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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재] 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한호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1-21 09:30:19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1군―사급 이상 장령

한호(韓浩, 1905—1935):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제1사 사장

원명은 김한호(金翰浩)이고 김영노, 김한걸이라고도 불렀다. 1905년에 조선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여나 1920년대 중반에 가족과 함께 길림성 화전현 횡도하자로 이주하였다. 1928년에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였고 1930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31년초에 한때 투옥되였으나 곧 석방되였다. 1932년 4월, 중공화전현 화북구위원회의 추천으로 만주로농반일의용군 제4종대 즉 반석항일유격대 결성에 참가했고 1933년에 유격대 제2대대 대장이 되였다. 1933년 9월 18일, 중국로농홍군 제32군 남만유격대가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로 개편되자 제3퇀 퇀장이 되였다. 1934년 11월, 중공남만특별위원회 제1차 대표대회의 결정에 따라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이 결성되자 제1사 부사장 겸 제3퇀 퇀장이 되였으며 양정우의 명령에 따라 제1사의 한갈래 부대와 교도퇀을 이끌고 통화와 류하 구간의 철도를 가로지나 흥경현과 환인현 일대로 진군하여 항일혁명근거지를 발전, 장대시켰다.

1935년 5월 12일, 리홍광이 희생된 후 뒤를 이어 제1사 사장이 되여 제1사를 거느리고 환인, 흥경, 통화 일대에서 항일유격전을 진행하여 적의 유생력량을 끊임없이 소멸하였다. 전투를 하면서 부대가 이르는 곳마다에서 대중집회를 소집하여 당의 항일정책을 선전하였으며 반일회, 농민자위군, 부녀회, 청년의용군 등 대중조직을 묶어세워 유격구를 공고히 하고 발전, 장대시켰다. 1935년 7월 중순, 통화—환인 구간의 큰길인 이도구 류가가(劉家街) 부근에서 통화로부터 환인으로 향한 일본군 수비대를 매복습격하는 전투를 지휘하다가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자료 출처:《동북항일련군장령전》)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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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들은 수없이 많다. 그동안 이들과 관련된 연구서적들이 출판되면서 우리 민족 영웅들을 기리고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 우리 민족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력사자료 부족, 연구 제한 등으로 아직도 이름도 명예도 남기지 않은 채 땅속에 묻힌 영웅들이 많고도 많다.

이에 《길림신문》은 광범한 독자들의 친족 혹은 아직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조선족 항일투사들의 감동사적(1,000자 좌우)을 접수해 무명영웅과 그들의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저 한다.

접수메일: shenyy66@163.com

련계인: 심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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