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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혁신과 절약에 앞장선 김동진

편집/기자: [ 리철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8-08 08:21:52 ] 클릭: [ ]

[국경 70돍 특별기획] 제1자동차공장과 조선족건설자들(16)

제1자동차공장 로일대 건설자 김동진로인을 찾아갔을 때는 무더위가 고봉인 '찜통' 삼복철, 올해 90세에 나는 로인은 사전 예약을 접하고 정오의 더위도 마다하고 밖에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안내하는 김동진로인에게 "로인님, 정말 건강하시네요.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세요."라고 말하자 로인은 "비결은 무슨 비결이 있다구요. 그저 남들이 보내는 것처럼 보내고 있을뿐이지요."라고 한다. 그러면서 랭장고에서 과일을 꺼내며 "더운데 이 자두나 좀 맛보게나, 울안에다 내가 직접 심은 자두나무에서 딴거라네. 농약을 하나도 치지 않아 맛이 좋을거네."라고 잘 익은 자두를 우리에게 권한다.

만년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는 제1자동차공장 로일대 건설자 김동진

"내가 태여난 곳은 한국 경상북도 의성군 장하리 안사면 중하리이예요. 안사면은 지금 이름이고 옛날엔 신평면이라고 했지요. 7살에 부모를 따라서 중국으로 건너왔어요." 김동진로인은 83년전에 일제의 억압을 피해 떠난 마을 이름을 지금도 잊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길림성 서란현에서 조선족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니고 1951년에 장춘에 있는 길림성공업전과학교에 입학하여 기계제조전공을 학습, 1953년 4월 졸업과 동시에 장춘에서 아직 설립식을 가지지 않은 제1자동차공장에 입사했다.

"처음으로 공장에 도착하여 둘러보니 사처에 공사장을 벌이로 있었어요. 그리고 얼마 안 지나서 7월에 자동차공장에서는 정식으로 공장설립 정초식을 성대히 가졌지요. 저도 동료들과 함께 그 대회에 참가하였습니다. 그 때는 참 난관을 박차고 격정으로 불타 올랐던 세월이였어요." 김동진은 처음에 기술처 생산장비과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공예처 설비과로 그리고 일년후인 1955년에는 중앙설계실 표준화부서에서 3년 동안 근무하다가 또 자리를 옮겨 1958년 2월에는 발동기장비부서로 넘어가서 공예원으로 바이스직장과 설비과의 기술일군으로 근무했다.

자동차공장이 설립된 지 얼마 안 되다보니 인원 류동이 잦았다. 김동진은 입사해서 5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수시로 다른 부서로 옮겨 다니는 과정을 반복했지만 한마디의 원망도 없이 가는 곳마다 업무에 연찬하면서 공장 건설에 앞장섰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아주 오래 동안 저의 로임은 한번도 오르지 못했어요. 아마 자리 이동이 빈번해서 그런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조직에 전혀 원망이나 의견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공장 건설을 위하여 헌신하고 분투하던 시절이였거든요."김동진은 이렇게 자동차공장 설립 초창기 시절에 있었던 일을 회억했다.

발동기장비부서에서 기술원으로 근무할 때 김동진은 반복적인 실험과 관찰을 통해 발동기 공기주입구 생산 공예를 개진하는 데 성공하여 작업 효률을 20% 제고시켰다. 그리고 발동기부품 생산과정에서 로동자들의 생산라인을 더욱 합리하게 조절해 작업효률을 높였으며 바이스직장에 옮겨와서도 기술혁신에 몸을 담그고 일해 로동자들이 체력 소모를 최대한 줄이면서도 작업효률은 1배로 올리는 성적을 따냈다.

1976년 제1자동차공장에서 종합리용분공장이 설립되면서 여태도록 맡은바 일터에서 줄곧 선두를 달려왔던 김동진은 새로 부임한 공장장 등 네명과 함께 새로운 일터로 자리를 옮겨와 초창기의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헌신적으로 일해 나갔다. "젊은 시절에 간부로 승진할 기회도 있었지요. 령도에서 제기하는 것을 저는 기술일에만 한몸을 담그면서 일하고 싶다고 좋게 사절하였지요."

김동진은 업무에서 자기의 주장을 내세울 줄 아는 기술인재다. 한번은 공장장까지 다 동의한 기술방안을 도리를 따져가면서 설명해 다시 고치도록 한 적도 있다. 종합리용분공장 기술과에서 기사로 있을 당시의 일이다. 공장에서 배기관 소음기구좌 부품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새 설비 2대를 사들이기로 하였다. 방안까지 다 나오고 공장장도 동의한 상황, 뒤늦게 이일을 알게 된 김동진은 공장장과 기타 기술일군들이 있는 자리에서 "우리가 힘을 좀 들여서 낡은 설비를 개조해서도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다. 절약할 수 있는 것은 절약하여야지 국가의 재물이라고 허투루 랑비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방안을 내놓았다.

김동진의 일리가 있는 주장에 공장지도부에서는 다시 방안을 토론하고 나중에 그의 의견을 채납했는데 여기에서 국가에 3만원을 절약해줬다. 김동진로인은 그 때 일을 회억하면서 "그 당시 3만원이면 적은 돈이 아니였지요. 이 일로 자동차공장 신문에 나기도 했지요. 그 때나 지금이나 국가의 재물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허투루 랑비하면 되겠어요." 라고 말한다.

김동진은 1953년 공장에 입사해서부터 1990년에 퇴직할 때까지 그 부지런함과 헌신정신을 인정받아 선후로 자동차공장의 문명직원, 선진사업자, 우수기술사업일군의 영예를 수차나 따냈으며 1983년 공장설립 30주년에는 제1자동차공장의 공신으로 뽑히는 영예를 지녔다.

/길림신문 리철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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