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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기념비(57)—흑산저지전(중편)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중앙인민방송 ] 발표시간: [ 2013-02-28 09:43:07 ] 클릭: [ ]

1948년 10월 24일 아침부터 시작된 흑산-대호산 전투는 온종일 치렬하게 진행되였다. 국민당군은 비행기, 대포를 동원하여 미친듯이 101고지를 공격하였고 수천명 보병을 동원해 돌진하였다. 10종대 28사 84퇀 전사들은 마지막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면서 진지를 사수하였다. 하지만 오후 4시에 끝내 101고지를 잃고말았다.

흑산현의 가장 높은 건물인 천주교회당우층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28사 하경적사장은 101고지가 점령되였다는 소식을 듣자 급히 전선에 달려왔다. 그는 10종대 포병의 지원을 요청한후 82퇀 1영과 84퇀 2영 5련 장병들을 모아 101고지를 탈환하게 했다. 부대의 40여문 산포와 야포가 일제히 101고지를 포격한후 아군장병들은 공격을 개시했다.

101고지를 수비하던 많은 전우들이 희생되였다는것을 안 전사들은 모두 복수심이 불타올랐다. 그들은 생사를 돌볼 사이도 없이 달려나가면서 수류탄을 던지고 총창으로 찌르며 고지에 올라섰다. 저녁쯤 되여 아군전사들은 다시 붉은기를 101고지에 꽂았다.

흑산현 천주교회당(10종대 28사 지휘부가 설치되였던 곳).

28사 전시지휘부 기념비.

전투가 가장 치렬했던 101고지 전적지 기념비.

24일 하루동안 28사는 흑산 101고지에서, 29사 85퇀은 소백태자(小白台子)에서, 30사 88퇀은 청수포자(清水泡子)에서 그리고 1종대 3사는 흑산과 대호산 린접부근에서 적의 수차로 되는 공격을 성공적으로 물리치고 진지를 지켜냈다. 하지만 각 부대 모두가 대량의 사상자를 냈다.

101고지에서만 하여도 500여명 희생자가 나왔으며 84퇀 2영은 전투력을 기본상 상실했다. 한편 24일 주요진지인 흑산동부의 고가워펑(高家窝棚)과 북부의 대백태자(大白台子)촌에서는 큰 전투가 없었다. 28사 83퇀은 3영을 앞에 포치하고 그뒤에 1영과 2영을 배치하였으며 3영에서는 8련을 앞에 배치하고 7련과 9련을 예비대로 배치했다.

흑산현성입구 5리쯤 떨어진 대백태자촌은 창무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해 멀지 않은 101고지와 기각지세를 이루고있었다. 가장 전토선에 배치된 3영 8련은 량생옥련장과 김교진지도원의 명령에 따라 열심히 전호와 은페호를 팠다. 8련 김교진 지도원의 회억에 따르면 부련장 고봉화(高风华)가 1패 전사들을 거느리고 8련의 정면 방어공사를 구축했다.

흑룡강성 방정(方正)에서 입대한 고봉화는 사격을 잘했을뿐만아니라 수류탄도 50메터 이상 멀리 뿌렸다. 그리고 아주 용감하고 지혜로왔다. 한번은 고봉화가 한개 패의 전사들을 거느리고 적군이 주둔하고있는 두 마을사이를 지나게 되였다. 고봉화는 두 마을의 적을 동시에 사격하고는 밤도와 멀리 피해버렸다. 그러자 영문을 모르는 두 마을 국민당군은 서로 사격하면서 밤새도록 싸웠다. 고봉화는 이처럼 번마다 전투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해 얼마후 부련장으로 승진했다.

고봉화부련장은 량생옥련장과 김교진지도원을 안내해 1패 3반 진지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진지에 엎드려 열심히 총을 조준하고있는 부반장 최성걸을 발견했다. 김교진지도원이 《사격위치를 잘 골랐구만》 하고 치하하자 최성걸부반장은 50여메터밖에 있는 깊은 물도랑을 가리키면서 《놈들이 오면 모두 저 앞 물도랑에 처넣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길림성 룡정 사람인 최성걸은 입대후 동북인민해방군 후근부에서 운전기사로 있었다. 부대가 개원에서 훈련할 때 그는 전선부대에 참가하겠다고 거듭 요구하여 10종대 28사 83퇀에 오게 되였다. 사격과 투탄에 능한 그는 평소에 말수가 적었지만 싸움에서 호랑이처럼 날렵하고 용감했다.

전반 대백태자 진지에서 최성걸부반장은 가장 위험한 전초진지를 수비하는 임무를 맡았던것이다.  밤이 되자 쓸쓸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진지는 춥기 그지없었다. 아군전사들이 홑옷바람으로 밤을 샌다는것을 안 마을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솜옷과 이불을 가져왔다. 하지만 3대규률 8항주의에 단련된 전사들은 한사코 받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은 할수 없이 가져온 솜옷과 이불을 진지에 던지고 가려 하자 전사들은 그것을 다시 싸들고 달려가며 안된다고 했다. 이때 마을 간부가 나서서 《이것은 마을사람들의 성의이니 받아두었다가 승리한후 돌려주면 되지 않는가?》고 했다. 그리고 이제 곧 전투가 있을텐데 마을사람들이 포화를 무릅쓰고 솜이불을 가져온다면 더 위험하다고 했다.

전사들은 마을사람들이 가져온 솜옷과 솜이불을 받고나서 꼭 목숨으로 진지를 지킬것이라고 다짐했다. 상급에서도 일부 담요와 솜이불을 보내왔다. 비록 많이 부족했지만 전사들은 여러 사람이 하나씩 솜이불을 나누어 덮으면서 뼈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를 이겨냈다.

24일 아침부터 전투가 시작되였다. 고봉화부련장과 1패장 허상의(许相义)는 수십명 적군이 슬금슬금 다가오는것을 발견했다. 아군의 화력을 폭로하지 않기 위해 고봉화는 적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보총으로 사격하게 했다. 과연 정찰하러 나왔던 놈들은 십여명 시신을 남기고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채 물러가버렸다.

이날 부근의 101고지에서는 하늘땅을 진감하는 큰 싸움이 벌어졌지만 대백태자촌 방향에서는 큰 싸움이 없었다. 전사들은 밀집된 포격소리를 듣고 적비행기가 날아가는것을 보면서 이번 싸움이 결코 례사로운 싸움이 아니라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10월 25일 새벽, 료요상은 수천명 사상자를 낸 207사를 철수시키고 최정예부대인 신6군 169사를 정면공격에 투입하였다. 놈들의 새로운 공격은 맹렬한 포격과 폭격으로 시작되였다.

아군의 대백태자촌과 고가워펑, 101고지는 삽시에 불바다에 잠겨버렸다. 천둥같은 굉음에 전사들의 귀에서는 피가 흐를 정도였고 초연이 자욱하여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한시간 남짓한 포격을 한후 놈들은 개미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백태자촌에 위치한 아군진지는 큰 손실을 보지 않았다. 적의 화력정찰이 잘되지 않았기에 포격과 폭격은 주로 텅 빈 마을과 그 주변에 집중되였던것이다. 가장 앞에 위치한 83퇀 3영 8련 1패의 최성걸부반장은 흙더미속에 묻힌 량금산(梁金山)을 구하도록 전사 송종규(宋钟奎)와 최태룡(崔太龙)을 보낸후 꼼짝 않고 적정을 살폈다.

부련장 고봉화는 망원경을 통해 수수밭 고랑을 타고 기여오는 적군을 발견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전사들에게 전투준비를 시킨후 적이 일어서기를 기다렸다.  아군 진지와 60여메터 거리를 두고 적은 밭에서 기여일어나 허리를 펴고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이때 고봉화부련장의 사격명령이 떨어졌다.

최성걸과 전사들은 신속히 수류탄을 뽑아들고 련속 적진에 던진후 기관총사격을 가했다. 뜻하지 않은 집중공격에 놈들은 많은 시신을 남기고 철수하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적의 공격은 더욱 사나웠다. 적은 수백명씩 무리지어 돌진했으며 각종 포격과 비행기사격의 엄호를 받았다. 적의 포는 대부분 직경이 큰 류탄포로서 위력이 대단하였다. 그리고 8대의 비행기가 번갈아가며 폭탄을 던지고 기관총사격을 해댔다.

전사들은 전호와 은페호에서 적의 포격을 피한후 공격해오는 적에게 맹사격을 가했다. 적 군관의 지휘하에 개미떼처럼 몰려오는 적을 효과적으로 소멸하기 위해 고봉화는 최성걸, 조만업(赵万业), 리화순(李和顺), 최봉손(崔凤孙), 박호근(朴浩根)을 비롯한 사격술이 좋은 전사들을 조직해 적 군관부터 소멸하게 했다. 적 군관이 하나 둘씩 쓰러지자 적은 전의를 잃게 되여 곧 퇴각하였다. 그러자 전사들은 도주하는 놈들에게 수류탄 벼락을 안겼다.

한참 싸운후 적은 3반 진지앞의 물도랑을 발견하고 물도랑을 따라 공격해왔다. 3반 전사들은 침착하게 적이 다가온 다음 자동보총과 수류탄으로 적을 소멸하면서 적의 공격을 막아냈다.

오전 9시쯤 되여 적은 3개 련의 병력으로 세번째 돌격을 감행했다. 적들은 맹목적으로 돌격한것이 아니라 몇발자욱씩 전진해서는 곧 수수밭에 엎드려 은페호를 만들었으며 중기관총을 걸고 아군진지를 향해 사격하군 하였다. 그리고 첨산자(尖山子) 언덕에 중기관총을 걸어놓고 후퇴하는 자기 병사들에게 무차별 사격하였다.

고봉화 부련장은 침착하게 전사들을 지휘하고있었다. 그는 늘 적이 가까이 다가온후 모든 화력을 집중해 강타를 안기면서 많은 적을 소멸했고 적의 공격을 수차 물리쳤다.적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두개 영 이상의 병력을 집중해 네번째, 다섯번째로 돌격해왔다.

1패장 허상의는 오른쪽다리가 골절되여 꼼짝도 못하게 되였지만 계속 전투를 지휘하면서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김교진지도원은 위생원을 시켜 그를 후방에 보내게 하였다. 그러자 허상의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어찌 진지를 떠납니까? 남겨주십시오.》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김교진지도원은 《우리가 있는 한 꼭 진지를 지켜낼것이요.》라고 안심시키며 후방으로 보냈다.

피말리는 전투는 계속되였다. 1패의 사상자가 많자 련장은 2패와 3패를 련속 투입하였다.  머리와 오른쪽어깨에 파편을 맞은 최성걸은 상처를 싸매고 계속 전투를 견지하였고 9반 전사 정성호(郑星镐)도 오른팔에 적탄을 맞았지만 이를 악물고 전투를 견지하였다. 그리고 취사반의 최일송(崔日松)도 포화를 무릅쓰고 중상자들을 100메터 후방의 안전한 곳으로 업어내였다.

점심이 되자 1패 진지에는 최성걸을 비롯해 7명 전사밖에 남지 않았다. 최성걸은 여러곳에 부상당했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전투를 견지하였다. 기관총이 고장나자 그는 자동보총과 수류탄으로 싸우면서 적이 물도랑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했다. 이날 그는 수류탄만 하여도 백여개를 던졌다.

강철8련이 받은 금기.

강철8련의 진지였던 흑산현 대백태자촌 전적지

반나절 싸웠지만 한걸음도 전진할수 없자 국민당군은 한개 퇀의 병력을 끌어모아 여섯번재로 돌격해왔다. 그리고 모든 화력을 집중해 3영 8련 1패 진지를 공격하였다.

하지만 이때 1패 진지에는 몇사람 남지 않았을뿐만아니라 탄약도 바닥이 나고있었다. 김무술(金武述) 반장은 수류탄 두개를 찾아 투탄수 박호근에게 넘겨주었다. 최성걸과 리화순 패장은 《탄알이 없으면 총창으로 싸우고 총창이 무디면 돌로 까부시고 돌이 없으면 이발로 깨물어서라도 놈들을 소멸하자!》라고 웨쳤다.

상황이 위급해지자 부련장 고봉화는 련부에 가서 상황을 보고할것을 통신반장 리두섭에게 명령하고는 남은 전사들을 거느리고 마을어구 낡은 절당쪽으로 철수하였다.

한편 통신반장 리두섭은 총탄을 무릅쓰고 초연속을 달려 련부에 도착했다. 그의 얼굴은 초연에 그을러 시꺼멓게 되였고 옷도 많이 째졌으며 신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없었다. 리두섭의 보고를 들은 량생옥련장은 리두섭을 기포련에 보내 화력지원을 줄것을 요청한후 지도원과 함께 10여명 전사들을 거느리고 1패 진지로 달려갔다.

련장의 명령을 받은 리두섭은 신을 찾아신을 사이도 없이 맨발바람으로 기포련에 달려갔다. 그는 나무그루에 찔려 발에서 피가 줄줄 흘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긴 피자욱을 남기며 뛰여갔다.

기포련에 있던 조철종(曹哲钟) 부련장은 리두섭이 가리키는대로 목표를 정하고 포병들을 지휘해 사격하였다. 그리고 기포련의 중기관총도 목표를 향해 일제히 불을 토했다.

/중앙인민방송국 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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