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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발자취(37)—장정에서의 무정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중앙인민방송 ] 발표시간: [ 2011-08-31 09:07:23 ] 클릭: [ ]

중국공산당이 령도한 위대한 2만 5000리대장정에는 많은 조선인혁명가들이 참가하였다. 그가운데서 양림을 제외하고도 무정의 뛰여난 활약상이 돋보인다. 장정초기 홍군이 겪었던 가장 처절했던 상강전역을 비롯해 수많은 혈전에 직접 참가하였고 장정후기 중앙홍군과 제4방면군이 회합한후 홍군의 분렬활동을 방지하는 면에서 특출한 공헌을 한 조선혁명가가 바로 무정이다.

조선혁명가 김무정.

(권립 교수) 《2만 5000리장정때 무정은 홍군의 제1종대 제3제대의 사령관 겸 정치위원을 맡고 수많은 전투를 겪으면서 섬북에 도착하였습니다. 섬북에서 그는 홍군 총부 작전과 과정으로 되여 주덕의 신변에서 사업했습니다.》

무정은 중앙직속 제1종대(第一縱隊) 제3제대(第三梯隊) 사령원 겸 정위로 중앙지도자들과 함께 장정을 시작하였다. 홍군 포술전문가였던 무정은 포병영, 공병영, 운송대대, 부속병원을 포함한 홍군 기술부대를 총괄하였다. 전투가 가장 치렬한 곳일수록 무정이 거느린 포병부대가 언제나 뒤따라 주었다.

1934년 10월 10일, 8만 홍군주력은 강서성 서금, 우도(于都), 장정(長汀), 녕화(寧化)로부터 장정을 시작하였고 당중앙 각 부서와 기관도 운석산에서 출발해 장정길에 올랐다. 당시 홍군의 지도사업을 맡았던 박고(博古)와 국제공산당의 군사고문 독일인 리덕(李德)은 계속 그릇된 전략을 고집하였다. 그리하여 홍군은 중앙기관을 가운데 포치하고 홍군 주력인 1군단, 3군단을 좌우략익으로, 5군단을 후위로 배치하였기에 행동이 매우 굼떴다. 그리고 적들이 미리 포진하고있는 포위망을 뚫고 계속 홍군 2군단과 6군단과의 회합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전략전술로 하여 홍군은 장정초기 막대한 희생을 내고말았다.

1년 남짓이 진행된 제5차포위토벌에서 성과를 이룩한 장개석은 포위권내의 홍군을 제거하는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북평, 장가구, 태원, 서안 등지를 다니면서 기타 군벌부대를 시찰하였고 자기의 전과를 자랑하였다.

10월중순에 장개석은 홍군이 이미 포위권을 뚫고 대이동을 개시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급급히 남창에 돌아와 직접 작전을 지휘하였다. 적들은 중앙홍군이 하룡이 거느린 2군단, 6군단과 회합하려는 의도를 파악하고 상강을 중심으로 새로운 포위망을 구축해놓았다.

11월초 홍군 주력부대는 두겹의 포위를 뚫고 적들에 앞써 상강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대부대의 행동이 느렸기때문에 많은 시간을 들여 강을 건너야 했고 홍군주력부대는 뒤쫓아온 적과 피어린 고전을 치러야 했다.

장정에 참가하였던 라원발로인은 《라원발회억록(羅元發回憶錄)》을 남겼다. 회억록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장정이 시작된후 가장 치렬했던 상강전역(湘江戰役)이 시작되였다. 우리 5사는 팽덕회군단장의 명령을 받고 주야로 급행군하여 상강나루터를 점령하는 임무를 맡았다.....지휘부에서는 군사위원회 포병영 무정동지가 포병영을 이끌고 화력지원을 줄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로홍군 라원발 회억록의 발취부분.

당시 라원발은 홍군 제3군단 5사의 퇀급간부로 있었다. 그들은 무정이 거느린 포병부대의 유력한 지원을 받아 상강나루터를 확보하였다. 중앙홍군이 강을 건느자 홍군부대는 다시 추격해오는 적을 막고 치렬하게 싸웠다.

무정은 기술부대를 거느리고 상강에 다리를 부설하고 중앙기관 일군들을 수송하였으며 포병부대를 조직해 적의 추격을 막았다.

장정에 나선 중앙홍군주력은 림표가 거느린 1군단과 팽덕회가 거느린 3군단이였다. 공격에 능한 1군단은 선봉역할을 많이 하였고 수비에 능한 3군단은 엄호작전을 많이 하였다. 수많은 전투에서 무정은 줄곧 포병부대를 이끌고 팽덕회를 도와 전투임무를 승리적으로 완수하였다.

홍군 1군단과 3군단은 신허(新墟)와 각산포(脚山鋪) 부근에서 혈전하였고 5군단은 문시(文市)에서 적과 싸웠다. 홍군장병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면서 적을 막아내고있었다. 수십만 대군을 풀어 홍군주력부대를 소멸하려던 장개석의 시도는 무산되였다. 그러나 우세한 적이 사면으로 포위해왔기때문에 상강전역을 치른후 홍군부대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8만 주력홍군이 4만밖에 남지 않았던것이다.

상강전역을 치른후 중앙군사위원회에서는 드디어 모택동의 정확한 주장을 접수하기 시작하였다. 중앙홍군은 2군단, 6군단과의 회합을 포기하고 신속히 귀주성으로 진격하였다.

준의회의후 모택동의 정확한 령도하에 홍군은 오강을 건느고 적수하를 네번 건느면서 적들을 미혹시켰으며 신속히 금사강을 건넜다. 홍군이 귀주성에까지 이동하였을 때 앞에는 설산이 가로막혔다.

부대의 령활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중무기는 버려야 하였다. 따라서 포병부대도 다른 부대에 편입되여야했다. 무정은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더욱 막강한 포병부대를 건립할 결의를 다지면서 포병부대를 떠나 제3군단 지휘부에서 일을 보게 되였다.

대도하(大渡河)를 건느고 설산을 넘어 사천성의 파서(巴西)에 도착한 중앙홍군은 승리적으로 홍군 제4방면군과 회합하였다. 그러나 홍군내부에서 새로운 위기가 나타났다.

당시 홍군 4방면군은 수자적으로 중앙홍군보다 더 많았다. 홍군 4방면군의 장국도(張國燾)는 중앙홍군을 통제하고 나아가서 당중앙에서의 자기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 그는 중앙홍군의 주력부대인 제1군단과 제3군단의 련계를 차단하기 위해 무전암호를 회수하였다. 그리하여 3군단과 주력홍군 1방면군의 련계가 두절되였다. 그때 1방면군은 림표와 섭영진의 인솔하에 아계(俄界)에 가있었다. 위급한 시각 팽덕회는 새로운 암호를 만들어 1방면군에 보내려 하였다. 그는 이 중요한 임무를 무정에게 맡겼다.

팽덕회 자서전 표지.

팽덕회의 회억록에서는 그때 상황을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3군단에서는 무전기를 준비하였고 무전암호도 다시 만들었다....무정동지(조선동지)를 파견하여 지북침(지남침)을 갖고 1군단이 지나간 행적을 찾아 꼭 무전암호를 림표와 섭영진에게 보내라고 하였다.》

임무를 맡고 길을 나섰지만 앞이 캄캄하였다. 아계가 어딘지? 인적 없는 망망한 초지에서 어디 물어볼 곳도 사람도 없었다. 무정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지남침으로 방향을 확정하고 계속 걸어갔다. 한동안 달리니 풀을 베어 쌓아놓은것이 보였다. 풀을 헤쳐보니 희생된 홍군전사의 시신이 있었다. 무정은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희생자에게 경례를 붙이고 다시 길을 떠났다.

얼마후 그는 초지에 물을 끓이던 낡은 솥이 있는것을 발견하였다. 솥을 만져보니 아직 온기가 있었다. 그는 홍군주력부대가 이곳을 떠난지 오라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지칠대로 지쳤지만 무정은 이를 악물고 계속 달려 드디어 홍군 제1방면군 1군단 사령부를 찾아 무전암호를 림표에게 전했다.

3군단 지휘부에서 속을 태우던 모택동은 무전신호가 오자 즉각 전문을 보냈다. 《림표, 섭영진 앞: 행동방침에 변동이 있으니 제자리에 대기할 것.》

1군단지휘부에서 자기의 무전암호로 전문이 번역되는것을 보고서야 무정은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섰다.

장국도의 분렬음모를 간파한후 모택동은 중앙기관과 제1방면군 주력을 거느리고 승리적으로 섬북으로 진격하였다. 섬북의 홍군과 회합한 중앙홍군은 드디여 2만 5000리장정을 승리적으로 완수하였다.

중앙홍군과 함께 승리적으로 섬북에 도착한 무정은 새로운 과업을 맡고 계속 투쟁하였다.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30여명 조선혁명가들이 홍군의 2만 5000리장정에 참가하였으나 결국 승리적으로 섬북에 도착한 사람은 양림과 무정뿐이였다. 대부분 전사하거나 설산, 초지를 지날 때 희생되였던것이다. 장정도중 홍군은 로획한 국민당의 비행기로 삐라를 살포한 일이 있었다. 그때 그 비행기 조정사가 바로 조선인이라는 기재도 있다.

섬북의 홍군장정승리 기발.

강서성 서금의 작은 운석산에서 시작된 2만 5000리장정은 결국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홍군부대는 그 무엇으로도 전승할수 없는 강철의 대오임을 세인들에게 알려주었고 무산계급혁명투쟁은 최후의 승리를 이룩할것이라는 확신을 세계 피압박민족에게 심어주었다.

운석산 홍군장정 유적지를 떠나며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강철의 대오속에 자랑찬 우리 민족의 혁명투사 양림과 무정이 있었다는데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 장정에서 희생된 이름모를 수많은 조선혁명자들에게 무한한 경의를 드리고싶은 심정이였다.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세계 무산계급의 해방을 위하여 장렬히 희생된 조선혁명자들의 넋은 영원할것이다.

/ 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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