지의 명원(鸣垣)소학교에서 설립대회를 가지고 강령, 규칙, 결의를 채택하였다. 이 조직은 상해 반제련합회에 가담하여 중국인민과 함께 반일사상을 적극 선전하였다. 그들은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쏘련과 중국 쏘베트지역을 옹호한다는 내용의 삐라를 살포하였다.

상해한인반제동맹은 이듬해 홍남표를 비롯한 주요 지도자들이 체포됨에 따라 세력이 많이 약화되였다. 그러나 다수 공산주의자들은 계속 혁명을 견지하면서 강습반, 독서회 등 형식으로 반제사상과 공산주의사상을 전파하였다. 그들은 또 기관지 《반제전선(反帝战线)》을 출간하였다.

그후 1933년, 중국의 반제대동맹이 해체되면서 한인반제동맹은 상해한인독서회로 개칭되였다. 독서회는 매주 한두번씩 집회를 가지고 사회과학을 연구하면서 여러가지 활동을 전개하였다.

죽산 조봉암(1898~1959).

중국혁명호제회상해 한인분회는 중국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조봉암이 1931년 2월에 설립하였다. 호제회의 조선공산주의자들은 혁명자들의 단합을 추진하고 혁명대중들을 직접 도우면서 기관지 《혁명지우(革命之友)》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상해지부와 그 외곽단체들은 당시 상해에 있던 중국공산당 림시중앙정치국(临时中央政治局)의 정신과 요구, 포치를 조선혁명가와 조선주민들에게 전달하고 이를 실행하였다. 그리고 여러가지 기념행사를 조직하고 홍군을 지원하는 각종 의연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