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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구술시리즈10] 대형가무서사시 <고향의 소리> 창작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6-05 08:13:29 ] 클릭: [ ]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대형구술시리즈 [문화를 말하다-10] (김희관편10)

대지를 진감하는 룡심

여태까지 저는 줄곧 문화행정기획과 영상기획자의 역할을 많이 해왔다고 할 수 있는데 정년은퇴를 하면서 기획자에서 필자로 넘어가게 되더라구요. 자기도 모르게 머리 속의 걸 자꾸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연변일보》‘풍향계’에 문화칼럼을 쓰기도 하고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을 맞이하면서 《문화시대》잡지에 글‘연변문화예술산책'을 써 발표하기도 했지요.

2017년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5돐을 맞으면서 연길시조선족전통문화보호중심의 주임 동옥선이 아름다운 가무서사시 프로를 당부해왔어요. 하여 2017년 9.3맞이 제1차연변조선족자치주문화관광절 개막식에 내놓을 대형가무서사시‘고향'(家园, 원작명 <고향의 소리>‘乡音’의) 씨나리오를 창작하게 된 거지요.

천, 지, 인의 소리를 담아

당시 저에게 주어진 모티브는 조선족전통문화와 관련이 있는 모든‘소리'였어요. 중국조선족은 중화대지에서 150여년간 살아오면서 용감하고 지혜롭게 자기의 소리를 내면서 살아왔지요.

백학의 서정

고향의 소리는 조선족들의 소리이며 그들이 살아온 세월의 소리인 거예요. 고향의 소리는 우리들로 하여금 향수를 느끼게 하고 그 속에서 고향의 정을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민족의 혼을 느끼게 하지요.

필자는 창착기획서를 작성하여 해당 예술인들과 만나 함께 토론하면서 점차‘전통의 소리'를 찾아가기 시작했어요. 필자의 뇌리에는 <고향의 소리 (乡音)>라는 타이틀이 움트기 시작했어요. <고향의 소리>는 또한 순수한 음향적인 소리뿐인 것이 아니라 중국조선족의 발자취를 더듬도록 계시를 주었어요.

결국에는 천,지,인 (天地人)의 전통적인 소리를 담아내는 것이 대형가무서사시 <고향의 소리 (乡音) >의 사명인 것을 깨달았구요. 그렇게 대형가무서사시 <고향의 소리 (乡音) >의 주제가 확정되였고 따라서 내용이 편성된 거예요.

물에 비낀 천지의 풍경

대형가무서사시 <고향의 소리>를 창작하려니 생동한 생활체험과 문헌적인 고증이 필요했어요. 필자는 지금까지 장백산 천지를 수십 차례 답사했거든요. 제일 첫 답사는  1974년 여름 <연변일보> 기자시절 동료들과 함께 이도백하에서 <통신원 양성반>을 조직하고 나서 장백산 천지가에 오른 것이였어요.

그때 천지 북쪽 언덕에는 1906년에 일제의 조선침략을 반대하는‘덩덕궁패'들이 지었다는 99개 수련실이 있었던 <종덕사>의 팔각정이 앙상한 골격을 드러낸 채 비바람을 맞고 있는 것을 친히 목격했어요. 후날 연변박물관의 전문가들이 팔각정부근에서 <종덕사(钟德寺)>라고 새긴 무쇠파편을 줏었다는 걸 들었어요.

극에서는 천지가에 아침해가 붉게 떠오르고 백학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황홀한 장면을 표현해야 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누구도 천지에서 백학을 본적은 한번도 없지요. 그래서 필자는 청나라 말기 관리이며 안도현의 첫 현장이였던 류건봉(刘建峰)이 장백산을 수차례 답사하고 쓴 답사기 <장백산강산지략>(长白山江岗志略, 1909년)을 다시 펼쳐 들었지요. 문헌에는 백학과 제비가 장백산 천지의 관일봉에 둥지를 틀고 살면서 하늘을 날아예고 있다고 분명히 기록되여 있어요. 이리하여 서막(白鹤朝阳)에서는 장백산에 솟아오르는 아침해와 함께 울려퍼지는 백학의 아름다운 소리를 구성할 수 있었지요.

강산의 신비로운 소리 (江山神曲) 또한 자연의 교향곡이지요.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샘, 샘물이 모여 도랑이 되고 도랑이 모여 강물이 되면서 흐르는 그 미묘한 소리, 거기에 온갖 잡새들의 우짖음이 어우러지니 아주 신비한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지요.

시골의 떡방아 소리

거기에 산간마을 녀성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며 아이들의 숨박곡질 소리, 성수나는 민요가락들… 가요 <좋은 종자 가려내세>를 들으면 일제의 통치하에 압박받고 착취받던 농민들이 해방을 받아 분배 받은 토지에서 마음껏 농사짓고 밤에는 야학에 나가 ‘가갸거겨'를 배우던 시절이 생각나고, 가요 <고향산 기슭에서>를 들으면 20세기 50년대 연변의 농촌에서 처음으로 뜨락또르가 달리던 정경이 떠오르는 것이지요. 이런 것이 바로 고향의 소리이고 조선족들의 심성이 아니겠어요.

산악 사스레나무 (高山岳桦树) 와 단풍 세월 (丹枫岁月)

중국조선족은 해방전에 두 가지 위대한 공적을 쌓은 민족이지요. 하나는 중국의 항일투쟁과 국내혁명전쟁에서 피어린 공훈을 세웠어요. 또 한가지는 중국의 북방에서 벼농사를 개척함으로서 여러 민족 백성들의 밥상에 수수밥과 옥수수밥을 밀어내고 이밥을 차려주었구요.

장백의 사스레나무

1966년 6월, 주은래 총리께서 연변을 시찰하실 때 그렇게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을 내여 연길시 장백인민공사 신풍대대에 살고 있는 최죽송농민의 집에 찾아 가시여 삿자리 구들에 마주앉아 벼풍산경험을 경청하셨어요. 그리고 북경에 가셔서는 농업부에 지시를 내려 중국의 남방과 북방의 벼농사경험을 잘 총화할 것을 지시하시면서 <남진북최(南陈北崔, 남방의 벼풍산 모범 진영강, 북방의 벼풍산 모범 최죽송)>이라는 결론을 내리시였지요. 우리 선배들의 이런 위대한 성취는 불요불굴의 의지와 숭고한 령혼을 구현하는 것이지요. 필자는 이러한 력사를 <고향의 소리>에 꼭 담고 싶었어요.

장백산 천지의 해발 2천메터 되는 곳에 이르면 일색으로 사스레 나무가 비틀린 몸체로 꽉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년로하신 할아버지, 할버니들이 산등성에 이리저리 누워 거센 바람에 버티고 있는 듯한 형상들이지요. 필자는 그러한 사스레나무에서 여름철의 폭우와 엄동설한의 폭설을 이겨내는 불요불굴의 정신과 령혼을 읽었던 것입니다.

오색금혼(五色琴魂)

우리의 조상들이 두만강, 압록강을 넘어 "만주땅"(동북)으로 이주하면서 바로 그러한 불요불굴의 정신과 령혼을 본받은 것이예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앞길은 모두 탄탄대로라고 할 수는 없어요. 우리의 후대들도 장백산의 사스레나무가 보여준 불요불굴의 정신과 령혼을 본받아 만난을 헤쳐나아가면서 앞길을 개척해가야 함을 보여준 것이였어요.

그리고 <단풍의 세월 丹枫岁月>을 선택하게 된 것은 주로 선혈들을 기리는 단풍의 상징적 의미를 살리려 했던 것이죠. 그 붉은 단풍잎들은 마치도 선렬들의 선혈을 방불케 하거든요. 청산리항일대첩 역시 1920년 10월 단풍시절의 일이였지요. 항일투사 려영준 로인님께서는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오늘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하기에 우리는 단풍이 물드는 계절이면 산에 들에 붉게 물든 선혈의 빛을 기리면서 선렬들의 명복을 빌어야 함이 지당한 것이다.”

우리 연변은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라 소문 높은 고장이잖아요.

농부가 부르는 ‘아리랑’그 노래

하늘과 대지, 인간세상의 소리를 두루 섭렵하면서 생각 끝에 농부들이 석쉼한 목소리로 부르는 아리랑 그 가락에 대지가 진감하는 형상을 그려보았어요.

수확의 계절

‘아리랑’연구가 고 김봉관선생의 말씀에 의하면 영화 <아리랑>(주역 감독 라운규 담당)의 제작자 라운규선생은 1926년에 고향 회령에서 영화‘아리랑'을 상영한 후 자신이 다녔던 명동학교를 못 잊어 룡정까지 찾아와서 <아리랑>영화를 상영했다고 하였어요. 그러니 <아리랑>문화가 연변의 우리 민족 사회에 뿌리를 내린지 이미 오래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에필로그에서는 시인 박장길의 시 <아리랑>을 택했어요.‘하늘에 오르려고 꿈틀거리는 룡떼'들을 보면서 어느덧 필자가 비행기에서 촬영한 천지의 장면이 생각나는 것이였어요. 천지에 오르는 산등성에 꿈틀거리는 산길이 붉은 해살을 받아 더욱 돋보였어요. 그것이 하늘로 오르려고 꿈틀거리는 룡떼들의 모습 같아 보였던 거지요.

구불 거리는 소나무가

아리랑을 쓰며

온몸으로 아리랑을 부른다

군무로 한풀이 하며 몸을 비틀고 있는

하늘에 오르지 못한 룡떼들

(아리랑 -박장길의 시에서)

씨나리오를 써냈으니 가무창작은 음악가와 무용가들의 몫이였어요. 다행이도 씨나리오 <고향의 소리(乡音)>가 대형가무서사시 <고향(家园)>으로 변신되여 <중국조선족 제1차 문화관광절> 개막식 공연무대에 올랐으니 한시름 놓았어요.

그뒤로도 “한 음악성인의 꿈”이라는 대형가무서사시를 마무리하고 무대공연을 대기하고 있는 중이예요. 이런 창작과정은 모두 새로운 공부가 되였지요.

/글: 김청수 기자, 영상사진: 김성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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