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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온 기별-미국]민족과 고향사랑 실천하는 백의천사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12-23 14:17:37 ] 클릭: [ ]

“펜실베니아주 조선족동포회”의 초대회장 박영애원장

미국“펜실베니아주 조선족동포회”의 초대회장이며 필라델피아에서 25년간 연변한의원을 운영하고있는 박영애원장은 그동안 여러 신문, 잡지, 인터넷을 통하여 미국의 동부 조선족사회뿐만아니라 한인사회 그리고 고향의 조선족들사이에서 민족사랑, 고향사랑을 실천하는 백의천사로 덕망이 높다. 뿐만아니라 워킹맘으로서 또 정열적인 사회활동가로서 미국에서 두 딸을 훌륭하게 키워낸 조선족 이민 1세의 빛나는 본보기로 그 미담이 널리 전해지고있다.

자녀교육에 대한 경험담에 앞서 그는 오늘의 박영애가 있게 된것은 고향에서부터 지켜온 “내가 할수 있는 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즐거움을 찿는” 삶의 신조에서 비롯된것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의사생애는 19살 맨발의사 시절부터 시작되였다. 70년대 편벽한 시골의 렬악한 의료환경에서 그는 환자들의 병을 치료하겠다는 일념으로 직접 약재를 재배하기도 하고 약초를 찿아 산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는 이런 약초들로부터 유효성분을 추출해내여 여러가지 주사약 등을 과감하게 제조해냈는데 치료효과가 아주 좋았다.

그는 또 개혁개방이후 연길에서 맨처음으로 개인진료소를 오픈한 “창시자”이기도 하다.“큰 가마밥을 먹는”편안함보다 “젊을 때 고생을 돈 벌면서 즐겁게 찿아”하였는데 당시 그의 월급이 32원일 때 순수입만 천원을 올리는 “만원호”가 되였다.

이런 남다른 시대적 경력과 삶의 신조를 지니고있던 그는 1990년에 류학생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와서 8개월만에 한의원을 개업하고 누구보다도 쉽고 빠르게 미국에 정착하여 두 딸의 자녀교양에 온갖 심혈을 기울여왔다.

중국의 조선족이라는 민족의식을 심어주다

큰 딸 혜영이는 (87년생) 세살 때에, 작은 딸 혜명이는(88년생) 한살 때에 각각 미국에 건너와 영어권에서 자라난 중국의 조선족 1.5세들이지만 우리말을 류창하게 잘할뿐만아니라 중국어도 잘한다.

자기민족 언어를 구사할수 있어야 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질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딸들이 대여섯살되던해부터 6년동안이나 주말마다 필라지역에 있는 한글학교에 보냈다. 가정에서는 그때그때 년령특점에 맞는 우리 말로 된 동화책이나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었고 중고등학교 때에는 한국 대중가요나 한국드라마를 통하여 한국문화를 알게 하였고 집에서는 꼭 조선말을 하게끔 철저하게 가르쳤다.

“우리애들이 자기 민족언어를 알아야 부모세대와 보다 깊은 감정을 소통할수 있고 그 문화와 습관을 더 잘 리해할수있다.” 며 재삼 강조하여 말한다.

딸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또 중문선생을 초빙하여 집에서 중문을 배우게 하였다.

그는 이처럼 황인종으로서 미국에서 커가는 두 딸애에게 민족의식을 확고하게 심어줌으로써 “코리안 차이니즈 아메리칸”(미국에 살고있는 중국의 조선족) 이라는 정체성을 확실하게 정립할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미국 부모들은 자녀들한테 일찍부터 자립심을 키워주고 18세부터 독립할수 있는 기반을 닦아준다.

그는 년년생으로 자라는 딸들이 어려서부터 일생생활가운데서 혼자 할수 있는 일들을 스스로 찿아서 할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칭찬해주었다.

큰 딸은 소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자명종을 두번 설정해놓고 첫번째 종소리가 나면 아침에 깨여나고 두번째 종소리가 나면 스쿨뻐스 타러 집을 나서군 하였는데 엄마의 도움은커녕 동생까지 챙겨주는 왕언니노릇을 야무지게 잘했다. 방과후에는 비디오를 보기전에 먼저 자기방을 정리정돈하고 청소하는 습관도 가르쳐 주었다.

워킴맘이라 일주일에 한번씩 대량으로 장을 보는데 쇼핑백들을 차에서 내리우는것부터 시작하여 분류하여 랭장고에 잘 정리하여 넣는것은 일부러 딸들의 몫으로 남겨놓는다.

2006년 펜주 조선족동포협회 창립식에서 박영애 초대회장(왼쪽 다섯번째)

미국은 스포츠에 열광하는 나라로서 다양한 스포츠와 취미생활들은 대학입시에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워킹맘이였지만 시간안배를 잘해가면서 여러 방법을 대여 딸들을 발레학원에도 보내고 탁구 등 스포츠를 다양하게 배우게 하였다 . 고중에서 두딸은 “필드하키”(Field hokey) 학교팀선수로 활약하면서 큰딸은 방어수, 작은 딸은 공격수가 되여 동양인 자매선수로 인기를 끌었다. 작은 딸은 그외에도 학교 라크로스 (Lacrosse)대표팀 주장이기도 하였다. 두 딸애에게 처음에는 피아노를 함께 배우게 하다가 각자 흥취에 맞게 큰 딸은 플룻(Flute), 둘째딸은 바이올린을 선택하고 꾸준히 배울수 있도록 밀어주었다.

미국에서는 학생을 평가할때 학교성적 못지 않게 리더십과 봉사정신을 중요시한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그는 조선족동포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을 맡으면서 자기건물 1층을 무료로 동포회관으로 내놓고 조선족동포들의 미국 정착에 필수적인것들을 아낌없이 무료로 제공해주었다. 당시 조선족동포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그들의 필요와 사랑이 있는 동포회관을 우리들의 본가집이라고 정답게 불렀다. 그는 이렇게 동포들을 위한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실제행동으로 리더십과 봉사정신을 확실하게 딸들한테 가르쳐주었다.

그는 또 한국양로원을 딸들에게 소개시켜주고 한국말을 잘하는 그들이 정기적으로 양로원을 찿아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말동무도 되여주고 필요한 도움도 드리는 봉사활동을 하게 하였다. 딸들은 또 알아서 아이들에게 수학 등 과목도 가르쳐주고 숙제하는것도 도와주는 봉사활동들을 하였다.

큰딸 혜영양, 연변의학을 계승발전시킬 믿음직한 후계자

큰딸 혜영이는 우수한 성적으로 필라 로워모어랜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펜실베니아주 주립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일년동안 대학교생활을 하면서 보다 성숙된 자세로 자신의 진로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마침내 엄마의 뒤를 이어 연변중의학을 계승발전시킬 장하고 큰 결심을 내리게 되였다.

큰딸 혜영이와 함께

그는 대학교 2학년 때에 중국에 있는 상해중의약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중의학공부를 시작하였는데 다행히도 중학교 때에 배웠던 중국어가 큰도움이 되였다. 다시 미국에 돌아온 그는 3년동한 동양의학을 공부하고 한의사 자격증시험을 취득한후 3년전부터 엄마를 스승으로 모시고 연변한의원에서 한의사의 길을 걷고있다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침구는 신비로운 치료술을 보여주는 대체의학으로 인식되고있다. 침술과 한약이 대표적인 “자연료법”으로 몸에 부작용이 없고 그 우수성이 립증되면서 점차적으로 인기가 높아지고있다.

특히 작년 10월에 중국의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여받은 도유유(屠呦呦)가 발명한 아르테미시닌(青蒿素)은 인류의 생명과학에 걸출한 공헌을 하였는바 이는 중의학의 승리로서 중의학이 새롭게 세계 과학분야의 고도로 되는 중시와 인정을 받게 되였다.

따라서 한의학은 미국에서 새롭게 각광을 받고있으며 또 아세아인들이 자기들만의 특권으로 잘할수 있는 유망한 직종으로 인기가 높아가고있다.

현재 연변한의원의 환자중 40%가 미국인들이라는 사실이 놀랍고도 희망적이다

한문으로 된 약처방도 문제없이 알아보는 그는 한의학을 알아갈수록 흥취를 느끼고있으며 엄마한테서 의술과 인술(仁术)을 동시에 배우고있다. 따뜻한 마음으로 환자들한테 다가가 친절하게 상담하고 미국에서 자란 요즘 애들답지 않게 진한 초약냄새를 기꺼이 맡으며 성심껏 한약을 달이는 딸애의 진지한 모습에서 박원장은 젊은시절의 자기 모습을 보는것 같다며 감개무량해한다.

그는 스승이자 멘토인 엄마가 40여년동안 쌓아온 깊은 전통을 갖고있는 한의약의 비법과 정수들을 고스란히 전수받으면서 코리안 차이니즈아메리칸으로서 연변중의학의 미래를 짊어지고 계승발전시켜가고있다.

둘째딸 혜명양, 다재다능한 자랑스러운 조선족 1.5세

“혜명이는 제가 오래동안 교직에 몸을 담고있으면서 보아온, 십년만에 겨우 한명정도 나타날수 있는 기억에 남을만한 뛰여난 학생입니다.” 로워모어랜드고등학교 유태인 교장이 둘째딸의 졸업에 즈음하여 한 말이다.

그는 중학교때에 월반하여 고등학교때까 지 줄곧 전과목 성적 A를 확보해왔으며 배려심이 많고 리더십도 뛰여나 고등학교때는 아시아계 학생회 공동회장을 맡았고 필라델피아 린근 지역 7개 학군의 아시아계 학생회와 련합해 각종 행사들을 주관해왔다.

둘째 딸 혜명이와 함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는 코카콜라 장학금을 수여받는 영광을 지녔다. (코가콜라 장학금은 매년 졸업을 앞둔 고등학교 학생들중 학업성적도 우수하고 특히 4년동안 쌓아온 리더십, 지역사회 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룩한 성취를 평가하여 미국전역에서 5550명을 선정하여 수여하는것이다.)

그는 한국어, 중국어, 에스빠냐어, 영어 등 4개 국어를 구사할수있는 자신의 능력에 비추어 뉴욕대학교 스턴 비즈니스 스쿨에 입학하였다. 맨하탄의 한복판에 위치한 스턴 비지니스 스쿨은 미국에서 톱 5위안에 속하며 특히 금융,국제경영 등에서 우수하다. 대학 4년동안에도 그는 해마다 학과점수 A를 따내여 학교에서 방학 때마다 무료로 제공해주는 세계일주 려행을 다닐수있는 특혜를 누릴수 있었다.

금융, 회계학을 전공하고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2010년에 세계 157개국에 지사를 두고있는 세계 최대의 회계법인이며 컨설팅회사인 뉴욕 PWC회사에 취직하였다. 그는 고중시절에 쌓아온 네가지 언어를 구사할수 있는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여 회사의 귀재로 쓰임받았다.

근래에는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미국 최대의 테크놀러지 및 미디어회사에 전근해 회사의 취지에 따라 전세계 도시의 삶의 개선과 번영을 돕고있다. 그는 한층 풍부해지고 업그레이드된 경험과 전공으로 자기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며 세계금융과 경제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조선족 1.5세의 영광을 빛내고있다.

행복한 엄마, 자랑스러운 딸들

“두 딸애가 년년생으로 거의 쌍둥이처럼 자라면서 많은 즐거움과 기쁨을 주었어요. 어느덧 미국주류사회에서 각자 하고싶은 일들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어서 엄마로서 기쁘고 감사하지요.”

박영애원장은 26년간의 미국생활에서 두 딸을 훌륭하게 키웠을뿐만아니라 조선족동포들을 위하여 많은 선행들을 베풀어왔다. 2007년부터는 연변대학에 매년 10명의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있다. 그는 “저는 드린것보다 받은것이 더 많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감격스럽게 말하면서 장학금을 받았던 연변대학의 한 대학생이 보내온 짧은 메시지 하나를 소개했다 .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라온 저에게는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꼭 성공하여 불쌍한 우리 엄마를 행복하게 해드리는것이였습니다. 지금 저에겐 아름다운 꿈 하나가 더 있습니다. 더 크게 성공하여 장학재단을 세워 저처럼 가난한 대학생들을 돕겠습니다.” 

그동안 박원장이 뿌린 우리 민족사랑의 씨앗들이 먼 훗날 아름다운 꽃으로 만발하기를 기대하며 혜영양과 혜명양의 앞날에도 창창하게 밝고 아름다운 장미빛 인생이 펼쳐지기를 기원한다.

/리화옥 미국특파원

박영애 간력

1954년 길림성 교하시에서 출생

미국 글로벌대학 한의학 박사 ( 2001년) 북경중의학원 고급침술 연수반 연변의학원 길림시의학전문학교 (오관과)

연변방직공장직공병원 의사 / 중국황산의과대학교 교수 / 길림시 룡담병원 의사

저서: “몸한방으로 다스려라” (2010년) /“中国推拿治疗学” (2002년 공저)

기부금 조달: “펜실베니아주 조선족동포회”창립에 거액을 기부(2006년)

모교-교하시 신참진조선족소학교 (1997 - 2001년,2001년 페교 ) 도문시 월청중학교(2001년) 연변1중(2001년) 연변대학박물관 건축기금 거액을 기부 (2007년)

연변대학 “박영애 조학금”설치 (2007년-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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