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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특파원의 고향방문기5]두만강,내 동년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강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7-29 08:22:48 ] 클릭: [ ]

"생명의 강, 만남의 강, 희망의 강"으로 마음속 깊이 여울치는 강

 

두만강가의 중조국경에서 친구들과 함께한 리화옥(가운데 사람)특파원

기다리던 4월 30일, 아파트문앞에서부터 도문까지 택시타고 가는데 40분 밖에 안 걸린다고 했지만 나는 부득부득 30분동안 공공뻐스를 타고 연길서역으로 향하였다. 고향에서 잠깐만 이라도 꼭 고속렬차를 타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승객들로 붐비는 연길서역에 들어서니 우리 민족 특색을 자랑하는 대형 벽화가 한 눈에 안겨왔고 전광판에서는 전국각지로 사통팔달한 철도로선들의 시간을 빈번히 알리고 있었다.

대학시절 친구 두명과 함께 고향에 고속철도가 개통되였다는 벅찬 기쁨을 나누며 아늑하고 조용한 고속렬차안에서 언뜻언뜻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즐기는 사이에 금방 하차할 시간이 되였다.

보통 렬차로 한시간 소요되던 구간이 고속렬차를 타니 15분만에 도착하게 되여 “와우! 빠르기도 하네!” 하고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고속렬차가 통하는 고향

도문에 있는 교원친구들중 한명이 고맙고 황송하게도 남편과 그의 동료까지 운전기사로 동원하여 승용차 두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틀전 연길에 있는 대학동창들과 30년만에 뜻깊은 상봉을 하고 오늘은 몇몇 친구들이 두만강 중조변경 일대를 둘러보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보기로 약속했던것이다.

도문시 석현진은 내가 태여나고 자라난 정든 고향이다. 석현을 감돌고 있는 가야하 푸른 물은 내 동년의 아름다운 꿈과 환상을 싣고 굽이굽이 흘러 이곳 두만강에 합류한다.

나는 어린시절 친구들과 함께 가야하에서 여름이면 미역 감고 물장구 치고 겨울이면 썰매타고 스케이트 타면서 두만강 지류에서 자랐다.

해외생활 24년만에 고향의 강, 두만강을 마주하고 지척에 있는 조선 남양시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실로 만감이 교차한다.

어린 시절 <두만강 칠백리 친선의 꽃이 피였네...>노래로 깊숙히 각인되였던 고향의 강이 오랜세월 이방인으로 살면서 자신의 뿌리에 대하여 나름 성찰해온 오늘 <눈물 젖은 두만강>이 시사하는 의미가 새삼스럽게 마음에 울림을 주고 있었다.

70-80년대에 조선 청진에 있는 이모가 거의 일년에 한번씩 여기 두만강 다리를 건너 우리집을 방문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고향 도문시는 그동안 유엔의 계획과 국무원의 비준하에 본격적으로 실시된 지역개발 개방에 힘 입어 두만강문화관광 브랜드를 창출하고 해마다 중국두만강문화관광축제 등 인기행사로 수많은 해내외 래빈들의 발걸음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지역간, 동북아 국가간의 문화와 경제교류 및 합작을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뉴대작용을 하고 있다니 실로 가슴뿌듯한 자호감과 긍지감을 금할수가 없다.

참신한 모습으로 새옷단장을 한 두만강 광장에는 2016년 연변에서 백년일우의 특대홍수와 싸워이긴 <홍수투쟁승리 기념비>가 위풍당당하게 우뚝 솟아 있었다.

2010년에 건설되였다는 두만강조각공원에는 문학거장 로신 인물상이며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은 정교하고 다종다양한 조각상들이 자기만의 풍격을 자랑하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두만강을 끼고 있는 경치가 수려한 일광산 삼림공원에는 력사가 깊은 사찰인 화엄사가 웅장하게 준공되여 있었다.

기암괴석들이 매력적인 일광산의 사자봉을 바라보노라니 저도 모르게 자연의 신비와 기묘함에 찬탄을 금할수 없었다.

김학송 시인의 <사자봉> 시 한수를 빌어 그 형상을 그려본다 ”앉은듯 일어선듯 름름한 사자/ 숨은듯 드러난 웅훈한 기상/오, 기지개 켜는 동방의 사자”.

려행중에 사진촬영은 필수지만 사진사에 따라 그 효과와 추억의 재미는 남다르다.

친구중 한명이 무심결에 려행가이드가 찍어 주는 사진을 보더니 우리도 한번 멋지게 찍어보자고 하였다.

일광산 사자봉의 "코"를 잡고서

멀리 있는 사자봉을 배경으로 사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코끝을 잡기도 하고 턱을 만져주기도 하고 <담도 크게> 사자와 키스까지 하는 4단계 사진을 찍는것이였다. 정밀하게 각도를 맞추기가 여간 까다로운것이 아니여서 자칫하면 엉뚱하게 나오는 사진들을 보며 우리는 폭소를 터뜨리군 하였다.

사자봉에 메아리치는 즐거운 웃음소리를 남기고 우리 친구들은 호랑이 령마루에까지 올랐다가 천천히 하산하였다.

새로운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그 친구는 두만강조각공원에서도 새로운 포즈를 시도하였다. 스마트폰 사진기로 한 사람이 서로 다른 포즈를 취하고 량쪽에 마주 서있는 쌍둥이 사진을 찍는것이였다.

자칫하면 쌍둥이 반쪽이 화면에서 사라져 독사진이 되거나 삼둥이, 사둥이가 이상하게 화면에 떠서 우리는 배꼽을 잡아가며 웃음이 묻어나는 사진들을 찍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분초를 계산해가며 각도를 맞춰가는 사진사나 짧은 시간에 위치와 포즈를 바꿔야 하는 우리들이나 모두 <초긴장 & 고난도> 촬영이였다.

꿈 많던 대학시절에 ‘잊지 말자고’ 소중한 추억을 남겼던 친구들이 30년만에 그 약속을 지켜내고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 가는 오늘에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즐거워 하는 우리들의 이름은 아직도 청춘이였다.

그칠줄 모르는 우리들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고향의 강, 두만강반에 널리널리 울러퍼졌다.

대학교때 동창생들과 함께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마다 친구남편은 동료와 함께 얘기나누며 멀찍히 대기시켜놓은 승용차옆에서 인내심을 테스트하듯 우리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오늘 와이프선생님한테서 점수를 무척 많이 따겠다는 느낌이 확 오는 한편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앞섰다.

사진촬영을 즐겁게 마친후 친구남편은 또 흔쾌히 운전대를 잡고 우리와 함께 석현까지 동행해 주었다.

산으로 둘러쌓인 석현에서 태를 묻고 자란 나는 봄이면 언니들 따라 뒤동산에 가서 연분홍 진달래를 꺽어다 사이다병에 꽂기도 하고 일렬종대로 줄지어 자라는 군대버섯을 캐기도 했으며 가을이면 달콤한 머루 다래를 따오기도 하고 개암을 뜯어다 돌멩이로 까먹기도 하였다.

중학교 1학년을 마친후 소꿉시절 친구들과 아쉽게 리별하고 부모님과 함께 연길로 이사오게 되였다.

그후 연변대학 입학통지서를 받게 되자 모교인 도문시 제4중에 리영혁반주임을 찾아 갔었다.

이미 교장으로 계시던 리선생님께서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띄우시고 이 제자를 한품에 안아주던 정경이며 소탈하게 얘기를 나누시던 호탕한 목소리를 지금도 잊을수 없다.

동년시절에 떠난 고향이라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옛날 집터와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도문시 음식복무공사 석현분점>사무실 옛터를 찿기가 어려웠다.

석현의 랜드 마크인 엄마의 바통을 이어 둘째 언니가 출근했던 석현종이공장을 찾아 갔다. 천만뜻밖에도 낯설은 <연변석현쌍록실업유한책임회사>로 간판이 바뀌어 있었고 몇년전에 국영기업으로부터 민영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환경오염에 대해 미처 몰랐던 그 시절에 동심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종이공장 굴뚝은 석현에서 제일 높이 우뚝 치솟아 하늘을 향해 힘차게 연기를 뭉게뭉게 토해내며 종이공장 만부하를 자랑하는 멋진 모습이였는데 오늘은 주인이 바뀐 낡은 공장곁에 묵묵히 입 다물고 서있었다.

공장 맞은편에 있는 그처럼 애용했던 <공인구락부>영화관이며 석현의 중심거리와 주민구역을 돌아보면서 아직은 시대의 발전에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때문에 마음이 서글프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두만강일대에서 불고있는 개혁,개발의 봄바람이 언젠가는 그 지류인 가야하일대에도 불어와 내고향 석현이 아름답고 멋지게 건설되기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두만강, 내 동년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고향의 강이 <생명의 강, 만남의 강, 희망의 강>으로 내 마음에 오래도록 여울져 온다.

/리화옥 길림신문 미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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