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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기념비(60)—10종대의 반격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중앙인민방송 ] 발표시간: [ 2013-03-03 19:22:22 ] 클릭: [ ]

1948년 10월 26일 아침, 료서평원에서 벌어진 국공 량당간의 대격전은 바야흐로 고조되고있었다. 동북인민해방군 제10종대가 흑산-대호산지역에서 국민당군 10만 병력을 막고 3주야의 피말리는 방어전을 계속하고있을 때 금주를 해방한 동북인민해방군 주력이 드디어 도착했다.

이틀간 밤낮없이 달려 가장 먼저 도착한 동북인민해방군 제3종대는 과감한 작전행동을 펼쳐 선두부대가 국민당 료요상병퇀의 최고지휘부를 짓부시기도 하였다. 그리고 1종대, 2종대, 8종대 주력도 흑산-대호산에 당도해 국민당군 각 부대와 접전을 시작하였고 창무와 부신으로부터 남진한 동북인민해방군 5종대와 6종대도 적이 심양쪽으로 도주할 길을 막아놓았다.

10월 26일에 이르러 흑산-대호산지역의 국민당 료요상병퇀은 그물에 걸린 야수마냥 마지막 발악을 하고있었다.

3일간 진지를 사수해야 한다는 엄명을 받은 동북인민해방군 제10종대는 26일 새벽 동북인민해방군 총부의 새로운 명령을 받았다. 동북인민해방군 주력이 이미 흑산-대호산지역에 도착하였으니 10종대는 기타 부대와 배합해 정면으로 적을 공격하라는것이였다. 이로써 피말리는 흑산-대호산 방어전은 승리적으로 끝났다. 10종대 장병들은 너나할것 없이 긴 한숨을 쉬였다.

10종대 량흥초사령원은 총부의 명령에 따라 신속히 28사, 29사, 30사에게 출격목표를 정해주고 정면의 적을 향해 맹렬한 반격을 가할것을 명령하였다. 그는 료요상병퇀은 이미 독안에 든 쥐신세지만 필연코 영구로 도주하기 위해 최후발악을 할것이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흑산-대호산 방어전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면서 계속 잘 싸울것을 지시하였다.

량흥초사령원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101고지와 대백태자, 고가워펑진지 정면의 국민당 신6군 169사와 청년군 207사는 발악적으로 공격해왔다. 10종대 28사 82퇀과 83퇀은 계속 각자의 진지에서 적과 치렬한 전투를 벌였다.

국민당군은 모든 포탄을 아군진지에 발사하였다. 불필요한 희생을 내지 않기 위해 82퇀 1영은 잠시 101고지에서 철수하였다가 재차 반격하였다. 놈들은 많은 희생을 내며 101고지를 점령하였지만 아군 기타 부대의 타격을 받아 적지휘부가 이미 혼란에 빠졌기 때문에 새로운 명령을 받지 못하고있었다. 최고지휘부인 호가워펑이 영웅적인 3종대의 습격을 받았기에 국민당군은 이미 작전 체계를 잃고있었던것이다. 이 기회를 빌어 82퇀은 다시 101고지를 점령하고 83퇀과 함께 고가워펑을 향해 돌진하였다.

10종대 28사 사령부가 있었던 교회당 내부.

8련의 기관총수 원성희.

반격에 나선 아군 전사들.

대백태자 부근의 28사 83퇀 2영 장병들은 불타는 진지에서 대부대가 도착했다는 기꺼운 소식을 접하게 되였다. 살아남은 전사들은 저마다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불바다속에서 3주야를 싸우면서 1분 1초를 애타게 기다려왔던 그들이였다. 2영 기포련의 조선족반장 원성희와 부반장 권혁무는 서로 손을 맞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대부분 련은 반수이상의 손실을 보았으며 심지어 어떤 련은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기포련 1반에도 원성희와 권혁무, 한족전사 초창유와 왕꼬마 네사람만 살아남았던것이다. 해방후 제대하여 연변에서 사업하다가 1982년에 세상을 뜬 원성희는 이런 회억을 남겼다.

《나는 지금도 그런 불바다와 탄우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모른다. 그저 그때 방금까지도 놈들에게 불벼락을 안기던 전우들이 적의 흉탄을 맞고 쓰러지면서도 ‘견지, 견지, 견지하자!’라고 웨치던 일과 숨져가는 전우를 한번이라도 안아눕힐사이도 없이 계속 적에게 사격하던 일만 생각날뿐이다. 매캐한 초연속에서 갈증을 애써 달래며 석쉼한 소리로 숨져가는 전우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를뿐이였다.》

1927년 훈춘현 경신향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난 원성희는 1946년에 훈춘보안퇀에 입대하였다. 그후 전투에서 부상한 그는 후방에 와서 치료를 받았다. 1947년 원성희는 다시 부대를 찾아 돈화에 갔지만 자기 소속인 6종대를 찾지 못하고 10종대 28사 83퇀 2영 4련 기관총사수로 되였다. 그는 사평전투에서 잘 싸워 대공 1차를 세웠고 개원에서 정돈훈련하는 기간 10종대 중기사격대회에서 1등 중기사수 칭호를 받았다.

26일 새벽 3시, 83퇀 2영의 살아남은 장병들은 새로운 명령에 따라 일제히 흑산현 동부의 고가워펑을 공격하였다.

선두에 선 원성희가 기관총을 들고 교통호를 넘자 솜옷을 입은 적군과 여름옷을 입은 아군전사들이 교통호안팎에서 육박전을 치르고있는것을 보았다. 그는 놈들에게 사격하려 했지만 며칠간 쉬임없이 사격하였던 기관총이 고장나서 쏠수가 없게 되였다. 그는 한족 전사 초창유를 데리고 적의 기관총진지 배후로 달렸다. 원성희는 적에게 접근하여 급작스레 수류탄으로 기관총사수의 머리를 치고 적의 기관총을 빼앗았다. 뒤따르던 초창유도 적의 부사수를 쓰러뜨렸다.

원성희는 빼앗은 기관총으로 적의 배후를 통쾌하게 공격하였다. 그는 이곳저곳 자리를 옮기며 사격하면서 후속부대가 달려오기를 기다렸다. 놈들이 점점 많아지고있을 때 적의 측면으로부터 부반장 권혁무가 기관총사격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적진 깊숙이 들어온 원성희와 권혁무 그리고 한족전사 초창유와 왕꼬마 넷은 림시 거점을 만들고 후속부대가 도착할 때까지 적과 치렬하게 싸웠다.

이때 머지 않은 둔덕으로부터 적의 기관총탄이 쏟아져나왔다. 머리를 들지 못하고 엎드렸던 원성희는 권혁무의 엄호를 받으며 둔덕의 적보루에 접근하였다. 가까이 다가간 그는 돌연 몸을 일으켜 적의 기관총대를 꽉 잡고 확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수류탄을 보루에 밀어넣고 날렵하게 기관총을 들고 보루문을 열었다. 원성희의 수류탄과 기관총 사격에 보루의 놈들은 모두 쓰러졌다.

유리한 지세를 점한 원성희는 다시 측면에 있는 권혁무와 함께 적들에게 교차사격을 퍼부었다. 그들의 정확하고도 맹렬한 사격에 적들은 많은 죽음을 내고 물러났다.  83퇀 2영 기포련의 원성희, 권혁무, 초창유, 왕꼬마 넷이 차지하고있는 진지는 적진 깊숙이 자리잡은 곳으로서 국민당군에게 있어서 참으로 눈에 든 가시와 같았다.

적은 반격해오는 83퇀의 공격을 막아내는 한편 남은 병력을 동원해 필사적으로 원성희네를 공격했다. 적이 재차 공격하자 원성희와 권혁무는 역시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고 교차사격을 가했으며 초창유는 무시로 수류탄을 던지며 싸웠다. 이때 적진에 맹사격을 가하던 원성희는 권혁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전호위로 올라서는것을 보았다. 왜냐하면 우회한 적이 측면으로 권혁무에게 다가갔고 이를 발견한 권혁무는 전호에서 나와 기관총으로 달려드는 적을 쓰러뜨리고있었던것이다.

정면으로 적에게 로출된 권혁무를 보자 원성희는 《혁무!》하고 소리쳤다. 그러나 원성희가 《빨리 엎드렷!》하고 소리를 치기도 전에 적탄이 권혁무의 이마에 명중되였다.  원성희는 목이 꺽 막히는듯 하였고 심장이 멎는듯하였다. 그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달려가 권혁무를 꾹 껴안았다. 83퇀 기포련에서 유독 그와 권혁무만이 조선족이였기때문에 두사람은 실로 친형제와도 같이 지냈던것이다. 가장 사랑스러운 전우를 잃은 원성희의 가슴은 찢기는듯 아팠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은 원성희는 초창유와 왕꼬마를 거느리고 계속 싸웠다. 어느새 부상입은 왕꼬마는 몸을 일으킬수 없자 곁에서 묵묵히 탄창에 총탄을 재우고있었고 초창유는 전진에 계속 수류탄을 던지고있었다.이들이 한창 싸우고있을 때 통신원이 달려왔다. 통신원은 후속부대 련장, 부련장이 모두 희생되고 지도원 한사람이 작전을 지휘한다고 했고 어찌하나 이 진지를 사수하다가 대부대가 올라오면 신속히 고가워펑의 적 사단지휘부를 공격하라는것이였다.

적아쌍방의 공방전이 계속 되였다. 원성희가 다시 기관총을 잡고 적에게 사격할 때 수많은 포탄이 그들의 머리우를 지나 고가워펑으로 날아갔고 총탄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원성희와 초창유는 아군 주력이 도착했음을 판단하였다. 원성희는 잽싸게 기관총을 거둬들고 전화선을 따라 적의 지휘부로 달려갔다. 그는 가장 먼저 고가워펑마을에 돌입해 많은 적을 사살하고 적 군관 두명을 포함한 수십명을 생포하였으며 대포 17문이나 로획하였다.

한편 줄곧 대백태자 진지를 사수하던 83퇀 3영도 반격에 나섰다. 그들의 임무 역시 흑산현동부의 고쟈워펑을 공격하는것이였다. 며칠간의 방어전에서 많은 희생을 내고 또 지칠대로 지쳤지만 장병들의 사기는 더욱 높았다.

83퇀 3영 8련의 김교진지도원은 남은 전사들을 재정비해보았다. 전련 장병들은 55명만이 남아있었다. 고봉화 부련장이 희생되고 선두진지를 사수하던 1패가 대부분 희생되였기때문에 남은 전사들로 2패와 3패를 재편성하였다. 그리고 부지도원 리신광을 남겨 렬사들을 안치하도록 하였다.

량생옥련장과 김교진지도원은 8련 55명 전사들을 거느리고 고가워펑으로 달려갔다. 적진에 접근할수록 포탄과 총탄이 더욱 밀집되여 날아왔다. 량생옥련장이 포탄파편에 맞아 다리를 크게 다치자 김교진지도원이 전사들을 거느리고 돌진하였다. 하지만 그도 머리에 파편을 맞았다. 위생원이 달려와 붕대로 그의 머리를 싸매주었다. 깊은 상처는 없었지만 작은 파편에 여러 곳을 맞았기에 붕대는 눈과 코만 남기고 얼굴을 다 둘러쌌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김교진 지도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가장 위험한 시각 자기를 희생하고 전우들을 구한 폭파수 지달만영웅을 생각했고 전사들을 거느리고 지혜롭고 용감하게 싸우다 희생된 부련장 고봉화를 생각했으며 자기의 다리를 끊고 계속 싸운 최성걸반장을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전 련의 간부는 자기밖에 남지 않았다는것을 생각했다. 그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전사들을 지휘해 돌진하였다.

전투에서 중상을 입은 8련 지도원 김교진.

상급에서 영웅적 8련에 준 금기.

놈들도 반돌격을 조직하려 했다. 207사 수십명 병사들이 동쪽으로 달려들어 적아쌍방은 육박전을 벌였다. 치렬한 접전을 거쳐 반격하는 놈들을 소멸한후 8련 전사들은 83퇀 기타 전사들과 함께 용감히 돌진해 고가워펑의 적을 전부 소멸하였다. 이로써 흑산-대호산 방어전을 깨끗이 마무리한 10종대 장병들은 료서평원에서 펼쳐질 대섬멸전을 위해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놓았다.

/ 중앙인민방송국 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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