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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재]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남창익, 량성룡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10-30 15:19:34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2군―좌급 군관

남창익(南昌益,1910―1934):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독립사 제3퇀 정치위원

남창일(南昌日,南昌一)이라고도 하며 1910년에 길림성 연길현 해란구 화련리 상촌에서 태여나 1928년에 화련리에서 반일지하활동에 참가하였다. 1930년 동만 5.30봉기 당시 상촌 반제동맹 책임자로 참가했으며 1931년초에 화련리적위대 결성에 참가하고 소대장이 되였다. 그 해 가을부터 1932년 봄까지 추수투쟁과 춘황투쟁에 참가했다. 그 해 5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7월에 해란구반일유격대 결성에 참여했다.

1933년초, 연길현 왕우구유격근거지로 들어가 현유격대대에 참가하여 제2중대 정치지도원이 되였다. 1934년 봄,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독립사 제3퇀 정치위원이 되여 왕청지역에서 활동하였다. 9월에 항일유격근거지의 식량과 군수물자를 해결하고 하마탕 일본집단부락을 습격하는 전투에서 전사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량성룡(梁成龍,1906―1935): 왕청현반일유격대대 대대장

량병진(梁秉珍)이라고도 하며 길림성 왕청현 대흥구(大興溝) 하서(河西)촌에서 태여났다. 1927년 하마탕에서 반일운동에 투신했으며 1929년에 하서마을에서 항일아동단을 조직했다. 1930년에 동만‘붉은 5월’ 투쟁에 참가했으며 1931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같은 해 9월, 라자구유격대 결성에 참여하고 소대장, 중대장이 되였다.

1932년말, 유격대가 왕청현반일유격대대로 개편되자 대대장이 되였다. 1933년말에 민생단원 혐의를 받아 사형당할 위기에 처했으나 직위 해제에 머물러 보통전사로 계속 유격투쟁에 참가했다. 1935년 9월 17일, 계관립자( 鷄冠砬子)에서 ‘토벌대’와 조우하여 격전 속에서 희생되였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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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들은 수없이 많다. 그동안 이들과 관련된 연구서적들이 출판되면서 우리 민족 영웅들을 기리고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 우리 민족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력사자료 부족, 연구 제한 등으로 아직도 이름도 명예도 남기지 않은 채 땅속에 묻힌 영웅들이 많고도 많다.

이에 《길림신문》은 광범한 독자들의 친족 혹은 아직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조선족 항일투사들의 감동사적(1,000자 좌우)을 접수해 무명영웅과 그들의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저 한다.

접수메일: shenyy66@163.com

련계인: 심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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