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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상기20]일본에서 느껴본 왕따에 대한 생각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1-23 09:51:33 ] 클릭: [ ]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 모두가 한번 쯤은 고민해봤을 왕따(이지메)문제이다.

특히 일본에서 자식을 키우는 외국인으로서 심각하게 고민하는 부모들, 그런 걱정 때문에 아예 아이를 고향에 보내는 부모들, 일본에 살면서도 일본의무교육의 혜택을 벗어나 국제학교(インターナショナル・スクール)에 아이를 보내면서 비싼 교육비를 감당하는 부모들도 있다.

사실 20년전 일본에 갓 왔을 때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왕따가 사회적인 문제로 론의되였고 학교 교원들이 민감하게 다루는 문제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자라다 보면 싸울 때도 있고 그러는데 괜히 애들 싸움에 어른들이 민감해지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던 나였다. 그러던 내가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에서 어른들 사이에 존재하는 왕따 비슷한 것을 목격하게 되였다.

말수가 적고 차림새가 약간 세련되지 못한 이와모토(岩本)라는 30대의 일본녀자가 있었는데 주위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여럿이 다 모이는 점심시간에 혼자 한쪽 구석에 돌아앉아서 밥을 먹군 하였고 일본어가 잘 통하지 않는 나보다도 말할 기회가 없는듯 “오하요고자이마스”와 “사요나라”의 인사말외에는 누구랑 대화하는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주위의 분위기에 맞추어 거의 반년을 그와 모르는 사이처럼 지냈다. 동그라미와 같은 인간관계의 륜(輪) 밖에 나가기 싫어서였다. 그 후 직장을 그만두게 된 이와모토씨가 제일 마지막 날에 나에게 “그동안 신세가 많았습니다” 라고 말을 걸어왔다. 잠간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그녀가 결혼해서 아이가 셋이 되는, 조금은 과묵한 성격의 보통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였다.

무시당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이며 말로만 들었던 왕따가 애들 세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된 나였다 .

아들애가 소학교 2학년 때의 어느 날, 학교에서 갑작스러운 학부모회의 통지가 왔다. 급한 전화련락으로 저녁시간에, 그것도 아버님들의 참가를 바란다는 것은 중요한 회의임을 알려주는 것이였다. 고급학년에서 발생한 일 때문에 전 학교의 학부모들이 모였다. 신상자에 넣어둔 신이 물에 흠뻑 젖어있었다는 왕따 시작의 조짐이 생겼던 것이다.

아들애의 학급이 아닌게 다행(이 말이 제일 무책임한 말이지만)이지만 언제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고 ‘왕따를 하는 측’, ‘당하는 측’,‘방관하는 측’, ‘무시한 측’왕따를 구성하는 이 4가지중 어느측에는 꼭 있을 아들애 때문에 생각이 착잡해진 것만은 사실이였다.

이튿날 아침에 아들애한테 물었다.

“이지메(왕따)현장에 부딪치면 어떻게 하겠니?”

“당연히 말려야지.”

깊이 생각도 안하고 하는 애의 대답에 솔직히 걱정이 더해졌다.

“그래 그래야지… 근데 그러면 다음에 너를 이지메할 수 있지 않을가?”

“무서울 거 없어요.”

한마디 던지고 학교로 가는 아들애의 당찬 뒤모습에 자부감보다 불안함이 앞섰다.

나는 과연 어떤 대답을 원했을가…

나 같은 어른들의 능글맞고 교활한 생활의 지혜가 맑은 아들애의 마음에 전혀 통하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인데…

불안했다. 무작정 나서서 정의를 지키는 아들애가 눈앞에 선했고 그 후과에 대한 과대망상에 잠을 설쳤다. 남편한테 부탁했지만 역시 왕따현장에 끼여들지 말라는 말은 끝내 못하고 “만일 왕따당해도 약해지면 안돼. 끝까지 해치워!” 라는 메인터넌스(자동차정비)차원에서의 말을 여러번 곱씹어 했다고 했다.

그렇게 ‘정비’가 계속되는 어느 하루 담임선생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학교에서 제일 친한 사이인 지넨(自然)군과 아들애가 큰 싸움을 했던것이다.

축구를 하다가 쟁론이 있었는데 “너 이상한 중국사람이야. 돌아가!”,  “너야말로 이상한 일본사람이야. 니가 가!” 라는 말들이 둘 사이에 오갔고 마지막에는 목덜미까지 잡고 란리가 아니였다 했다.

그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애를 데리고 드리이브하면서 “잘했어!”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남편이 후에 사과하러 찾아온 지넨군의 아빠와 친한 술친구가 되였고 그 인연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였다.

썩 후에 안 일이지만 그 때 우리가 중국인이였기 때문에 문제가 커질가바 학교측에서는 많이 긴장했었다 한다. 하지만 ‘늘 붙어서 다니니까 싸울 때도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량측 부모가 관여하지 않았다. 싸운 이튿날에 우리 집으로 놀러 온 지넨군을 보면서 애들 자신이 해결하도록 지켜본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결국 두 아이는 직장인이 된 오늘에 이르러서도 친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

물론 왕따와는 거리가 먼 일이였지만 그 때 만일 애들 사이에 오갔던 말을 가지고 크게 문제 삼았더라면 생각지 못했던 방면에서 애들이 주목받았을 것이다.

왕따의 진정한 원인과 해결방법이 무엇인지 모색이 계속되지만 주변사람들과 주변환경에 의해 다소 경감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본에서 해마다 300명 정도가 왕따에 못견뎌 자살한다고 하는데 줄어들지 않는 왕따의 가로세로의 확장에 해결방법이 적은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길림신문 일본특파원 리홍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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