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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기념비(25)—화수림자전투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중앙인민방송 ] 발표시간: [ 2011-10-12 10:14:33 ] 클릭: [ ]

해방전쟁시기 동북의 국민당군과 동북민주련군은 천연장벽인 장백산의 로야령산맥과 송화호를 사이두고 대치하고있었다. 동북민주련군은 송화강동부에 포진하고 로야령산맥에 의지해 국민당군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냈으며 수시로 강을 건너 송화강서부 국민당군의 거점을 습격하였다. 그들은 우세한 병력을 집중해 각지에 분산, 수비한 국민당군을 포위소멸함으로써 적의 거점을 하나하나 제거하였다.

국민당군이 림강에 대한 공격을 발동하자 길동군구의 각 부대와 길남군분구의 부대는 림강보위전을 지원하기 위해 송화강서부의 화전을 중심으로 국민당군을 공격하였다.

눈덮힌 화수림자의 한 마을.

얼어붙은 송화강기슭은 무단라즈산.

화수림자는 화전현동북부의 송화강동부에 위치한 400여가구의 마을이다. 마을주변은 산으로 둘러졌고 마을앞으로는 송화강을 사이두고 높이 솟은 무단라즈(牡丹砬子)산과 마주하고있었다. 화수림자를 강점한 국민당군은 유리한 지세를 리용해 무단라즈산에 보루를 쌓고 화수림자를 거쳐 강동을 공격할 태세를 취하고있었다. 송화강동부 아군의 근거지에 쐐기를 박아놓은거나 마찬가지였다. 국민당군주력이 림강을 공격하자 동북민주련군 본부에서는 림강보위전을 지원하기 위해 주력부대를 남진시켰을뿐만 아니라 길동군분구와 길남군분구의 부대를 동원해 화전부근에서 작전을 진행하게 함으로써 국민당 60군을 견제하도록 명령했다.

동북민주련군의 명령에 따라 길동군분구의 경비 2려 4퇀과 6퇀, 장춘쟁탈전에 참가했던 조선족퇀 그리고 길남군분구의 71퇀과 72퇀은 화전부근의 화수림자, 금사(金沙), 횡도즈(横道子)등지에서 작전했다. 아군은 송화강동부로 뻗쳐들어온 화수림자의 적을 먼저 제거하기로 했다. 전투포치에 따라 길동 경비 2려 6퇀이 화수림자를 공격하고 72퇀과 기타 부대는 공격을 엄호하면서 부근의 적 지원부대를 막았다.

화전에 주둔한 국민당 60군 182사 546퇀은 화전현 보안대대와 더불어 화수림자주변에 록시를 치고 보루를 쌓았을뿐만 아니라 산길에 물을 부어 얼음판을 만들어놓았다.

1947년 1월 8일 새벽에 아군의 산포 6문이 적진을 향해 사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리가 멀고 눈이 많이 쌓인데다가 산포의 구경도 작았기에 포격의 효과는 크지 않았다. 포격이 끝나자 주공임무를 맡은 6퇀 2영은 영장 박종수(朴琮秀)의 인솔하에 화수림자 주봉인 무단라즈산을 공격하였다. 송화강과 화수림자 마을을 한눈에 눕어볼수있는 이곳은 말그대로 천연적인 전략요새였다.

2영의 선두에 선 5련 1패 전사들은 부련장 김문걸의 인솔하에 무단라즈북쪽포대를 공격했다. 산중턱에 이르렀을 때 적의 기관총사격에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김문걸 부련장이 적탄에 쓰러졌고 전사 오영준과 신수산(申秀山)도 부상했지만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상황이 위급해지자 박종수영장은 김인한(金仁翰) 련장에게 어떤 대가를 내서라도 북쪽포대를 점령하라고 명령했다.

김인한련장은 2패 패장 김학철을 제2돌격조로 내보냈다. 앞장에서 달리던 전사 신수산은 수류탄으로 첫번째 록시를 파괴하고 기관총 사격을 하는 적화구에 다가가 수류탄묶음을 밀어넣었다. 수류탄이 터지자 김인한련장이 곧 전사들을 거느리고 돌격했다. 마학범(马学范), 김천덕(金天德), 신수산, 오영준 등 전투원들은 맹호와 같이 적진으로 돌격해들어가 보루에서 밀려나오는 적과 육박전을 치렀다. 신수산은 부상한 다리를 끌면서도 총창으로 적 두놈을 찔러눕히고 한놈을 포로했으며 전사 마학범은 적을 깔고앉아 수류탄으로 적의 머리를 까부셨다.

치렬한 전투를 거쳐 아군은 산중턱까지 밀고나갔다. 하지만 무단라즈산정의 적보루에서 여전히 중기관총 사격이 멈추지 않았다. 2영 전사들은 세차나 돌격조를 파견했지만 길을 열지 못했다.

전투는 계속 되였다. 공격이 여의치 않자 박종수영장은 길동군분구의 공병련에 지원을 요구했다. 공병련은 김창룡부련장의 인솔하에 전장에 도착하자 무단라즈산 얼음절벽을 톺아올라 적의 배후를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공병련의 조선족전사 김송림(金松林)은 짚신에 쇠철을 박아신고 앞장서 얼음산을 톺아올랐다. 아군을 발견한 적은 기관총을 쏘면서 수류탄을 던졌다. 김송림은 나무와 바위를 엄페물로 삼고 한치한치 우로 톺아올랐다. 공병련전사들은 십여명의 희생을 내면서 드디여 새벽녘에 무단라즈고지에 올라 적의 화구를 폭파하였다.

령하 40도에 달하는 혹한속에서 하루종일 싸우면서 시달렸던 전사들이였지만 모두가 맹호와 같이 적진으로 돌격했다. 6퇀 2영의 조선족장병들은 전투에서 적 포대 9개를 제거하였다. 상한 다리의 통증마저 잊은 신수산은 앞장서서 돌격하였고 수류탄으로 적 화점을 제거하고 세놈을 격살했으며 두놈을 생포하였다. 공병부대의 김송림도 적 세놈을 찔러죽이고 두명을 생포함으로써 영웅칭호를 수여받았다. 9시간의 치렬한 전투를 거쳐 아군은 화수림자에 둥지를 틀고있던 적 265명을 전부 소멸하고 많은 무기와 탄약을 로획하였다.

한편 72퇀의 조선족장병들은 령하 35도의 추위를 무릅쓰고 부가툰부근에 매복하고 화전과 금사에서 오는 적의 지원군을 막아냄으로써 화수림자 공격전의 승리를 이끌어내는데 큰 기여를 했다.

화수림자전투를 지휘한 김인한 련장의 유상.

화수림자전투에 참가했던 마학범 로인(해방후 사진).

화수림자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김송림(남창 표창대회에서).

포성과 총성이 멎은 화수림자촌은 적막하기 그지 없었다. 우리군 용사들이 피흘려 쟁탈하였던 무단라즈산은 지금도 송화강을 굽어보며 강기슭에 우뚝 솟아있었다. 답사팀은 나룻배를 타고 화수림자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어구 강냉이밭에는 《해방전쟁시기 화수림자 전적지》라고 새겨진 작은 비석 하나가 있었는데 비석뒤에는 간단한 전투과정이 새겨져있었다.

화수림자촌의 77세 고령인 정평창로인은 어렸을 때 목격했던 전투과정을 이야기해주었다.

《1946년 12월 17일 새벽이였습니다. 전투에 참가한 부대 번호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중국부대도 있었고 조선부대도 있었습니다. 조선부대는 무단라즈를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팔로군은 이곳을 우회했습니다. 날이 밝을 때 싸움이 시작됐는데 여기 보루가 하나둘 다섯개가 있었습니다. 보루가 파괴되자 국민당군이 철퇴하였습니다. 국민당군이 와서 얼마 안되여 해방되였습니다.…조선부대는 여기에서 싸울 때 서쪽으로 나갔습니다. 무단라즈산정에 보루 하나가 있었는데 중기관총 하나 있었습니다. 조선사람들이 싸웠습니다. 정면으로 공격했는데 오후 2시쯤에야 점령했습니다.…적지 않은 사람들이 희생되였습니다. 횡도하쪽으로 소파리로 실어갔습니다.》

화수림자 전투의 승리는 송화강이동의 유일한 적 거점을 제거했을뿐만 아니라 림강을 포위공격하는 대량의 적을 견제하였다.

화수림자전투에서 박종수 영장은 갑등전투영웅칭호를 수여받았고 김인한 련장을 비롯해 신수산, 김천덕, 오영준 등 조선족전사들이 대공을 세웠다.

화수림자전투가 있은후 송화강 서부의 국민당통치구역으로 공격할수있는 통로가 열리게 되였다. 길동군분구와 길남군분구의 각 부대는 화전주변에속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24려 70퇀은 24일 금사(金沙) 공격전을 성공하지 못했지만 길동경비 2려 4퇀과 24려의 71퇀은 백석라자(白石砬子)에서 적 지원군 170여명을 소멸했고 72퇀은 횡도허즈(横道河子)에서 적의 지원군을 격퇴하였다.

동북민주련군의 북만주력부대가 송화강이남으로 공격해 장춘과 길림시가 위협을 받자 두률명은 할수 없이 림강공격을 그만두고 급급히 3개 사단의 병력을 북상시켰다. 이로써 제1차 림강보위전은 승리적으로 끝나고 북만의 아군주력은 공격목적을 실현하자 다시 송화강이북으로 이동해갔다.

화수림자전투 전적지.

화수림자 마을의 정평창 로인(화수림자전투를 목격한 현지 농민).

화수림자향의 강동 27렬사 기념비.

화수림자향 렬사릉원의 무명렬사비.

오늘의 화수림자촌은 이미 향으로 확대되였으며 향소재지도 송화강동부로부터 서부로 옮겨져있었다. 안내일군들을 따라 답사팀일행은 화수림자향부근에 세운 렬사기념비를 찾아보았다. 하얀 기념비가 하늘 높이 솟아있고 그 뒤에는 27명 렬사들의 무명묘소가 정연하게 배렬되여있었다.

화전시 관광국의 관계자가 소개한데 의하면 화수림자 공격전뿐만 아니라 화전부근에서 있었던 여러 전투에 참가했던 렬사들을 이곳에 집중해 안장했다.

《이곳은 화수림자 전투 렬사릉원입니다. 강동 27명 렬사가 이곳에 묻혀있습니다. 1947년 려대방자를 공격하는 전투에서 희생된 렬사들 여기에는 부분적인 조선족전사들도 포함되였습니다. 화전지구 화수림자촌부근은 전략적 요새입니다. 화전, 반석 등 다 이곳에 집중되였습니다. 국민당 60군과 양상곤이 이끄는 부대가 싸웠는데 1947년 1월 무단라즈전투, 금천포위전투, 상산툰과 횡도하자 공격전 등 전투가 있었습니다. 전시였기에 희생되면 그냥 그 자리에 묻고 작은 나무에 이름을 새겨놓았지만 세월이 흘러서 나무에 새긴 이름을 알아볼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모두 무명영웅이 된것입니다. 이들은 공화국의 창건을 위해 기여했습니다. 》

/ 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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