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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재] 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김선호, 곽지산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7-18 15:29:34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2군―사급 이상 장령

김선호(金善虎, 1911—1936):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6사 정치위원

길림성 연길현 출신이고 1930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1936년 7월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이 결성되자 제6사 정치위원이 되였다. 11월에 왕덕태(王德泰)가 무송현 밀영에서 소집한 지휘관 회의에 참가했다가 600여명 되는 적들의 포위에 들어 싸우다가 전사했다. (자료 출처: 《중공연길현영웅렬사명록》)

동북항일련군 제2군―좌급 군관

곽지산(郭池山, 1904—1943):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군부 부관

원명은 곽찬영(郭燦永)이고 1904년 7월 16일, 조선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태여나 어려서 부친을 따라 길림성 룡정현 팔도구 태평구(지금의 석산촌)로 이주했다가 후에 룡정현 팔도구 장재촌으로 이사했다. 1929년 6월, 소학교를 졸업하고 ‘개량사숙’이라는 자그마한 사립학교에 들어가 한어교원으로 있으면서 혁명활동에 참가하였다. 1930년 봄, 야학을 세우고 농민협회, 반제동맹, 호조회, 부녀회, 아동단 등 대중단체들을 묶어세우는 일에 종사했다.

1931년 7월 26일,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고 1932년에 중공팔도구위원회 소속 부암당지부 서기가 되였다. 1932년 11월, 장재촌쏘베트정부 주석, 반일회 회장이 되였다. 1933년 9월, 삼도만에 파견되여 반일삼림대를 쟁취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이해에 또 평일군 산림대로 들어가 선전사업을 진행했다. 1934년 봄, 돈화현 싸허장에 파견받아 항일병사 쟁취 사업을 진행하고 산림대 두목 ‘구참’(九站)을 찾아가 탄알 구입 과업을 수행하였다.

1934년 9월,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제1퇀 퇀부 부관이 되였고 1936년 3월, 동북항일련군 제2군 군수부 부장이 되였다. 1938년 초가을,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군부 부관이 되여 위증민의 신변에서 사업하였다. 1941년에 쏘련 경내로 전이하여 동북항일련군 교도려 B야영에서 군사와 정치를 배웠다. 당해 5월, 화전현으로 파견되여 위증민을 비롯한 사령부 성원들과 각지에 널려있는 제1로군 출신들을 찾았으나 헛물만 켰다. 1942년 4월, 연변으로 파견되여 소부대 정찰활동을 하다가 임무를 수행하고 10월에 쏘련 경내의 야영지로 돌아갔다.

1943년 7월경, 몇몇 정찰대원들을 거느리고 연변으로 나와 로흑산과 훈춘 중쏘 변경 지대의 적의 군사시설을 정찰하고 돌아가는 도중에 적탄에 맞아 희생되였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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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들은 수없이 많다. 그동안 이들과 관련된 연구서적들이 출판되면서 우리 민족 영웅들을 기리고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 우리 민족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력사자료 부족, 연구 제한 등으로 아직도 이름도 명예도 남기지 않은 채 땅속에 묻힌 영웅들이 많고도 많다.

이에 《길림신문》은 광범한 독자들의 친족 혹은 아직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조선족 항일투사들의 감동사적(1,000자 좌우)을 접수해 무명영웅과 그들의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저 한다.

접수메일: shenyy66@163.com

련계인: 심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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