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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기념비(52)—의현 해방전투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중앙인민방송 ] 발표시간: [ 2013-02-22 09:53:34 ] 클릭: [ ]

1948년 9월 20일, 동북야전군 제3종대는 금주의 문호로 불리우는 의현에 도착해 의현을 물샐틈 없이 포위하였다. 며칠동안 기차를 타고 또 밤도와 강행군을 거쳐 의현에 도착한 3종대 장병들은 이때에야 비로소 자기 부대가 의현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았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동북야전군 사령부에서는 행동이 신속하고 작전이 과감하여 《선풍부대》로 소문났던 야전군 3종대에 의현공략의 임무를 맡겼던것이다.

1945년말, 팔로군이 동북에 진출한후 가장 먼저 편성된 3종대는 4종대와 함께 남만에서의 간고한 투쟁을 견지하였고 네차의 림강보위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을뿐만 아니라 력차의 반격전에서도 큰 성과를 이룩해 《선풍부대》라는 별호를 가졌다. 동북의 국민당군은 《선풍부대》라는 말만 들어도 간담이 써늘했다고한다.

동북진출초기부터 남만 각지의 조선족청년들을 대량 접수하고 또 남만의 조선의용군 제1지대로부터 문화자질과 전투경험을 갖춘 조선족 중대와 대대를 그대로 접수했기때문에 전투력이 막강한 동북야전군 제3종대에는 조선족장병들이 아주 많았다.

금주의 문호로 불리우는 의현은 금주이북 45킬로메터 떨어져있는 옛 현성으로서 료서주랑과 금주의 천연적인 장벽을 형성하고있다. 지질구조로부터 볼 때 의현은 대릉하충적평원에 형성되였다. 현성이북으로 대릉하가 흐르고 그 주변은 충적평원인만큼 토층이 두텁고 또 아주 비옥하였다.

수천년래 이곳 사람들은 대릉하에 의지해 대릉하의 물을 마시고 그 충적평원에서 농사지으며 대대손손 살아왔다. 의현성내의 유명한 문화유적으로는 대불사가 있는데 료나라시기의 목조건물이다. 당시 국민당 93군의 림시편제로 된 20사가 의현을 수비하고있었다. 수비군은 옛 현성의 토담을 더 높이 쌓고 부근에 대량의 보루를 축조하였으며 또 많은 지뢰를 매설해놓았다.

의현의 옛 성문자리.

대릉하.

림시편제로 된 국민당군 20사 왕세고사장은 식량과 탄약이 충족한데다가 방어시설이 좋고 또 무기가 훌륭하기때문에 얼마든지 의현을 잘 수비해낼수 있을것이라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부대가 《선풍부대》인 동북야전군 3종대라는것을 안 왕세고사장은 그만 입을 다물고말았다. 그는 바싹 정신을 차지고 수비를 강화할것을 부하들에게 지시한후 급급히 상급에 구원을 청했다.

그러나 동북야전군주력이 하루사이에 갑자기 금주부근에 나타나자 금주의 국민당군 사령인 범한걸도 더럭 겁에 질렸다. 그는 부대를 나누어 의현을 지원할 엄두도 못냈고 다시 심양의 위립황과 국민당군통수인 장개석에게 구원을 청했다. 위립황은 금주의 사활에 대해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며 장개석은 속이 달아올랐지만 지원병을 보낼수 없는 상황이라 그냥 《지원병을 꼭 보낼테니 어찌하나 의현을 사수하라》는 말뿐이였다.

의현공격임무를 맡은 3종대 한선초사령원은 사령부지휘원들을 거느리고 전장을 관찰하였다. 그는 포병종대 사령원 주서와 의논한후 포병종대의 류탄포부대를 각사의 공격로선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명령에 따라 3종대 8사와 9사는 의현 동부와 동남부로 공격하고 잠시 3종대에 귀속된 동북야전군 2종대 5사는 서부를 공격하기로 했다.

작전임무를 맡은후 각 부대는 적극적인 전투준비에 들어갔다. 그들은 굴진의 방법으로 적진지에 접근하고 가까이에서 적을 하나하나 소멸할 방법을 구사하였다. 충적평원인만큼 토층이 두텁고 돌과 바위, 암석이 없었기에 굴진작업은 아주 효과적으로 진행되였다. 밤사이에 각 사단은 깊이 1메터 60, 너비 1메터 30되는 참호와 교통호 1,500여메터를 파서 적진지앞까지 다가갔다.

만단의 준비를 끝낸 3종대와 2종대 5사는 9월 29일부터 외곽전투를 시작했다. 전사들은 적진지나 화점가까이에 다가가서 수류탄을 뿌리고 소구경대포를 쏘아 신속히 적의 수비를 돌파하였다. 이들은 침착하게 이틀간 싸워 의현주변의 여러 요새를 전부 제거하였다.

의현외각의 여러 거점을 전부 제거한후 10월 1일, 동북야전군은 의현현성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아군은 100여문의 대포를 집중해 의현을 목표로 포사격을 가했다. 굵은 포아구리로 포탄이 불을 토하며 길게 적진으로 날아갔다. 벼락치듯한 굉음과 도처에서 흩날리는 파편들은 우리군 포병의 위력을 남김없이 과시하고있었다.

동북야전군 포병종대 사령원인 주서는 수없이 많은 포탄이 정확히 적진에 날아가 터지는 통쾌한 광경을 살펴보면서 마음속으로 못내 흐뭇해하였다. 동북진출후 몇년간을 포병부대건설에 모든 정력을 쏟아부었던 그는 우리 군이 드디여 전문화된 포병부대를 가지게 되였고 또 도시공격전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있는것을 보고 마냥 기쁘기만 하였다.

한선초사령원은 곁에 있는 주서사령원을 보고 《당신네 포병부대가 성벽을 허물어내면 공격임무를 절반 완수한거나 다름 없소!》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서사령원의 계산은 그것뿐이 아니였다. 공격의 길을 헤치기 위해서는 성벽을 허물어내야 했을뿐만 아니라 성내에 포치한 적의 포진지도 정확히 소멸해야 했고 공격의 길을 차단할수 있는 적보루들을 하나하나 제거해야 했던것이다. 더욱이 포사격으로 민가의 피해는 최대한 줄여야 했다.

주서사령원은 사전에 정찰한대로 정확한 포사격을 가할것을 지시한후 포격상황을 더욱 정확히 료해하기 위해 몇몇 참모일군과 경위원을 거느리고 전방으로 나갔다.

포병종대의 집중타격은 한시간 45분간 지속되였다. 의현성은 삽시에 초연에 쌓였다. 강한 포격에 성벽 윗부분이 허물어져내려 사선으로 언덕을 만들어놓았다. 때를 기다리던 보병부대는 신속히 돌진하기 시작했다. 전사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록시를 제거하고 철조망을 뚫으며 달려나갔다. 전사들은 서슴없이 해자를 뛰여넘고 허물어진 흙더미들을 따라 성벽을 넘었다.

3종대 8사 장병들은 인가가 적은 의현동관으로 돌입했다. 강대한 포사격에 부근의 적보루와 화구는 모두 제거되였기에 장병들은 신속히 거리로 달릴수 있었다. 그들은 거리를 따라 대불사방향으로 공격하였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국민당군의 수비진이거나 화점을 만나면 뒤를 따르던 사단 소속 포병부대가 또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비록 포병종대의 대포들처럼 포구가 크지 않은 소형대포였지만 목표물을 향해 직사하면 삽시에 적의 수비진을 파괴할수 있었던것이다. 포를 잘 다루는 조선족포병들은 보병과 잘 배합해 신속히 적군 사령부가 위치한 대불사로 들어갔다. 한편 3종대 9사도 의현동반부로 돌입해 분산되여 발악하는 적을 하나하나 소멸하면서 나아갔다.

오후 3시가 되여 3종대 8사와 9사 그리고 2종대 5사는 승리적으로 고루에서 회사함으로써 의현을 전부 해방하였다. 의현공격전에서 아군은 수비군을 전부 소멸하고 20사 사장 왕세고를 생포하였다.

하지만 불행한 소식도 전해졌다. 포병종대 주서사령원은 전방에서 포사격을 지휘하던중 불행히 지뢰를 밟고 장렬히 희생되였던것이다. 그는 동북해방전장에서 희생된 아군의 최고군사지도자였다.

전투가 끝난후 3종대 의료일군들이 현성에 진입해 부상자들을 구조해주었다. 그리고 지휘원들은 의현의 상징인 대불사를 둘러보았다. 안내일군은 감격에 넘쳐 이렇게 말했다. 《해방군의 대포는 참 눈이라도 달린것처럼 아주 정확했습니다. 국민당군은 어김없이 포격을 받았지만 의현의 대불사는 아무런 손상이 없었습니다!》

지휘원들은 저도 모르게 모두 눈물이 핑 돌았다. 바로 우수한 포병지휘원 주서사령원이 다년간 로고를 아끼지 않고 훌륭한 포병들을 잘 키워냈기에 우리군은 이와 같은 위력이 강하고 명중률이 높은 포병종대를 가지게 되였던것이다.

해방군이 의현을 해방하는 력사사진.

의현의 대불사 정원.

주서학교 주서동상.

의현이 점령되였다는 소식을 받자 장개석은 화가 동해 곧바로 비행기를 출동시켜 의현을 폭격하게 하였다. 국민당비행기의 무차별 폭격에 많은 무고한 주민들이 피해를 보았다. 그리고 우리군이 그처럼 소중하게 보존했던 대불사도 폭격에 한쪽 모퉁이가 떨어져나갔다.

의현인민들은 지금도 의현을 해방하기 위한 전투에서 장렬히 희생된 주서사령원을 잊지 않고있다. 답사팀이 의현에 찾아갔을 때 의현 한 소학교 운동장에 커다란 주서동지동상이 모셔져있는것을 발견했다. 가까이 가보니 학교명칭도 의현주서소학교라고 되여있었다. 그리고 주서사령원이 지뢰를 밟았던 곳에는 작은 비석 하나가 세워져있었다.

/ 중앙인민방송국 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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