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로동자들의 일에 발 벗고 나선 박동범 공회주석

편집/기자: [ 리철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11-05 09:15:08 ] 클릭: [ ]

[국경 70돐 특별기획]제1자동차공장과 조선족건설자들(24)

제1자동차공장 부품공장 기계동력과에서 20년동안 작업반장으로 그리고 10년 넘게 공회주석으로 있으면서 로동자들과 희로액락을 같이 한 박동범은 고향이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석문이며 1942년 2월 생으로 올해 77세에 난다. 농촌에서 집안 형편이 곤난해 소학교밖에 졸업 못한 그는 15살이 되는 해인 1957년 자신의 운명을 한번 바꿔보려고 장춘에 있는 사촌형님을 찾아왔다.

공회주석으로 로동자들과 어울려 일하던 때를 회억하는 박동범과 부인 장초선.

“나이가 어리니까 뭐 할일이 있었겠습니까, 건축공사장에 가서 시키는 막로동을 했지요. 후에는 또 농업학교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요. 거기서 공부하고 일하면 한달에 8원을 줬는데 그걸 가지고 생활을 유지해 나갔지요.” 처음으로 장춘에 와서 생활하던 그 때를 박동범은 이렇게 회억하며 감회가 깊어한다. 그러다가 1960년 5월 18살이 되던 해 박동범은 제1자동차공장에서 사업하는 사촌형님 박동림의 소개로 로동자 모집에 응해 드디어 제1자동차공장 전기제품분공장의 로동자로 들어가게 되였다.

“그 때까지도 자동차공장 분공장들이 구전하지 못한 상황이였습니다. 전기제품분공장은 공장건물도 변변하지 못해 해방전의 낡은 건물을 그대로 대충 수리해서 썼는데 우리는 주로 전기제품을 수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금방 신입사원으로 들어간 박동범은 다른 로동자들과 같이 호남성 장사에 있는 자동차전기제품공장으로 기술연수를 가서 8개월 동안 학습하고 돌아왔다.

“1961년 8월 부대에서 자동차공장에 내려와 청년로동자들을 대상해 군대 모집을 했었습니다. 그 때 저도 군대에 가겠다고 신청해 나섰지요. 그해 우리 공장에서 함께 입대한 로동자들이 한 30명 됐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동차공장에서 함께 참군했던 전우들과 공장대문 앞에서 기념을 남기다(앞줄 오른쪽).

박동림은 1965년에 군대에서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1968년에 퇴역하여 다시 자동차공장으로 돌아와 두번째로 로동자생활을 시작하게 되였다. “돌아오니 전기제품분공장이 이름을 자동차부품분공장으로 바꿨더라구요. 저는 기계동력과에 들어가서 이전에 하던 전공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였지요.” 전공일을 제대로 배울 시간도 없이 군대에 가게 되다보니 공장에 돌아와서 신입사원이나 다를바 없이 기술을 배워야 했다. 지정한 스승도 없이 다른 전공들과 같이 어울려 일하면서 어깨너머도 하나 둘씩 배우다나니 여간만 힘들지 않았다. 그래도 박동범은 눈치 빠르게 전공기술을 익혀나갔으며 후에는 작업반장으로 되기까지 하였다.

“공장에서 제대로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부터였을겁니다. 그전에는 외지조사조로 파견되여 밖에서 돌고 또 공인선전대로 학교에 파견되여 가기도 하고 그렇게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지요.” 박동범은 이렇게 ‘문화대혁명’ 시절을 회억하며 “공인선전대로 학교에 파견되였다가 한번은 공장에 돌아와서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가 령도한테 혼나기도 했지요. 글쎄 우리가 가서 뭘 령도한단 말입니까, 되지도 않은 소리 아닙니까.”라고 웃지도 울지도 못할 그 때 이야기를 했다.

자동차부품분공장 기계동력과는 200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었다. 박동범은 이곳에서 20년 동안 작업반장과 당소조장으로 그리고 10년 넘게 공회주석으로 있으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는바 그의 선진사적은 두번이나 자동차공장의 공장신문에 실렸다. 특히 그가 공회주석으로 있는 10여년 동안 공회는 해마다 공장의 선진공회로 되는 영예를 따냈는데 로동자들은 너도 나도 그가 일을 잘한다고 칭찬하였다.

“공회는 말 그대로 로동자의 집이 아니겠습니까, 이들을 조직해 다채로운 활동을 조직하고 그들의 의견을 잘 들어주고 로동자형제들이 병으로 앓거나 그들에게 기쁜 일이나 슬프고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면 두말없이 선뜻 나서야 하는게 공회의 일이지요.”

박동범은 공회라는 조직을 리용하여 로동자들의 지식수준과 기능을 제고하기 위하여 무엇을 할가 생각을 하다가 지식경연을 조직하기로 하였다.

“지식경연은 처음부터 로동자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었지요. 따분하던 직장 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주입한 셈으로 되였지요. 등수에 오른 로동자들에게는 상품도 나눠주면서 말입니다. 로동자들은 이를 통해 업무능력을 제고하고 공장은 생산능력 제고와 품질 향상에 도움을 가져오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을 한 것으로 되였지요.” 박동범은 공회주석으로 있으면서 1년에 두번씩 지식경연을 조직하여 로동자들 가운데서 큰 호평을 얻었다.

자동차부품분공장 기계동력과의 공회주석으로 있는 10여년 동안 그는 로동자들을 친형제로 생각했다. 로동자들이 병으로 입원하면 제일 먼저 그들이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가 병문안을 하였는데 어떤 때에는 한달에 6번도 넘게 병문안을 다녀온 적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로동자들의 가족에 상사가 있을 때마다 직접 집을 찾아가 자식들도 저어한다는 망자의 시신을 같이 처리하는 일에 참여하였는데 이런 일을 수도 없이 겪었지만 언제 한번 싫은 내색을 내지 않았다. 그리고 매번 로동자들의 의견이나 건의를 잘 기록해놨다가 상급 공회조직에 반영하여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장섰다. 그래서 로동자들은 그가 이끄는 공회조직을 더욱 믿고 따랐으며 공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길림신문 리철수기자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