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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재] 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진옥진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6-28 11:17:06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1군―위급 군관

진옥진(陳玉振, 1913—1933):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 소년영 영장

진동갑(陳東甲)이라고도 하며 조선에서 출생하여 유년 시기에 식솔을 따라 길림성 반석현 대협심자(大夾芯子)로 이주했다. 어려서부터 산동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에서 자라면서 산동말을 류창하게 하였으며 스스로 산동성 동창부(東昌府) 사람이라고 말하여 사람들로부터 산동사람이라고 불리웠다.

1928년 5월, 청년동맹에 가입하였고 1930년 6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당해 8월, 중공반석현집행위원회가 설립되고 7명(처음에는 4명)으로 구성된 특무대(즉 ‘개잡이대’)가 결성되자 대장이 되였다. 1931년 8월, 중공반석현위원회가 중공반석중심현위원회로 개편되자 공청단반석중심현위원회에 전근되여 공청단원을 발전시키고 공청단지부를 설립하는 사업에 종사하였다.

1932년 4월, 중공반석중심현위원회에서 군정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꾸린 정치훈련반을 졸업한 후 반석적색유격대에 파견되여 반석로농반일의용군을 결성하는 준비 사업에 참가하였다. 6월 4일, 반석로농반일의용군이 결성되자 제2분대 전사가 되였다. 8월 하순, 중공반석중심현위원회의 파견을 받아 산동사람이 많은 ‘상점(常占)’산림대에 들어가 항일민족통일전선사업을 진행하였다. 11월말, 반석로농반일의용군이 중국로농홍군 제32군 남만유격대로 개편되자 제2대대 제4분대 대장이 되었다.

1933년 9월, 중국로농홍군 제32군 남만유격대가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로 편성되자 소년영 반장이 되였으며 10월에 영장이 되였다. 당해 12월 15일, 위만군 제14퇀과 자위단 400여명의 포위에 들어 소년영 제1패의 30여명 대원들을 지휘하여 포위를 뚫다가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자료 출처: 《철혈충혼: 리홍광과 그의 전우들》)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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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들은 수없이 많다. 그동안 이들과 관련된 연구서적들이 출판되면서 우리 민족 영웅들을 기리고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 우리 민족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력사자료 부족, 연구 제한 등으로 아직도 이름도 명예도 남기지 않은 채 땅속에 묻힌 영웅들이 많고도 많다.

이에 《길림신문》은 광범한 독자들의 친족 혹은 아직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조선족 항일투사들의 감동사적(1,000자 좌우)을 접수해 무명영웅과 그들의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저 한다.

접수메일: shenyy66@163.com

련계인: 심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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