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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온 기별-미국] 뉴욕에서 철공기술로 성공한 조선족기업가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11-19 22:11:47 ] 클릭: [ ]

뉴욕 현대철강소 권영수사장

1990년대이후 산업연수를 시작으로 수많은 중국 조선족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으로 이동해 오고있는데 이들은 대부분이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운영하는 네일,식당,목공,사우나,건축,운수… 등 여러 업종에 종사하고있다.

그러나 그중에는 한중기업은 물론 미국기업과 어깨나란히 당당하게 자체의 기업을 운영하고있는 자랑스러운 조선족기업가들도 있는데 뉴욕 현대철강소 권영수(51세) 사장이 바로 그중의 한분이다.

국제적 도시 뉴욕에 찾아온 중국조선족들은 주로 맨해튼 지역과 플러싱지역에 자리를 잡는데 그중 약 70%이상이 플러싱지역에 거주한다. 권영수사장은 17년전에 조선족으로서 처음으로 플러싱지역에 철강업체인 현대철공소를 개업하고 지금까지 독창적으로 훌륭하게 잘 운영해오고 있다.

길림성 영길현 (永吉县)에서 태여난 권영수사장은 고향 이도에서 농사일에 종사하면서 곡식을 심기전에 땅을 갈아엎는 고된 일을 하던중에 순간적으로 로동력을 절약하면서도 효률적으로 땅을 갈수있는 농기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였다.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평소에 자주 드나들며 일을 거들어주던 삼촌의 농기구 제작 수리업체에서 그는 자신의 창의력과 손재주를 총동원하여 쟁기 발명에 온갖 심혈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철을 다루는 일에 각별한 흥취와 애착을 갖고있다는것을 발견하게 되였고 나중에 철과 관련되는 어떤 일이든 즐겁게 잘할수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였다.

드디여 1995년에 그는 소형뜨락또르뒤에 매달아 쓸수 있는 한전, 수전 겸용 쟁기(땅 가는 농기구)를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는데 성공하여 영예롭게도 길림성 과학원의 “신기술 발명 특별상”을 수여받게 되였다. 또한 그의 창의력과 손재주는 국가 특허국으로부터 높은 인정을 받아 과학기술자들도 따내기 어려운 특허권까지 취득하게 되였다. 특허권이 직접 생산에 투입되는 가능성은 하늘의 별따기여서 겨우 5% 밖에 안되지만 그가 발명한 농기구는 실용성이 강하고 로동력을 획기적으로 절약할수있었기에 직접 생산에 투입되는 휘황한 성과를 올렸다.

희소식은 태평양을 날아넘어 그는 1996년에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세계신기술 발명 박람회”에서 은상을 받는 벅찬 영광과 기쁨을 누리게 되였다.

이것을 발판으로 그해에 그는 시골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에서 더 큰 꿈을 이루고자 미국땅에 정착할 결심을 내리게 되였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훌륭한 발명창조를 했는지 랭정한 미국에서는 알아 주지도 않았고 통하지도 않았으며 서로 다른 언어와 피부색과 문화들은 장벽이 되여 그의 앞을 가로 막았다. 미국생활의 제일 밑바닥에서 령부터 시작해야 했다. 겨우 아는 사람 한분을 만나 뉴욕 플러싱지역에 있는 지하실 단칸방에 자리를 잡게 되였다. 무슨 일을 할수있느냐는 그분의 물음에 기다렸다는듯이 철과 관련된 모든 일은 잘할수 있다고 말씀드려서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철공소에서 발을 붙이게 되였다.

철강을 짜르고 잇고 구멍을 뚫고 용접하는 일부터 시작하여 도적 방지용 철문 , 철계단,주택단지 철대문…등 등을 만들고 가설하는 일까지 일상생활에서 철과 관련된 궂은 일, 험한 일 가리지 않고 구슬땀을 흘리며 일했다.

철공소 일이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그는 철강을 만지는 감각이 뛰여나고 적성에 맞는지라 해볕이 들지 않아 습기차고 눅눅한 지하실에서 생활하면서도 “쨍 - 하고 해뜰 날”을 기다리며 억척스럽게 일하였다. 그의 뛰여난 일솜씨와 친절한 서비스는 고객들의 인정과 환영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점차적으로 고객들이 늘 찾아주는 “미스터 권”으로 인기가 좋았다.

그는 이처럼 미국에 정착하는 처음 몇년동안 달갑게 모든 고생을 감내하며 철공기술을 부지런히 익히는 한편 악착같이 종자돈을 모아 1999년에 드디여 자신의 “현대 철공소”를 오픈하고 미국에서 성공할수있는 꿈의 터전을 마련하게 되였다. 그는 한층 업그레이드 된 철공일로 각도를 바꾸어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들을 바탕으로 고도의 전문성과 엄격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건축에서 가장 관건적인 파트인 강철로 건축물의 골격을 세우는 철공일에 과감히 도전하였다.

2003년에 그는 플러싱지역의 노던블로바드와 페링톤스트릿이 만나는 곳에 지하 1층과 지상 2층의 연건평 2만4000스쿼에피트( 면적단의)에 달하는 대형 건물의 철공공사를 순조롭게 마무리하고 이어서 뉴저지에 있는 층당 2만 스퀘에피트에 달하는 주차장까지 포함하여 신축비용만 해도 250-300만불에 달하는 대형공사도 성공리에 끝마치였다. 짧은 2년사이에 무려 8채나 되는 큰 건물의 철공을 훌륭하게 완공하는 쾌거를 올림으로써 뉴욕의 조선족들가운데서 신선한 충격과 감탄을 안겨주었다.

현대철공소가 세운 뉴욕 퀸즈 자메이카에 있는 상가건물의 철강골격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풍파가 없이 성장하는 기업은 없는가부다.

2008년에 뉴욕 월스트리이트 금융위기로 인한 미국의 경제침체가 부동산에 안겨준 타격은 아주 치명적이였다. 집값은 대폭 떨어졌고 부동산 시장은 꽁꽁 얼어 붙었다.

현대 철강업소에는 직원들이 많을 때에는 수십명까지 되였지만 경제공황에 빠진 상황에서 그는 부득블 직원 한명만 남겨놓고 모두 내보내야 하는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칠흙같이 어두운 터넬이였다.

하지만 그의 몸에는 그 어떤 어려운 역경과 고난도 참고 견디며 이겨내는 조상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강철의 속성을 닮은 강하고 굳센 의지가 있었다.

추운 겨울이 가면 따뜻한 봄이 찾아 오듯이 마침내 혹독한 경제 한파가 서서히 지나가고 드디여 경제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현대 철공소에도 권사장을 찾는 전화소리가 반갑게 다시 울리기 시작하였다.

경제공황도 겪고 미국인들과 한국인들이 경영하는 비슷한 업소들도 적지 않았을턴데 오늘의 이자리에 오기까지 성공의 비결이 무엇인지에 대한 필자의 궁금증을 그는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다른 비즈니스도 마찬가지겠지만 제가 하는 일은 특별히 고객과의 신용을 지키는것이 생명입니다. 저를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크고 중요한 공사들을 저한테 의뢰할수 있겠습니까? 다음은 가격인데 적당한 선에서 윈-윈 합니다. 또한 실력이 뛰여나야 합니다. 건물자체가 증인이 되기때문에 만년먹기로 철공작업을 철처하게 합니다. 이 세가지를 잘 지켜가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굳이 광고가 필요없이 입소문을 통해 시장은 넓어지고 일 주문은 끊임없이 계속 들어오고있습니다.”

그는 고객들과의 신용을 철저히 지킬뿐만아니라 직원들을 따뜻하게 관심해주고 배려해주면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있다. 그중에서 료녕성 철령에서 온 직원 한명은 8년동안 그와 함께 일하다가 귀국한지 몇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안부를 전해오고있다.

뿐만아니라 그는 고향의 조선족들이 뉴욕에 처음 와서 발붙이기 어려운 상황에 있을때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그들이 일자리를 찿을때까지 한두달정도 일거리를 제공해주면서 미국에 잘 정착할수있도록 도움을 주고있다

그가 맨주먹으로 미국에 온지도 이언 강산이 두번 바뀌는 시간이 흘러갔다 .

지난 17년동안 그는 현대 철공소를 운영해오면서 뉴욕 , 뉴저지일대를 누비며 은행, 교회, 주차장 건물, 주택, 상가 …등 크고 작은 건물들의 철강 골격을 수도 없이 많이 세웠는데 그 가운데는 지하건물이 있는가 하면 높게는 15층짜리 빌딩도 있고 원래 단층이였던 건물을 증개축으로 건설한 사례도 있다.

그는 미국의 번화한 도시 뉴욕에서 자기가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을 행복하게 찿아내고 자신이 즐겁고도 열심히 세워 올린 철강골격에 따라 높고 낮은 건축물들이 완공되는것을 바라볼때마다 더없는 자호감과 보람을 느끼고 있으며 보다 업그레이드된 기술로 래일을 맞이하기 위하여 오늘도 신들메를 단단히 조이고 있다 .

/리화옥 미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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