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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재]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한진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4-19 11:08:59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1군―좌급 군관

한진(韓震, 1900―1936):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제1사 군수부장 겸 당지부 서기

1900년에 서울에서 태여나 중학시절에 진보단체인 ‘반일애국기독교청년회’에 참가했으며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다. 1928년에 반일을 하기 위해 가족과 갈라져 길림성 반석현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초석산소학교에서 교사로 있으면서 신활(新活)청년회 회원이 되였고 남만청년동맹 상무집행위원이 되였으며 재만농민동맹의 결성에 참여했다. 그리고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지도간부로 혁명활동을 했으며 1930년 8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31년에 일본경찰에 체포되여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나 아무런 단서도 잡히지 않아 당해 9.18사변 후 출옥했다. 출옥 후 화전현 팔도구 일대에서 당의 기층지부 서기직을 수행하다가 1932년 봄에 중공반석중심현 반서구위원회 서기가 되였다. 이해 9월, 남만유격대에 가입하였고 이듬해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 제3퇀 정치위원이 되였다.

1934년 3월,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 당지부 서기가 되였고 그 해 11월, 제1군 제1사 군수부 부장이 되였다. 환인, 본계 지구에서 유격근거지 창설 사업을 책임지고 원시림 속을 오가면서 군수물품 비밀창고, 무기제조수리공장, 피복공장, 군사훈련장, 군병원, 부상병휴양소 등을 마련하였으며 10여개의 비밀 숙영소, 주둔지를 건설했다. 또 지방사업 지도자의 한사람으로서 가는 곳마다에서 군중들에게 당의 항일구국방침과 항일무장투쟁의 의의에 대해 선전하였으며 반일단체와 지방무장을 조직해주고 이런 반일단체와 지방무장을 통해 항일련군에서 필요한 식량, 마초 등을 구하였다.

우군을 단결하여 항일무장을 확대하는 데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1935년에 환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토비 ‘주사령’을 수차 설복교육하여 200여명의 부하를 데리고 양정우를 찾아와 항일부대에 참가하게 하였고 본계, 신빈, 환인에서 활동하고 있던 ‘로북풍’이라는 토비를 교육하여 양정우부대에 투항하게 하였으며 환인 경내에 있는 ‘점동변’, ‘서해선’, ‘구주’ 등 산림대를 교육, 설득하여 항일부대의 지시에 따르게 하였다. 본계 경찰교무청의 교무장 상백로를 설득하여 20여명의 경찰을 데리고 의거하게 하였다.

1936년초, 부대를 거느리고 환인현 화첨자 일대에서 항일력량을 통일하고 항일부대의 확군사업을 위해 활동하였다. 3월 2일, 선인동 이도령자에서 소집된 군간부회의에서 제1사 제4퇀이 신설되자 퇀 정치위원으로 선임되였다. 그런데 회의가 끝날 무렵에 반역자의 밀고로 일본군과 괴뢰군의 습격을 받아 포위 돌파를 시도하다가 적탄에 맞아 희생되였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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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들은 수없이 많다. 그동안 이들과 관련된 연구서적들이 출판되면서 우리 민족 영웅들을 기리고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 우리 민족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력사자료 부족, 연구 제한 등으로 아직도 이름도 명예도 남기지 않은 채 땅속에 묻힌 영웅들이 많고도 많다.

이에 《길림신문》은 광범한 독자들의 친족 혹은 아직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조선족 항일투사들의 감동사적(1,000자 좌우)을 접수해 무명영웅과 그들의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저 한다.

접수메일: shenyy66@163.com

련계인: 심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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