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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리동선, 리동학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12-24 14:58:42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2군―좌급 군관

리동선(李東鮮, 1904—1936): 중공평강구위원회 군사부장, 연화로농유격대 창시자

리동빈(李東斌), 리창수(李昌洙) 등으로도 불렸고 조선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여나 1910년에 길림성 화룡현 이도구 명암촌으로 이주했다. 1924년 겨울, 야학에서 사회주의사상을 수학했다. 1927년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 가입했고 1930년 1월 조선공산당 만주총국(화요파)의 지도하에 ‘3.1운동 11주년 기념준비위원회’ 결성에 참여했다. 2월에 연변학생련맹, 재동만조선청년동맹 간부들과 함께 반일시위 운동을 주도했다. 3월, ‘3.1운동  11주년 기념준비위원회’를 전동만폭동위원회로 개편하고 책임비서 겸 조직부 책임자가 되였다. 6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후 선후로 장인강당지부 서기, 중공평강구위원회 군사부장, 평강구혁명위원회 책임자, 화룡현혁명위원회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있었으며 연화로농유격대를 건립하여 반일투쟁을 전개했다.

1930년 11월, 이도구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되여 1931년 봄에 서대문형무소로 압송되였으며 1933년 12월에 경성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36년 7월 21일 처형당했다. (자료 출처: 《연변력사사건당사인물록》

리동학(李東學, 1914—1938):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경위려 제3퇀 퇀장

원명은 김동학이고 최동학이라고도 했으며 1914년 6월 4일 조선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여나 어려서 부모를 따라 길림성 연길현 지인향 류채구 북동으로 이주했다. 1930년 5월, 공청단에 가입하고 사방대 일대 청년단조직의 책임자가 되였다. 1932년에 춘황, 추수 투쟁을 거친 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2월에 연길현 석인구에 쏘베트정부가 건립되자 청년단 사업을 책임졌다. 1934년에 연길현 청년의용군에서 소대장, 중대장을 지냈다. 이 기간에 석인구인민혁명정부를 도와 ‘한족사업부’의 한족대중을 단결, 쟁취하는 사업에 일조했으며 청년의용군내에서도 한어학습반을 꾸려 조선족 대원들의 한어 수준을 높였다.

1935년에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제1퇀 제4련 패장, 제2군 제3사 경위련 련장으로 있었다. 이 시기 상부의 지시에 따라 무송, 장백현으로 진출하여 장백산근거지를 건설하는 간고한 과업을 수행하였다. 1937년에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2군 제6사에 배속되였으며 당해 6월 경위련을 인솔하여 보천보전투에서 경찰주재소를 습격하는 임무를 수행, 기병총 등 각종 무기와 탄약, 적탄통 등을 로획했다.

1938년 11월,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경위려 제3퇀 퇀장이 되여 제1로군 사령관 양정우를 호위하여 무송유격구에서 활동하던중 12월 27일, 화전현 류수하자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전사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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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들은 수없이 많다. 그동안 이들과 관련된 연구서적들이 출판되면서 우리 민족 영웅들을 기리고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 우리 민족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력사자료 부족, 연구 제한 등으로 아직도 이름도 명예도 남기지 않은 채 땅속에 묻힌 영웅들이 많고도 많다.

이에 《길림신문》은 광범한 독자들의 친족 혹은 아직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조선족 항일투사들의 감동사적(1,000자 좌우)을 접수해 무명영웅과 그들의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저 한다.

접수메일: shenyy66@163.com

련계인: 심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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