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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재]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황해봉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5-23 14:01:07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1군―좌급 군관

황해봉(黃海峰, 1916―1941):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경위려 제1퇀 정치위원

애명은 황봉출(黃蜂出)이고 원명은 황병산(黃炳山)이며 1916년 11월 길림성 반석현 석취자촌에서 태여났다. 1932년초, ‘개잡이대’가 반석로농유격대로 개편되자 중학생 신분으로 이 유격대에 참가하였다. 1932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1933년 9월 18일, 남만유격대가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로 개편되자 독립사 정치보안련 소대장이 되였다. 1934년 10월 이후 봉천과 길림 등 지구의 일본군과 위만군 만 1,000여명이 반석 홍석립자 항일유격근거지를 향해 진군해오자 양정우를 중심으로 하는 사령부를 보위하는 과업을 수행했다.

1934년 11월 7일, 독립사가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으로 재편성되자 정치보안련 련장이 되였으며 1935년 4월에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교도퇀 정치부 주임이 되였다. 1936년 7월,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교도퇀 정치위원이 되여 제1로군 총지휘 양정우와 제1로군 사령부를 보위하는 중책을 수행했다. 1937년 7월,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경위려 제1퇀 정치위원이 되여 양정우를 따라 남만 각지에서 작전 임무를 훌륭히 완수하였다. 1940년 1월초, 제1로군 경위려 한인화(韩仁和) 정치위원과 함께 양정우가 지휘하는 소부대의 압력을 덜어주기 위하여 화전, 돈화 일대에서 적을 견제하였다. 3월에는 한인화와 함께 화전현 홍석립자에서 적의 거점을 짓부시며 돈화, 액목, 녕안 일대로 전이하였다.

전이 도중 오상현의 라림하(拉林河)와 향수하자(香水河子), 녕안현의 록도(鹿道)와 경박호의 북호두(北湖头)에서 적들과 거듭 혈전을 벌렸다. 1941년 3월 4일, 녕안현 대연통구(大烟筒沟)에서 우세한 일본군과 위만군의 포위에 들어 결사적으로 싸우다가 불행히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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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들은 수없이 많다. 그동안 이들과 관련된 연구서적들이 출판되면서 우리 민족 영웅들을 기리고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 우리 민족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력사자료 부족, 연구 제한 등으로 아직도 이름도 명예도 남기지 않은 채 땅속에 묻힌 영웅들이 많고도 많다.

이에 《길림신문》은 광범한 독자들의 친족 혹은 아직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조선족 항일투사들의 감동사적(1,000자 좌우)을 접수해 무명영웅과 그들의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저 한다.

접수메일: shenyy66@163.com

련계인: 심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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