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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재] 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리명해, 마점원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3-20 12:55:29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1군―좌급 군관

리명해(李明海, 1900—1935):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제1사 제5퇀 퇀장

조선 충청도 출신으로 1910년에 부모를 따라 길림성 반석현 일대로 이주했다. 1932년 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유격대 결성에 참여하였다. 유격대에 참가한 지 얼마 안돼서 맨주먹으로 한간지주의 권총 2자루, 장총 3자루를 탈취해 명성을 크게 떨쳤다. 1932년 11월, 반석유격대가 중국로농홍군 제32군 남만유격대로 재편성되자 교도대 대장이 되였다. 1933년 9월,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가 결성되자 독립사 제3퇀 제8련 련장이 되였다. 1934년 8월, 일본관동군 사령관 폭사 작전에 참가했으며 11월에 제8련이 제1사 제5퇀으로 확대, 편성되자 퇀장이 되였다. 그 해 겨울, 통화현 소황구전투에 참가하였으며 1935년 3월, 통화 삼원포 대우구(大牛溝) 일대에서 매복습격전을 지휘하여 적의 유생력량을 소멸하였다. 4월에 제5퇀을 거느리고 신빈현 소왕가포(小王家浦) 일대에서 위만군 100여명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마점원(馬占元, ?— 1937):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군수처 처장

리학원(李学元)이라고도 한다. 길림성 반석현 동집장(東集厂)에서 출생하여 1930년에 혁명활동에 참가했으며 당해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32년에 반석로농의용군에서 군수물자를 조달하였으며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이 결성된 후 군수처 처장이 되였다. 1935년 4월, 류하현 고산자(孤山子)진에서 지방사업단을 결성하여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한편 통화현 삼구 사평가에서 반일회를 조직했다. 1937년에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군수처 처장이 되였다. 1937년 7월 10일, 사평가에서 제1군 제6퇀이 탈취한 군마 50여필을 인계받다가 친일분자에게 살해되였다(다른 한 자료에서는 7월이 아닌 10월에 집안 청구자(清溝子)에서 살해되였다고 기재하고 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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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들은 수없이 많다. 그동안 이들과 관련된 연구서적들이 출판되면서 우리 민족 영웅들을 기리고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 우리 민족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력사자료 부족, 연구 제한 등으로 아직도 이름도 명예도 남기지 않은 채 땅속에 묻힌 영웅들이 많고도 많다.

이에 《길림신문》은 광범한 독자들의 친족 혹은 아직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조선족 항일투사들의 감동사적(1,000자 좌우)을 접수해 무명영웅과 그들의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저 한다.

접수메일: shenyy66@163.com

련계인: 심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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