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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동차 부품시장을 개척한 박정남

편집/기자: [ 리철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10-14 09:45:12 ] 클릭: [ ]

[국경 70돐 특별기획]제1자동차공장과 조선족건설자들(21)

자동차 제조 선진국으로 큰 자부심을 자랑하는 한국에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 우리 나라의 자동차공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면서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했다. 제1자동차공장에서 처음으로 대 한국 자동차 부품시장을 앞장서 개척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룩한 조선족건설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19살에 입사하여 72살까지 장장 53년간 자동차공장건설을 위해 한몸을 바친 박정남 고급관리일군(高级经理)이다.

 
한국 자동차 부품시장을 개척하던 때를 회억하는 박정남.

국경절을 한주 앞두고 제1자동차공장구역의 한 아빠트단지에 있는 박정남댁으로 찾아갔다. "한국에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제1자동차그룹 수출입회사 한국사무소 수석대표로 12년 있다가 이젠 돌아와서 좀 쉬기도 하면서 만년을 보낼 때가 됐다고 생각했지요." 알고 보니 박정남은 제1자동차공장의 사업 수요로 2007년에 퇴직하기 바쁘게 한국에 파견되여 제1자동차그룹 수출입회사 한국사무소를 몸소 세우고 12년간 해외에서 수석대표로 근무하다가 장춘에 돌아온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다.

"제가 수석대표로 한국에 있는 동안 지난해까지 자동차공장을 위하여 루계로 7억원에 가까운 수출액을 창출했습니다. 최고로 한해에 억원에 가깝게 자동차부품을 수출하기도 했지요." 박정남은 이렇게 말하면서 자동차 제조 선진국으로 자처하는 한국을 대상으로 수출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그동안 극복한 난관과 곤난들이 수없이 많았다고 한다.

1947년 10월생인 박정남은 나이대로 하면 2007년 10월에 퇴직하게 되여 있다. 한국 자동차 부품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중대한 사안을 토론 중이던 제1자동차공장 수출입회사 지도층에서는 우선 무엇보다 이를 책임지고 추진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때마침 자동차섀시공장(汽车底盘)에서 생산을 책임진 부공장장 박정남이 곧 퇴직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들은 이전부터 업무관계로 그를 잘 알고 있었던지라 박정남이야말로 한국 자동차 부품시장 개척에 둘도 없는 적임자라고 판단하고 이 과제를 퇴직을 앞둔 박정남 부공장장에게 의뢰했다. 한생을 자동차공장건설에 바쳐온 박정남은 퇴직 후에도 공장건설에 자신의 힘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선뜻이 대답, 이렇게 되여 60살에 자동차공장을 위한 그의 해외시장 개척이 새롭게 시작되였다.

박정남은 2007년 가을을 맞아 한국 전라북도 완주에 제1자동차그룹 수출입회사 한국사무소를 오픈했다. 전라북도는 완주, 군산, 익산과 김제 등을 중심으로 현대자동차, 타타대우상용차 등 완성차업체 2곳과 자동차 부품업체 380여개가 입주해있는 자동차공업이 집중된 곳이다. 박정남은 현대자동차와 대우상용차에 제1자동차공장에서 생산하는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가면서 시장개척에 나섰다. 40년을 넘는 그의 사업경력과 자동차와 관련한 거의 모든 부품과 거기에 대한 기술들을 눈을 감고서도 줄줄 외우는 실력에 대방의 기술자와 고급관리일군들은 못내 탄복했으며 이렇게 그는 점차적으로 신뢰와 인맥을 하나하나씩 쌓아갔다.

"어떤 때는 장춘에 왔다가 집에다 집을 풀어놓을 새도 없이 일을 보고는 다시 한국으로 날아갔습니다. 그쪽에서 또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일 걱정으로 제대로 자본적이 거의 없어요. 밤에 자다가도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날 때가 푸술했지요. 요즘은 그때 설친 잠을 보충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박정남은 이렇게 말하며 한국이라는 해외 자동차 시장에서 일년에 몇천만원의 수출을 달성하려면 결코 그저 사무실에 앉아서 대방에서 주문이 오기를 기다려서는 그건 오산이라고 강조한다.

 
제1자동차공장 섀시공장 부공장장으로 있을 때의 박정남(앞줄 왼쪽 세번째).

박정남은 1966년 19살의 나이에 제1자동차공장에 입사하여 줄곧 생산일선에서 잔뼈를 굳혀온 베테랑이다. 3년간이라는 견습공 시절을 경과하면서 악착같이 기술을 련마해 이십대 초반에 벌써 남들이 존경하는 반조장으로 승진했다. 53년이 지난 오늘도 그는 생산직장의 3천대 넘는 기계설비들의 이름과 순서 그리고 생산라인에서 나오는 수백가지 부품을 얼음판에 표주박 밀 듯 줄줄 외운다.

30대 시절 박정남은 3천여명의 로동자가 있는 자동차섀시공장에서 생산과의 과장으로 있으면서 전반 생산을 지휘하였으며 그 후 2년간 경영과로 넘어가 경영을 책임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0년 말, 생산에 문제가 봉착하게 되자 지도부에서는 다시 그를 생산과로 파견해서 일선에서 지휘를 하도록 하였다.

1995년 제1자동차공장에서는 박정남의 조직과 지휘 능력 그리고 높은 기술력을 충분히 신임하여 그를 자동차섀시공장의 공장장 조리로 임명했으며 얼마 후에는 부공장장으로 발탁하고 전반 생산을 책임지도록 하였다. 2007년 한국에 나가서 사무소 수석대표로 있기 전까지 그는 12년 동안 부공장장으로 있으면서 자동차공장의 건설과 발전을 위하여 자신의 힘과 열의를 다 바쳤다.

"1966년 국경절을 앞두고 공장에 입사해 견습공으로부터 시작하여 올해 봄까지 줄곧 출근하였으니 자동차공장을 위해 저그만치 53년 동안 공헌한 것으로 됩니다. 반세기도 넘는 사이에 저에게 많은 우여곡절들이 발생하기도 하였으나 저는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하면서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박정남은 재직시절의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지나온 과거를 감명 깊게 회억한다.

/길림신문 리철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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