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백년백인44]우리 민족사회에 길이 남을 소중한 문화유산

편집/기자: [ 김룡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3-08-05 13:32:31 ] 클릭: [ ]

-우리 민족이 낳은 우수한 음악가 최삼명선생 그리고 작품들

위대한 시인이 이 세상에 남긴 것이 감동을 전해주는 시라면 위대한 음악가들이 이 세상에 남긴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선보를 그려주는 아름다운 선률이다.

사람들속에 익숙히 알려져있는 《논물관리원》이나 《내고향 오솔길》은 문화부 대상, 전국소수민족 회보공연 우수상을 받은 아름다운 선률인만큼 지금도 대중들속에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노래의 작곡가는 국가1급 작곡가인 최삼명선생이다. 퇴직한지 오래되지만 최삼명선생은 지금도 《음악창작》특약편집위원, 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 회장,연변문련예술위원회 위원, 연변피아노협회 명예회장 등 사회직무를 짊어지고 여생을 뜻깊게 보내고있다.

음악을 즐기던 농가소년에서 체계적인 음악인으로

최삼명선생(81세)은 흑룡강성 밀산시 대성촌 태생이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소질을 보였던 최삼명선생은 동명촌문공단이 설립되자 어린 나이에 촌문공단의 독창가수 겸 합창지휘로 활약하면서 의용군, 독립군과 팔로군의 장병들을 위한 위문공연에 참가한다. 1947년 동북민주련군에 입대한 최삼명은 부대의 행사 때마다 무대에 올라 바이올린 등 악기로 음악반주를 하여 인기를 모으게 된다. 그의 음악적인 재능은 인차 발견되여 1949년 17세의 나이에 당시 중국에서 유명한 로신문공단 제2단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관악대 튜바연주자로 되었다.

2012년《최삼명작곡선집》출판기념회에서의 최삼명선생.

1950년 1월, 로신문공단에 있던 28명 조선족예술인들이 연변문공단과 합병하면서 최삼명은 연변문공단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 연주원으로 있으면서 음악조 행정분조장, 악대분대장으로 활약하였고 동시에 악대를 위하여 편곡도 하였다. 이 시기 그의 처녀작인 동요 《병아리》가 연변인민출판사의 《아동가곡집》에 발표되고 가요 《쇠목차간의 노래》가 무대에서 공연되는 등 18살 어린 나이에 작곡가의 싹수를 보였다.

그러던 그한테 출국류학의 기회가 생겼다. 조직의 파견으로 최삼명선생은 1955년 8월부터 1959년 8월까지 조선국립음악대학 작곡학부에서 공부하게 되였는데 해방후 처음으로 서양 음악리론과 조선전통음악을 체계적으로 장악한 음악인이였다. 류학기간 그는 조선민요도 배웠고 조선민족 전통음악인 판소리도 배웠다. 특히 그가 창작한 교향시 《해란강》, 현악4중주 《행복》은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공연되고 《해란강》은 조선중앙방송에 방송되였으며 바이올린독주곡 《목가》 및 몇수의 노래가 조선의 음악출판물에 실리기도 했다.

음악을 위해 내린 결단

1959년 10월 조선류학을 마친 최삼명선생은 귀국후 선후하여 연변예술학교 작곡교연실 주임, 연변가무단 창작평론실 주임으로 있으면서 900여수(부)의 음악작품을 창작하였는데 그중 남고음독창곡 《물길따라 천리길》, 《친선의 물결》, 《사과배 따는 처녀》는 60년대 최삼명선생이 작곡한 대표적작품이였으며 이런 노래들은 대중들속에 널리 알려지고 지금도 불리워지고 있다.

최삼명선생은 원래 지독한 애연가였고 술군이였다.

《나는 선생의 집에 가서는 그의 담배통에 버릇없이 손을 대군 했다. 그때 그는 담배를 피우고 술도 굉장히 마셨으며 최주정뱅이란 별명도 달고 있었다.》이는 리상각시인이 최삼명선생과의 인연을 이야기 하면서 밝힌 내용이다.

하지만 그렇듯 술담배를 즐겼던 최삼명선생이였지만 음악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과감히 포기할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나이였다. 1970년 병원으로부터 간경화복수와 신염복수라는 무서운 진단을 받게 되자 최삼명선생은 자기를 반성했다. 나라의 덕분에 류학까지 갔고 그토록 음악에 애착을 갖고 있는데 건강을 해치는 술담배 때문에 음악의 길을 접고싶지 않았다. 최삼명선생은 아예 술담배와 담을 쌓고 병치료에 전념하는 한편 건강에 도움되는 낚시 등 취미운동으로 건강을 되찾기 시작했다. 한때는 분재에 재미를 붙이고 근예작품이 될만한 나무뿌리를 찾아 산에 자주 오르고 낚시하러 저수지를 자주 찾군 했다.

부인 윤청자와 함께 있는 최삼명선생.

음악에 대한 집착과 이를 위한 건강찾기로 최삼명선생은 왕성한 창작활동을 맞이하게 된다. 그중 특기할 작품이 아마도 당시 노래할줄 아는 연변사람들이라면 한두번쯤은 다 흥얼거렸던 노래 《내 고향 오솔길(황상박 작사)》, 《두루미(리상각 작사)》, 《왜 물어보나(김태갑 작사)》, 《눈이 내리네(김동진 작사)》 등 다수의 작품일 것이다. 이런 노래들은 폭넓은 대중성으로 하여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음은 물론 지금도 널리 불리워지고 있다.

가극창작의 리정비적 작품 《아리랑》

최삼명선생의 60년 음악인생에는 대중가요뿐만 아리나 교향곡, 무용곡, 대합창조곡 등 예술성, 대중성, 민족성이 짙은 력사적, 시대적인 작품들을 많이 창작하였다.

가극 《아리랑》은 《우리 나라 가극창작의 리정비》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아리랑》에는 당시 연변가무단 창작평론실 주임이였던 최삼명선생을 비롯한 우리 민족 음악인, 예술인들의 정성과 심혈이 그대로 담겨져있다. 최삼명선생은 안국민, 허원식, 최창규 등 작곡가들과 함께 세번 실패끝에 이 작품의 음악창작을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제2회 전국오페라견학공연에서 유일하게 우수상을 수상했고 중국문화부 제1회 문화대상을 수상했다.

2012년《최삼명작곡선집》출판기념회에서의 최삼명(오른쪽 두번째)선생.

그동안 최삼명선생은 선률이 아름답고 민족풍격이 짙으며 시대특징이 짙고 민족 심미감에 맞는 수많은 음악작품들을 창작해내였다. 그는 선후하여 교향시 《해란강》 C대조 바이올린협주곡, 관현악조곡 《장백봉화》등 기악곡, 《장백의 봉화》, 《아리랑》(합작) 등 가극, 《친선의 물결》(집체창작), 《양금월》등 가무극, 《형제봉의 노래》(합작) 등 무용극, 《심청전》등 연극음악, 《첫봄》, 《민들레》, 《아리랑》 등 영화, 텔레비죤드라마 음악, 《모택동송》 등 대합창 및 《홍매송》, 《논물관리원》, 《삼천리강산》, 《눈꽃》 등 무용곡을 비롯하여 《조국은 어데가나 살뜰하였네》, 《사과배 따는 처녀》, 《물길 따라 천리길》, 《두루미》, 《왜 물어보나》, 《내고향 오솔길》, 《눈이 내리네》 등 예술가곡을 포함한 900여수의 가요를 창작했다. 이같은 작품들 가운데는 국내외콩클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도 수십편 된다. 그는 또 《내 고향 오솔길》, 《최삼명작곡집》도 펴냈다. 최삼명선생은 1991년 길림성정부로부터 대공을 기입받았고 1999년에는 중국세기예술금상 평의위원회로부터 유일한 조선족음악인으로 금상을 수상했다.

80세를 넘긴 최삼명선생, 최삼명선생이 작곡한 더욱 많은 노래들을 기대하긴 힘들겠지만 최삼명선생이 남긴 음악작품들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문화자원으로 문화유산으로 길이길이 빛을 발할것이다.

참고문헌: 《문화시대》2012. 2월호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