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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특파원의 고향방문기3] 네 자매의 행복했던 려행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7-23 12:50:32 ] 클릭: [ ]

세 언니들은 나보다 12살, 10살, 5살 많아서 나는 누구보다도 언니들의 사랑을 흠뻑 받으며 자랐다. 아쉬운 것은 나이 차이가 커서 한집에서 생활했던 시간들이 짧은 편이였고 큰 언니가 학교문을 나서면서부터는 네 자매가 한자리에 모여 앉기도 쉽지 않았다.

큰 언니는 <하향 지식청년>으로 농촌에 내려가 6년동안이나 힘든 집체호 생활을 견지하면서 아버지, 어머니 퇴직대신으로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는 기회를 두번이나 동생들한테 선뜻이 양보해주었다.

둘째 언니는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을 때 퇴직후에도 즐기며 하던 일을 선뜻이 그만두고 낮시간대에 엄마 간병을 담당함으로써 언니와 동생은 출근을 하면서 저녁에만 엄마를 돌볼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셋째 언니는 시험까지 쳐가면서 한국으로 가는 비자를 어렵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때마침 정기직장도 그만두고 선뜻이 밤낮으로 엄마를 마지막까지 돌보아드리면서 두 언니가 동시에 한국으로 떠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언니들은 자매들지간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례사롭게 말하지만 나는 그런 언니들이 못내 존경스럽다.

고향답사 첫 코스로 4월 16일에 언니들과 함께 내가 제일 가고 싶었던 윤동주시인의 유적지를 찾아갔다.

<중국조선족교육제1촌> 간판과 3.1운동기념비가 높이 솟아있는 넓은 광장을 한바퀴 둘러본 후 < 명동학교 옛터 기념관>문앞에 이르러 구리종을  <땡- 땡-땡-> 세번 힘차게 울려 그 옛날의 학교분위기를 느껴보았다.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윤동주시인의 밀랍 인물상을 모시고 있는 교실에 들어섰다.

어린시절 이 곳 명동에서 문학적으로 사상적으로 계몽교육을 받은 윤동주시인이 <서시>, <별 헤는 밤> 등 불멸의 명시들을 남기고 일제시대의 저항시인으로 성장하게 된 참으로 유서 깊은 곳이다.

다른 교실에 전시되여 있는 시인에 대한 소개며 가보, 명동학교를 빛낸 인물들 등을 낱낱이 읽어보며 윤동주시인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윤동주생가에서 <서시>를 읽으면서

<중국 조선족애국시인 윤동주 생가> 라고 쓴 생가 앞 마당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비를 비롯하여 주옥같은 시들을 담은 많은 시비들이 특색있고 다양하게 세워져있어 소리내여 읊어보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겠다…>.

젊은 날에 조선, 한국, 일본에 발자취를 남긴 저명한 윤동주시인의 유적지가 내 고향 연변에 있어 보귀한 교육현장이 되고 윤동주 시인을 사모하고 연구하는 많은 국내외 인사들이 구름같이 모여온다고 하니 내심 자랑스럽고 뿌듯하기 그지없다.

다음은 조카들이 벌써부터 계획해놓은 비암산 일송정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그동안 바다 가까이에서 살면서 오래동안 산을 구경하지 못하고 있다가 들쑹날쑹 치솟은 산들을 바라보며 산길을 걷는 기분은 더없이 신선하고 상쾌하였다.

<선구자>의 노래로 유명한 일송정에 높이 오르니 룡정시의 전경과 60리 평강벌, 그리고 굽이굽이 흐르는 해란강이 한 눈에 안겨왔다. 바위에 새겨진 <룡정찬가> , <비암산 진달래> 는 거의 모든 관광객들이 한번씩 읽어보고 기념 샷을 남기고 있었다.

그동안 연변에서 살 때에는 비암산이라는 이름을 별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처음으로 놀란 것은 그런 비암산에 현대적인 5D 유리조교가 건설되였고 아름다운 풍경구로 명성이 높아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는것이다.

쌀쌀한 4월의 날씨에 날아갈 듯이 심하게 부는 산바람속에서 언니들과 함께 손에 손잡고 휘청휘청 유리조교를 걷는 기분은 제법 스릴이 넘쳤다. <붉은 해 변강을 비추네> 대표적인 연변노래가 다리 특정지점에서 신기하게 울려나와 우리는 흥겹게 따라 부르며 한결 성수나게 춤추듯 다리를 건넜다.

두번째로 놀란것은 많은 관광객들중에 한국인은 물론 로씨야인들도 섞여있다는것이였다.

내 고향 연변이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부상하고 있음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놀라운 순간이였다.

조카들이 고맙게도 우리에게 고급 웨딩촬영실에서 한복이며 다른 복장들을 바꿔입고 색다른 이미지로 촬영할 수 있는 깜짝 이벤트를 준비해주었다.

해외생활 24년만에 언니들과 함께 우리 민족의 전통복장인 예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보니 한복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조선족녀성들만이 누릴수 있는 특유의 아름다움에 잔잔한 감동과 행복이 가슴속에 물결쳐왔다.

나는 한복색갈도 내 고향 진달래 색상을 닮은 연분홍색상으로 골랐다.

드디여 4월 18일 , 우리 네 자매는 하아얀 폴로 티셔츠에 청바지를 통일로 받쳐 입고 머리에는 썬글라스를 얹고 허리에는 려행용 지갑을 두르고 손으로는 려행용가방을 하나씩 밀고 조카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씩씩하게 상해려행을 떠났다.

소주에서 30여년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상해에는 30여년동안 얼굴을 보지 못하였지만 귀한 인연으로 맺어진 고중시절 자매친구가 있다. 자가용 포드 SUV를 운전하고 마중나온 친구와 나는 차안에서 그동안 그리웠던 회포를 풀면서 소주로 향했고 그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면서 졸정원(拙政园), 금계호(金鸡湖) 등 명승지를 즐겁게 관광할 수 있었다.

그 아름답고 수려한 풍경은 예로부터 전해진 그대로 <하늘에 천당이 있으면 땅에는 소주가 있다>는 말을 사뭇 되새기게 했다.

주말부터 며칠간은 상해에 있는 막내조카의 안내를 받으며 고색찬연한 외탄, 황홀한 동방명주, 상해 매력 포인트인 황포강 야경을 즐기며 유람선 타기, 문학거장 로신박물관 참관, 예원구경 등 많은 명소들을 돌아보았다.

언니들과 상해에 있는 조카네 가족과 함께

세계각지에서 모여드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호화로운 도시 상해는 미국의 뉴욕같은 대도시에 비해 결코 국제적인 대도시로 손색이 없으며 보다 현대적이고 참신하고 활력이 차넘쳐 날로 부강해지는 중국의 파워를 아낌없이 과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번 상해려행에서 안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외할머니로서의 모든 삶의 짐들을 훌훌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난생 처음 함께 비행기도 타고, 호텔에서 뒹굴기도 하고, 먹고 자고하면서 자매들지간의 돈독한 사랑과 추억을 쌓아갔다.

큰 일 작은 일에서 서로 배려하고 돌봐주는 우리 들이지만 쇼핑할 때면 취향과 선호하는 색갈들이 모두 달라서 티격태격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쇼핑이 끝날 무렵이면 <우리 엄마 어쩜 이렇게도 우리를 다르게 낳았을가?> 하며 유쾌하게 한바탕 웃어넘기군 했다.

 

상해 외탄의 불야성을 즐기며

시간날 때마다 우리는 부모님과 함께 했던 추억의 보따리를 풀어헤쳤고 언니들의 기억의 퍼즐들을 하나 둘 맞추다보면 내가 태여났을 때부터 유아기 성장과정이 큰 그림으로 그려지는 기쁨도 함께 나누었다.

내 나이 50이 넘어도 여전히 초관심 보호대상 - 막내로 아낌없이 모든것을 주고 싶어하는 언니들 사랑에서 나는 엄마의 사랑이 전해져내려오고 있음을 깊이 느끼면서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들을 차곡차곡 만들어갔다.

사랑하는 언니들과 함께 막내조카네 가족과 기쁘게 상봉하고 또 그리운 고중시절의 고향친구들 하고도 즐겁게 만난 상해려행은 꿈 같은 고향방문길의 아름답고 행복한 연장선이였다.

/리화옥 길림신문 미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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