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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60년]흑백텔레비죤앞에 온 마을이 모여앉던 풍경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2-08-16 15:30:28 ] 클릭: [ ]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 맞이 특별기획 《기억속의 60년》

 
80년대 모두들 모여앉아 흥미진진하게 흑백텔레비죤을 보던 때가 그립다. /자료사진

지난세기 80년대초쯤으로 기억된다.

호도거리생산책임제를 실시하면서 60리 평강벌에 자리잡은 우리 마을 농민들의 살림형편도 나아지기 시작했으며 마을에 하나둘씩 전기라지오며 손목시계, 자전거 등 당시로서는 동네에 내놓고 자랑거리가 될만한《사치품》들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하루, 아침에 걸어서 학교로 가는데 마을의 적잖은 소꿉친구들이 엊저녁에 집에서 《영화》를 봤다고《아라비안나이트》같은 말을 했다. 당시 영화라면 공사소재지에 있는 영화관이 아니면 대대마을에 내려온 이동영화상영대가 로천에서 방영하는 영화를 보는것이 전부였는데 집에서 영화를 보았다니 궁금증이 증폭했다.

《작은 상자》같은데서 신기하게 영화도 나오고 뉴스도 나온다는것이 그때 조무래기들의 텔레비죤에 대한 가장 적절한 인식과 묘사였다. 그런데 《작은 상자》에서 영화나 뉴스는 밤에만 나온다는것이였다.

그날 낮이 얼마나 길던지…학교에서 돌아오자 바람으로 영화가 나온다는《작은 상자》가 있는 마을의 장씨성 민병련장네 집으로 달려갔다. 저녁이 되여 정말 애들 말처럼 빨간 상자에서 영화랑 뉴스랑 나오고있었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마을청년들의 활동경비를 해결하고저 촌에서 얼마간의 논을 청년들에게 활동경비전으로 내주었는데 거기서 나온 수입으로 청년들이 마을사람들의 문화생활을 풍부히 해야 한다면서 거금을 들여 텔레비죤을 사놓았던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마을청년들이 닭이요, 개요 하면서 돈이 생기면 술추렴부터 하지 않고 텔레비죤을 먼저 갖추어놓아 마을사람들이 앉아서도 세상구경할수있는 문화생활을 다른 마을에 비해 일찍 마련해준것이 정말 대견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여하튼 그후로부터 민병련장네 집은 저녁마다 마을사람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모여드는 모임장소로 됐다. 웃방에는 년세가 계신 어르신들이 앉았고 정주방에는 애들을 데리고 나온 할머니들과 어머니들의 차지였다. 봉당에는 텔레비죤구경이라는 핑게로 서로의 얼굴들을 흘깃거리는 청춘남녀들이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모여있군 했다.

사람이 모이면 자연히 화제도 많아지기 마련이요, 화제가 많아지니 자연 별의별 재미있는 소식과 정보를 전하며 웃음꽃을 피우군 했다. 낮에는 일밭에 나가 일하고 밤이면 마을사람들이 한데 모여 한담이라도 하면서 웃음꽃을 피울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게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향수인지 먼 시일이 지난 지금에야 그 가치를 알것 같다.

아무튼 그 시절 허다한 마을사람들이 함께 모여앉아 보았던 텔레비죤프로그램들은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어서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신》이며 《배구녀장》, 《곽원갑》등 텔레비죤드라마들을 한회도 빼놓을세라 지켜보면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흘러보낸 과거가 감미롭고 행복해진다.

그러나 사람의 인정이라는것도 한도가 있는 법이지, 매일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밤 늦게까지 텔레비죤구경을 하면서 담배연기에 집이 절고 발냄새, 땀냄새에 집식구들이 시달리는것은 물론 제대로 된 취침시간도 보장받지 못하게 되니 항상 졸리고 곤해서 텔레비죤이 애물단지가 되여버렸다.

민병련장도 처음에는 버텼으나 집식구들의 성화가 하도 불같은지라 하는수 없이 텔레비죤을 마을의 다른 집에 《이사》시키지 않을수가 없었다. 물론 텔레비죤이 이사간 집들마다 한두달을 못 넘기고 텔레비죤에 다시금 《축출령》을 내리군 했다. 그러나 텔레비죤이야 어디로 이사를 가건말건 마을사람들은 텔레비죤이 오늘 어느 집에 있다 하면 아무 꺼리낌도 없이 그집 문을 떼고 허물없이 들어섰으며 집안 가득히 들어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웃음꽃을 피우군 했다.

마을의 텔레비죤이 이젠 더이상 오갈 곳이 거의 없게 되였을 때 텔레비죤은 누구도 뭐라 할것 같지 않은 마을 우사칸 사양실로 옮겨졌다. 마을 우사칸 사양실은 10평방메터도 안되는 작은 방이라 많은 마을사람들을 다 수용할수 없어 초저녁부터 일찍 가야지 사람이 차게 되면 안으로 문을 잠그어 더 못들어오게 했다.

텔레비죤구경을 못하게 되니 심통난 젊은축들은 집밖에 세워진 안테나를 돌려서 텔레비죤을 시청할수 없게 만들군 했다. 집안에서 안테나가 돌아가 텔레비죤에 화면이 나오지 않으면 밖으로 나와서 안테나를 좌우로 돌려가면서 조절하는데 그때뿐이지 사람이 집에 들어만 가면 다시 안테나를 돌려 시청을 방애하는 심술군들이 있군 했다.

80년대중반부터 마을에 《만원호》도 나타나고 생활형편들이 나아지면서 텔레비죤을 갖춘 집들이 하나 둘 늘어남과 동시에 텔레비죤구경에 찾아들던 마을사람들도 하나둘 줄어들기 시작했다.

올해 청명절날 떠나온지 오래된 고향에 가보았더니 기억속에 또렷한 많은 집들이 허물어지고 사라져 없었다. 다행히 텔레비죤을 가장 처음 만나보았던 장씨성 민병련장네 집은 아직까지 남아있긴 했지만 집이 너무 작고 낡아보였다.

그렇게 작은 집에서 마을의 32세대 수십명 촌민들이 한데 어울려 텔레비죤을 보았다는것이 정말 실감나지 않았고 믿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많은 사람들이 12인치 작은 흑백텔레비죤앞에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텔레비죤을 구경하던 아기자기하고 단란했던 정경만은 아직도 내 기억속에 또렷이 남아 잊고 지냈던 많은 생각들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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