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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재] 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권영벽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2-14 09:15:13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1군―좌급 군관

권영벽(権永碧, 1909—1945):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2군 제6사 조직과장, 선전과장, 중공장백현위원회 서기

원명은 김수남(金秀南)이고 김창만(金昌満), 김수남(金洙南)이라고도 했다. 조선 함경북도 경성군 룡성면 근동리에서 태여나 1920년에 아버지를 따라 연길현 팔도구로 이주했다. 1925년 봄에 룡정대성중학교에 입학하였고 재학중 비밀공산주의단체에 가입했다. 졸업 후 봉명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1931년 7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1933년에 중공옹성립자구위원회 서기가 되였고 유격대를 지원했으며 삼도만유격근거지의 창설을 도왔다.

1935년 봄, 일본군의 ‘토벌’을 격퇴하고 광활한 지역에 진출하여 유격전을 전개하기 위하여 연길현 옹성립자구의 대중들을 이끌고 안도현 처창즈근거지로 전이하였다. 3월에 동북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독립사 제2퇀 정치지도원 겸 당지부 서기가 되였다. 1936년 3월,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2군 제6사에 편입되여 사부 조직과장, 선전과장이 되였다. 9월에 장백산유격근거지의 창설 사업과 조국광복회 조직 사업을 전개하였다.

1937년 2월, 장백현정치사업위원회를 중공장백현위원회로 확대하고 서기가 되였다. 또 현당위의 령도하에 리제순을 회장으로 하는 조국광복회 장백현위원회를 건립하였다. 10월에 리제순 등과 함께 장백현에서 체포되여 혜산경찰서에 압송되였다가 1938년 봄에 함흥형무소로 옮겨졌다. 1941년 5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여 1945년 3월 10일에 교수형을 당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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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들은 수없이 많다. 그동안 이들과 관련된 연구서적들이 출판되면서 우리 민족 영웅들을 기리고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 우리 민족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력사자료 부족, 연구 제한 등으로 아직도 이름도 명예도 남기지 않은 채 땅속에 묻힌 영웅들이 많고도 많다.

이에 《길림신문》은 광범한 독자들의 친족 혹은 아직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조선족 항일투사들의 감동사적(1,000자 좌우)을 접수해 무명영웅과 그들의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저 한다.

접수메일: shenyy66@163.com

련계인: 심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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