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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자동차공장의 '황소' 김만석, 23년 련속 로력모범

편집/기자: [ 정현관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4-15 13:07:26 ] 클릭: [ ]

제1자동차공장의 '황소'로 불리운 김만석, 23년 련속 로력모범 

일시적인 열정으로 당분간의 성적을 올릴수 있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수십년을 하루같이 초심을 잃지 않고 평범한 일터에서 훌륭한 업적을 이룩하는 것이다.

제1자동차공장과  37년을 함께 한 김만석은 그동안 단 한번의 착오, 실수도 용납 하지 않으면서 평범한 일터에서 련속 23년간 공장의 로력모범으로 당선되는 평범치 않은 업적을 쌓았다. 자동차공장 실험실에 근무하던 시절 동사자들은 우직한 김만석을 보고 '황소'라고 친절히 불렀다.

취재를 받는 김만석

올해  86세인 김만석은 1934년에 화룡시 단결촌에서 태여났으며 1951년 12월 화룡중학교를 졸업하고 항미원조전선에 나갔다. 1955년 2월 조선에서 단동으로 돌아온 김만석에게는 군관학교에 가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외독자인 그는 고향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두고 멀리 떠날 수 없어 의연히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때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만석은 “전혀 후회가 되지 않습니다. 홀어머니가 계시는 데로 가야지요.”라고 대답했다.

김만석은 11살 나던 해에 갑작스레 아버지를 잃었다. 이뿐만이 아니였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두명의 누나를 련거퍼 잃으면서 가정의 모든 부담이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1959년 10월 2년간 악전고투하여 제1자동차공장에서는 드디여 ‘붉은기’표 승용차 시험제작에 성공하였다. 이 과정에는 자동차공장 로일대 조선족 로동자와 연구일군들의 심혈도 깃들어 있다. 사진은 ‘붉은기’표 승용차 품질돌격대에 참가하여 공헌을 세운 김만석(뒷줄 왼쪽 세번째)과 동료들이 승용차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는 모습인데 조선족들이 제1자동차공장 초기 건설에 참가한 중요한 사진자료이기도 하다.

단 한번의 실수와 착오도 없이

고향인 화룡에 돌아온 김만석은 집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고향에 돌아와 1년을 일하면서 착하고 신근하다는 성품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촌에서 유일하게 장춘에 선지 얼마 안되는 제1자동차공장에 추천받게 되였다. 김만석의 회억에 따르면 1956년 화룡에서 4명을 포함해 연변에서 총 22명이 제1자동차공장에 추천되였다.

제1자동차공장에 온 김만석은 주물공장 실험실에 배치되였고 주로 분광분석, 화학분석 등 분석실험을 했다.

김만석(오른쪽)이 실험실에서 작업반장(工长)으로 있을 때의 모습. 실험원이라면 보통 흰색의 실험복을 입고 각종 실험의기와 화학약품을 다루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모든 것을 령으로부터 시작해야 했던 제1자동차공장 초창기 시절 김만석과 동료의 모습은 마치도 탄갱에서 고되게 작업하다가 밖으로 나와 잠간 휴식을 취하는 탄부의 고단한 모습과 흡사하다.

김만석은 “그때 우리와 같이 일했던 조선족들이 적잖았습니다. 현복만, 최봉원, 김수영, 고영춘 , 김철호 등 분들과 함께 일하면서 참 재미있게 보냈습니다.”라고 처음 공장에 들어와서 조선족들과 함께 보내던 시절을 회억하였다.

실험실은 자동차의 안전을 보장하는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자동차 생산에 들어가는 모든 철강원자재를 분석해야 하고 검사를 통해 합격된 원자재만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자동차의 부품이 만들어지고 자동차가 만들어진다.

실험분석을 하고 있는 김만석(1)

가장 중요하고 가장 책임감이 수요되는 일터에서 김만석은 능숙한 기술과 사업에 대한 책임감으로 동료들과 함께 제1자동차공장 실험실 관문을 지켰다.

“저는 공장에서 23년 동안 련속 로력모범으로 뽑혔습니다. 그리고 한번은 제1자동차공장의 일터기준병으로 당선되여 저의 이름과 사진이 공장 1호문 영예판에 오른 적도 있었지요.”김만석은 그때를 자랑스럽게 회억했다. 취재에 동행한 제1자동차공장 조선족로인협회 전임회장 김수금은 "1호문 영예판에 이름을 올리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지요. 참 대단한 분이예요."라고 김만석을 치하했다.

김만석은 실험실에서 매일같이 코를 찌르는 화학약물 냄새와 차디찬 철판, 따분한 분석수치들과 몸싸움, 지력싸움을 했지만 싫은 소리 한번 한 적이 없었다.

“저 분은 하루도 빠짐이 없이 거의 매일 출근했습니다. 몸이 아파도 가고 집안에 일이 있어도 가고 정말 모범답게 일했습니다.” 부인인 리옥금할머니가 말했다.

실험분석을 하고 있는 김만석(2)

이뿐이 아니다. 김만석은 함께 일하던 동료가 앓거나 출근을 못하는 경우에는 스스로 그 빈자리를 채워가면서 실험실의 정상적인 일이 영향을 받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렇게 자기 일, 남의 일을 가리지 않고 모두 도맡아 30여년을 일했건만 단 한번의 실수도, 오차도 없었다. 제1자동차공장에서 공장 산하 전체 실험실의 분석원들을 상대로 조직한 업무능력시합에서 김만석은 단연 일등을 하였다.

김만석, 리옥금 부부

김만석은 실험실에서 37년간 근무하는 동안 시종 '황소' 정신으로 자신의 일터에서 말없이 수걱수걱 일만 해왔다. 1993년, 37년간 사업한 실험실을 떠나 퇴직한 김만석은 지금 제1자동차공장 조선족로인협회를 다니면서 만년을 즐겁게 보내고 있다.

/길림신문 리철수 정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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