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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재]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한인화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1-14 15:50:08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1군―사급 이상 장령

한인화(韓仁和, 1913—1941): 중공남만성위원회 위원,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총사령부 참모장

1913년에 길림성 영길현 우라가에서 태여나 1926년에 동북군에 입대하였으며 1933년 5월, 지하공산당원인 조국안, 송점상 등의 영향을 받아 소속 박격포련과 함께 무장봉기를 일으켜 중국로농홍군 제32군 남만유격대 박격포대대에 편입되였다. 1933년 8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그 해 9월,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가 결성되자 비서가 되였다. 1934년 11월,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군부 비서장이 되였고 1936년 7월, 중공남만성위원회 위원이 되였다.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이 동북항일련군 제1군으로 개편되자 제1군 비서처 처장이 되여 양정우를 협조하여 대부분 문건을 작성하였다. 또 양정우를 협조하여 전군의 군사행동과 전략전술을 연구하고 결정하고 작전을 지휘하기도 하였다. 양정우를 따라 길림성과 료녕성의 20여개 현을 전전하면서 100여차의 크고 작은 전투를 겪었으며 이 와중에 양정우의 유력한 조수로 되였다. 1937년 7월, 흥경(오늘의 료녕성 신빈현) 황토강 부근의 대와자구전투에서 왼손과 왼눈에 부상을 입고 치료를 제때에 받지 못해 결국 왼눈이 실명하였다.

1938년 3월 13일, 로령턴넬공사 현장 습격전을 지휘하여 일본군과 괴뢰군 100여명을 사살하였거나 포로하였으며 대량의 량식과 천을 로획하였다. 잇달아 신개하, 태평구, 문자구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도 지휘하여 적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1938년 5월, 항일련군 제1로군 총사령부와 중공남만성위원회가 집안 로령에서 소집한 련석회의에서 제1군 제3사 정치위원이 되였다. 얼마 후 제1로군이 3개 방면군과 1개 경위려로 개편되자 제1로군 총사령부 참모장 겸 경위려 정치위원이 되였다. 그 해 8월, 경위려를 거느리고 장강전투에 참가하여 괴뢰군 수색려 제32퇀을 섬멸하였다. 그 해 12월에는 양정우와 함께 부대를 거느리고 화전현 류수하자의 적들을 습격하여 100여명을 살상하였다.

1939년 4월, 양정우와 함께 부대를 거느리고 대포채하를 공격하여 일본군과 괴뢰군 200여명을 섬멸하고 대량의 군용물자를 로획하였다. 5월에는 경위려 제1퇀을 거느리고 화전에 쳐들어가 적들의 탄약고와 의복창고를 점령하였다. 양정우가 희생된 후 경위려를 거느리고 오상, 목릉, 녕안, 왕청 등지에서 활동하였으며 선후로 오상 향수하자, 왕청 대흥구, 녕안 록도, 경박호 북호두 등지에서 전투를 벌렸다. 1941년 3월 13일, 9명의 전사를 거느리고 녕안현 경박호 상만구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리다가 전사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장령전》, 《동북인물대사전》)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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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들은 수없이 많다. 그동안 이들과 관련된 연구서적들이 출판되면서 우리 민족 영웅들을 기리고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 우리 민족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력사자료 부족, 연구 제한 등으로 아직도 이름도 명예도 남기지 않은 채 땅속에 묻힌 영웅들이 많고도 많다.

이에 《길림신문》은 광범한 독자들의 친족 혹은 아직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조선족 항일투사들의 감동사적(1,000자 좌우)을 접수해 무명영웅과 그들의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저 한다.

접수메일: shenyy66@163.com

련계인: 심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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