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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대학 부교장과 손잡고 론문을 발표한 권기도 고급 공정사

편집/기자: [ 정현관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6-28 13:52:25 ] 클릭: [ ]

[공화국 창립 70돐 특별기획] 제1자동차공장과 조선족건설자들(10)

1936년 6월 생인 권기도(权奇渡 83세)는 장춘제1자동차공장의 광탄성력학실험실을 건설한 창시자다.

길림시 영길현에서 태여난 권기도는 어려서 길림시에 조선족들이 모금해 세운 조선족중학교를 다녔다. 수학, 물리와 같은 리과에 특별한 천부를 보였던 그는 대학 입시에서 수학을 근 만점 맞았다. 뿐만아니다. 30점이나 되는 물리 문제도 실수로 풀지 않았음에 불구하고 대련공학원에 합격하게 되였다.

1961년에 대련공학원을 졸업하고 1962년에 장춘제1자동차공장 설계원 응력실험실에 배치 받은 권기도는 3명의 응력실험원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입사한지 1년도 채 않되는 새내기가 상급 부문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따라 당시 아주 선진적인 광탄성력학실험실을 건설하는 중임을 떠메게 되였다.

“자동차공장에서 누구도 광탄성력학실험을 해본 사람이 없었고 같이 일하던 실험원들도 전업이 서로 다르다 보니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혼자서 자습했습니다.”라고 그 시절의 고충을 말했다. 관련 지식이라곤 대학시절에 20시간의 상과를 통해 배운것이 전부였고 책을 보면서 자습하려고 해도 관련 서적이나 자료들이 드물었기에 여간 애를 태웠다.

일본 방문학습 시절

어떤 서적은 국내에서 찾아 볼수 없어 서점에 주문해 일본에서 판매하는 것을 사다 일본어로 된 서적을 보았다. “일어를 잘은 모릅니다. 그냥 책에 나오는 한자나 수학공식들을 보면서 공부했습니다.”라고 권기도는 말했다. 지금도 권기도는 1972년도 5월 12일에 5원을 주고 구매한 그 서적을 간직하고 있다.

많은 사람의 도움이 없었고 오로지 혼자서 공부하면서 1년간 고생한 보람으로 실험실은 성공적으로 세워졌다. 허나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난제가 발생했다. 실험에 사용되는 각종 재료들이 국내에서 판매하지 않아 그 재료들을 직접 만들어야만 했다.

권기도의 말에 따르면 실험 재료 하나를 만드는데 근 30여시간이 걸린다. 다른 사람은 할수 없어 혼자서 만들어야 하는데 일정한 온도, 속도 등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하기에 그 재료가 완성되기 전에는 실험실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지켜야 했다.“실험실에서 밤을 새는 것은 아주 흔한 일입니다. 별거 없습니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두명의 제자와 함께

그런 노력으로 실험실이 정상적으로 운영에 들어 갔고 자동차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들이 광탄성실험을 통해 안정성을 다시 한번 검증하게 받게 되였으며 전반 자동차의 안정성이 일층 보장받았다

70년대에 공장의 수요로 권기도는 더 과학적이고 효률적인 유선단원법 등 선진적인 실험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모교인 대학공학원에 연수를 4개월 가서 배운것으로 실험에 수요되는 수학모형이며 계산기 프로그램도, 원시 카드 등 몇달씩 걸리는 공정을 혼자서 스스로 해나갔다. 1981년에 설계처에서 론문 발표대회가 있었는데 권기도가 쓴 “유선요서법으로 차체를 계산”이라는 론문이 1등 상을 받았다.

1992년에 권기도는 고급방문학자의 신분으로 일본 이와테대학 공학부에 방문 학습을 가게 되였는데 워낙 관련 부문에 관한 전문 지식과 경험이 많다 보니 새로운 과제임에 불구하고 주어진 시간보다 2개월이나 앞당겨 완수했다. 이와테대학의 교수가 어떻게 이럴수가 있가 있냐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일본 방문학습 시절

방문학습을 통해 배운 지식으로 공장에 돌아와서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과제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1년간의 시간을 들여서 혼자서 그 과제를 풀었다. 거기에서 신심을 받은 권기도는 한 단계 더 선진적인 과제에 도전을 내밀었다. 1995년 퇴직을 앞둔 권기도는 신체 상황 등 여러 원인으로 혼자서 연구하기가 어려웠다. 많은 고심 끝에 청화대학 공정력학계와 손을 잡고 연구하기로 했고 그의 그런 제안을 청화대학에서는 흔쾌히 받아 들였다. 어떻게 보면 청화대학 공정력학계도 그의 과제에 많은 흥미를 보였던 것이다. 지금은 청화대학 부교장이고 당시 청화대학 공정력학계 계주임으로 일했던 잠장지(岑章志)와 함께 과제를 연구했으며 아주 성공적으로 과제를 완수했다.

/ 길림신문 리철수 정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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