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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야기106]드럼으로 꿈을 이룬 젊은이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8-01 10:28:25 ] 클릭: [ ]

---리동국, 가끔 홀로 드럼을 두드리면서 살아온 나날을 후회없이 돌이켜본다

학생들이 오기전에 드럼을 하나하나 검사하고 있는 리동국씨.

연주자가 발과 손을 동원하여 절주에 맞게 밟고 두드려 미묘한 복합음을 만들고 그것으로 하나의 독특한 음악을 만드는 드럼이 중국에 알려지고 사랑을 받고 보급되기까지는 불과 반세기도 걸리지 않았다. 1970년대 서방의 영화나 음악을 통해 중국에 전파된 드럼은 개혁개방이후 할리우드의 희극영화를 통해 쟈즈음악과 록과 더불어 당시 청춘들의 사랑을 받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음악에 어섯눈을 뜬 청소년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데만 만족하지 않는다. 가무단과 같은 예술단체에서 사용하던 드럼이 점차 대중악기로 보급됨에 따라 동북오지에 자리잡은 연변에도 수많은 드럼애호가들이 나타났다. “쿵차자, 쿵차! 쿵차자, 쿵차!” 한번 직접 두드려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이런 청소년들의 수요에 부응하고자 드럼을 가르치는 양성쎈터도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광장군중문화축제에 나갈 종목을 연습시키고 있다.

왕청의 한 민간고수(鼓手)의 아들로 태여난 리동국(1976년생)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하였는데 어려서부터의 꿈이 음악선생님이였다. 그는 초중을 졸업하는 해에 왕청현교원연수학교에서 꾸리는 음악반에 입학하여 손풍금과 피아노를 배우면서 음악교원으로 되는 꿈을 한결 무르익혔다.

“그 시기 집안사정이 말이 아니였지요. 거기에 3년간 배운 밑천으로 음악교원으로 취직하거나 음악활동을 하기에는 너무나 학력이 짧았고 또 요구하는 단위도 없었어요.”당시 분류반(전문학과와 기초과만 배움)을 졸업한 학생들은 보통대학에 응시할 수 없었다. 음악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배움에 대한 욕망으로 불타는 그를 기특하게 생각한 음악분야의 한 지성인은 그를 심양 모 대학 음악반에 추천한다.

“거기에서 5년동안 피아노도 배우고 한창 인기를 누리던 드럼도 배웠지요. 정말 열심히 했어요. 졸업한 후 훌륭한 음악선생님이 되기 위하여.” 음악학원이나 예술학교를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기가 힘들었던 그 시절, 그는 두문불출하고 악기실에 묻혀 있었다. 병환에 계시는 아버지가 약 한첩이라도 더 드시라고 방학에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지난해 송년회 기념사진.

그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리동국에게는 전일제학교 음악교원으로 가는 길은 열리지 않았다. 교육계통에서 졸업장이 아닌 결업증을 인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며겨자먹기로 그가 선택한 곳이 바로 예찬예술양성쎈터였다. 중한합작으로 1995년에 설립된 예찬예술양성쎈터는 연변에서 비교적 일찍 설립된 예술양성쎈터의 하나이다. 이 곳에서 아이들에게 과외로 피아노와 드럼을 가르치면서 어렸을 때의 꿈을 되새길 즈음인 2010년, 리동국은 갑자기 한국인 원장으로부터 쎈터경영을 포기하련다는 통보를 받는다.

“그 시절 저의 많은 친구들이 한국행을 선택했어요. 저도 얼마 되지 않는 로임을 받는 직업 때려치우고 한국에 나갈 궁리까지 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매달렸어요. 만약 제가 떠난다면 올림픽수학을 한다나? 그러니까 음악을 포기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가슴에 걸려 결국 아이들의 손을 꼭 잡았다는 리동국의 눈에는 가랑가랑 이슬이 맺힌다. 인생의 갈림길에는 항상 고행이 따르는 법. 34세의 젊은 리동국은 이렇게 16명 학생의 손을 잡고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였다.

“한집안식구처럼 대하고 친동생처럼 키웠어요.” 학부모들을 도와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맞아오기도 하고 어문, 수학, 영어숙제도 함께 하였으며 집까지 데려다 준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렇게 1년이 되였을가, 이곳을 찾는 학생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하였다. 2011년엔 30여명, 2012년엔 50여명이 되더니 급기야 2013년부터는 100여명으로 늘었다. 인젠 드럼을 배우는 학생만 150여명이 되였고 성인반에도 30여명이 합세했다. 그외에도 피아노, 기타, 가야금, 전자풍금, 새납, 사물놀이 등 10여개의 서양악기와 전통민족악기반까지 개설하다보니 12명 강사를 초빙하기에 이르렀고 학생수는 200명선을 넘어섰다.

개혁개방이후 사회의 발전과 가치관의 변화와 더불어 연변내 많은 농촌들의 학교들에는 학생래원이 결핍으로 중소학교를 합병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연길시에는 비록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으나 반대로 과외지도를 목적으로 하는 교외학원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서로 경쟁에 열을 올려 교육시장이 혼란한 상황이다. 음악 한가지만 해도 성악, 악기, 무용 등 종류별로 수십개씩 들어섰는데 역시 경쟁은 만만치 않다. 이런 와중에 수백명의 학생을 흡인할 수 있은 것은 리동국씨가 초심을 잊지 않고 일관되게‘한집안식구처럼'을 고집한데 있지 않았을가.

길림성을 대표해 ‘청춘중국대형국제계렬활동’에 참가.

“음악과 함께 성장하는 사람의 일생은 항상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조용하지만 리듬이 있고 섬세하나 격정이 있는 삶이 아니겠어요?” 집에서는 말수 적고 부끄럼 잘 타는 아이였는데 이곳에 온 후부터 너무나 활발하고 밝게 웃는다는 말하는 학부모들이 있다. 학생들이 많다보니 쎈터를 찾는 학부모가 많다. 비좁은 공간이지만 학부모들의 휴식터를 따로 마련하여 그들끼리 상호교류를 진행하고 아이의 미래를 고민하는 공간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곳에서 피아노를 배운지 5년되는 김재욱(연길시 신흥소학교 5학년)학생은 아마추어 9급을 따내기 위해 땀동이를 쏟고 있었는데 그의 외할머니 정금순은 이렇게 말한다. “학업에 영향을 줄가봐 걱정했어요. 하지만 피아노를 배우니까 암기력도 제고되고 성적도 제고되였답니다.”

올해 17세인 림준길은 현재 연변대학예술학교 작곡반을 다니고 있는데 예찬예술양성쎈터를 잊지 못하고 있다. 음악의 첫 스타트를 이곳에서 뗐기 때문이다. 방학이나 휴식일이면 이곳을 찾아 피아노도 치고 강사들을 도와 후배들을 가르친다는 그는 나이에 비해 퍼그나 어른스러웠다.

요즘 방학을 만난 학생들은 아침부터 이곳을 찾는다. 8월 11일 저녁, 청년광장에서 펼쳐지는 2019연길광장군중문화축제의 개막식무대를 위해서다.“아침 8시부터 훈련을 시작하는데 여러 강사님들과 학원들이 수고가 많아요. 물론 저도 여기에 나와서 8시간 이상 바삐 보내야 하구요.” 리동국은 이렇게 말하면서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훔친다.

이 쎈터에서는 해마다 소박하지만 알차게 준비한‘예찬예술양성중심연주회'를 마련하는데 학부모들에게 학생들이 흘린 땀과 노력의 결과물을 전시하기 위해서란다. 처음에는 쎈터에서 했으나 참가자가 급증하면서 제2회부터는 예술학교거나 가무단의 극장을 리용하여 개최하였으며 올해 12월에는 제17기음악연주회를 개최하게 된단다. 그러면서 리동국 원장은 연길에서 100대의 드럼이 동시에 연주하는 열린 음악회를 한번 개최하고 싶었는데 자기의 새로운 꿈이 머지 않아 실현될 것이라고 굳게 확신했다.

리동국과 강사들의 노력으로 예찬예술양성쎈터는 다년래 국가급, 성급, 주급 각급 경색활동에서 우수한 성적들을 올렸는데 2016년 ‘제11회 전국청소년예술전시평의활동’총결승에서 이 쎈터 리성빈학생이 학전조 드럼독주 금상을 수상하고 리동국 원장이 중국음악예술가연구회로부터‘특장생 우수지도교사'로 표창받았다. 올해 2월에 북경에서 진행된‘청춘중국대형국제계렬활동'에서도 이 쎈터 학생들은 금, 은, 동상을 나란히 수상하고 쎈터는 ‘최우수조직상'을 받아 안았다.

올 2월에 획득한 국가급영예증서.

드럼은 음악의 내함을 더욱 풍부히 하고 포만되게 하며 하나의 좋은 드럼편성은 음악 본신을 더욱 감염력 있게 하는 동시에 힘으로 충만되게 한다. 마찬가지로 음악은 인생의 내함을 더욱 풍부히 하고 포만되게 하며 하나의 좋은 음악과정은 인간 본신을 더욱 감염력있게 하는 동시에 리듬으로 충만되게 한다.

자기가 배우고 싶은 악기를 배우면서 음악지식을 넓혀가는 것은 요즘 청소년들의 보편적인 수요이나 모두가 음악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담보하기 어려운 일이고 또 그러한 수요가 있는 모든 학생들을 수용할만한 전일제예술학교도 수적으로 역부족이다. 이러한 틈서리에서 정부의 아무런 보조도 없이 자기의 두손과 노력으로 예술양성쎈터를 탄탄하게 운영해 나가는 리동국씨가 자못 돋보인다.

청소년시절을 어렵게 살아오면서도 항상 희망과 꿈을 잃지 않은 리동국씨는 가끔 홀로 드럼을 두드리면서 살아온 나날을 후회없이 돌이켜본단다. 베이스 드럼을 힘껏 밟으면 아버지가 들려주던 북소리가 들려오고 탐탐과 스네어를 엇갈아 두드리면 역경속을 헤쳐나온 순간순간이 떠오르고 심벌과 하이햇을 곡선을 그으면서 재빨리 두드려주면 항상 옳바르게 열심히 살라는 어머님의 말씀이 쟁쟁히 들려온단다.

                                                               /길림신문 김태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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