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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재] 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박선봉, 박영호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3-20 13:12:04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1군―좌급 군관

박선봉(朴先鋒, 1913—1938):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총지휘부 경위려 제3퇀 퇀장

조선 함경북도 명천군 야간면에서 출생했으며 1915년에 가족을 따라 길림성 연길현 의란구 구산촌으로 이주했다. 마을 야학에서 글을 배웠고 혁명사상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1930년에 소선대조직에 가입하였고 1931년 가을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입단하였다. 1932년 봄, 일본군의 ‘토벌’로 부모가 살해된 후 의란구에서 적위대에 가입하였고 당해 9월 왕우구로 가서 유격대에 입대하였다. 1932년 가을, 연길현로농유격대에 편입되여 왕우구유격근거지를 보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932년 겨울부터 1933년 봄 사이 일제 ‘토벌대’와 있은 수십차의 전투에 참가했다. 1936년에 동북항일련군 제2군 제1사 제1퇀 제3련에서 제1패 패장이 되였다. 이때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38년 7월,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총지휘부 경위려 제3퇀 퇀장이 되였다. 8월에 소속 부대를 지휘하여 장강(長崗)전투에 참가하여 일본군 지휘관을 격살하고 일본군, 위만군 300여명을 격퇴시켰으며 기관총 9정과 보총 134자루 그리고 기타 군용물자를 로획했다. 8월 중순, 집안현 륙도양차(六道陽岔)밀영에 들어가 정돈,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제3퇀을 지휘하여 대맥령(大麦岭), 대천(大川), 오도구와 황토강 등지에서 작전을 하여 적 200여명을 소멸하고 보총 70여자루를 로획했다. 1938년 10월 18일, 양정우가 거느린 제1군 총지휘부를 따라 이동하던중 림강차구(臨江岔溝)에서 적들의 겹겹한 포위에 들어 돌파하다가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박영호(朴永浩, 1909— 1935):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제2사 제8퇀 퇀장

조선 경상북도 출신이며 11살 나는 해에 부모를 따라 길림성 반석현 북백자 황원하자라는 마을로 이주했다. 1920년대 중반에 조선인 조기공산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혁명사상을 수용하기 시작했으며 1930년에 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하였다. 미구에 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1931년까지 공청단반동구위원회 서기와 공청단반북구위원회 서기로 사업했다. 1932년 봄, 반석에서 춘황투쟁에 참가했으며 5월 하마하자봉기 때 5.7투쟁위원회의 성원으로 활약하였다. 당해 반석로농의용군에 참가했으며 남만반일유격대대로 재편성되자 제2대대 정치위원이 되였다

1933년 9월, 유격대가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로 확대, 편성되자 소년영 영장이 되였다. 1934년 11월,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이 정식으로 결성되자 제2사 제8퇀 퇀장이 되였다. 퇀장이 된 후 부대를 거느리고 반석, 이통, 쌍양, 서안(지금의 료원시), 동풍, 서풍, 해룡, 화전, 몽강, 영길 등 광활한 지구에서 전전하며 대량의 적들을 견제하여 제1사 주력이 강남 일대에서 새 유격구를 개척하는 데 유력하게 지원하였다. 1935년 9월, 돈화현 경내 대포시하(大蒲柴河)에서 있은 전투에서 전사했다. (자료 출처: ≪조선족혁명렬사전≫,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

사전≫)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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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들은 수없이 많다. 그동안 이들과 관련된 연구서적들이 출판되면서 우리 민족 영웅들을 기리고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 우리 민족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력사자료 부족, 연구 제한 등으로 아직도 이름도 명예도 남기지 않은 채 땅속에 묻힌 영웅들이 많고도 많다.

이에 《길림신문》은 광범한 독자들의 친족 혹은 아직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조선족 항일투사들의 감동사적(1,000자 좌우)을 접수해 무명영웅과 그들의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저 한다.

접수메일: shenyy66@163.com

련계인: 심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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