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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한우물을 다시 파는《청춘스타트》의 그 ‘전설’

편집/기자: [ 김가혜 김영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01-10 16:54:22 ] 클릭: [ ]

“반평생 이상을 춤군으로 살아왔다”고 말하고 있는 연변미카예술학원 김인철씨.

“그 당시 별들의 무대였던 《청춘스타트》 프로에 출연하는 것이 꿈이였어요.”

8090세대들에겐 더없이 정겨울 프로그램-《청춘스타트》(1999년 7월 2일 첫방송). 방송과 동시에 큰 화제를 모은 《청춘스타트》는 특히 90년대 중후반부터 중학생들 사이에서 류행되였던 댄스음악을 프로그램에 적절히 접목해 청소년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그 당시 명실상부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 했다.

“당시 연변에 댄스그룹이 사오백 팀은 족히 넘어 있었어요. 그때는 《청춘스타트》가 꿈의 무대이자 데뷔무대이기도 했었는데 프로그램 심사가 엄청 치렬했어요. 그 경쟁률을 뚫고 무대에 오르는 것은 그야말로 춤군으로서 크게 인정을 받는다는 의미였죠.”

‘그때 그 시절 우리가 함께 들었던 노래’의 추억을 댄스 재구성 영상으로 찍어 떠우인(抖音)에 올려 인기몰이 중인 계정주 김인철(38세)씨가 회억하는 《청춘스타트》. 알고 보니 그가 바로 《청춘스타트》에서 박력있는 춤사위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던 전설이란 그룹의 리더이기도 하였다.

《청춘스타트》를 보고 자란 8090세대들은 한번쯤 들어봤을 전설, 보스, 포터, 미카엘 등 그룹들. 이쯤에서 《청춘스타트》의 추억을 소환해본다. 매번 어떤 그룹이 출연할지 기대감에 매주 일요일 저녁 무조건 본방사수를 지켰던 시청자라면 기억 속에 추억 한조각쯤 있을 것이다.

김인철씨는 요즘 전설의 멤버였던 전광훈(32세)씨와 정광우(34세)씨와 함께 셋이서, 어떤 땐 그 당시 류행했던 패션까지 맞춰입고 댄스 리메이크 영상을 찍어 올리군 하는데 올릴 때마다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역시 《청춘스타트》를 보고 자란 세대인지라 떠우인 영상을 보고 근황이 궁금해 찾아갔더니, “살아온 인생 반평생 이상을 춤군으로 살아왔다”고 말하는 김인철씨는 사실 지금도 꾸준히 춤이라는 한 우물을 파고 있었다.

요즘은 학원 댄스강사님들과 함께 안무 창작과 인재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제가 댄서의 꿈을 꾸었던 것 같아요.”

소학교 5학년 때 운동대회 집체무 체조 대표댄서(领舞)로 뽑혀 주석대에 올랐다고 했다. 그렇게 우연히 자신의 춤군 재질을 알게 되였고, ‘오~ 내가 춤을 좀 추네?’ 그때부터 춤에 재미를 들여 14살부터는 본격적으로 춤영상을 찾아 배우고 추기 시작하였다. 어떤 날에는 한번 시작하면 4시간이고 5시간이고 지칠 줄 모르고 춤만 추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주위에서 춤을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고.

그때는 춤만 열심히 잘 추면 TV에 나오는 가수들처럼 될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청춘스타트》 무대에 오르는 것이 꿈”이였다. 하여 무대 사전 심사에 참가하려고 고향 조양천에서 연길까지 얼마나 왕복했는지 모른다.

엄청난 경쟁률에 매번 심사에서 떨어질 때마다 락심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인정을 받고 싶었기에 정말 죽기살기로 연습에 매달리고 또 노력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드디여 춤실력을 인정 받으며 청춘스타트 제4회 댄스배틀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다.

꿈에 그리던 무대라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였지만 반면 “춤만 추다 커서 뭐가 될래?” 진로를 걱정하는 주위의 편견과 반대도 엄청났다.

“제가 춤을 춘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엄청 반대하셨어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한창 힙합에 빠져 힙합바지를 입고 다닐 시기였거든요. 아버지가 어디서 그런 난해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냐며 제가 겨우 장만한 그 바지를 가위로 찢어버린 적도 있었어요. 할머니 반대도 심하셨는데 제가 그렇게 피타게 노력하여 오른 청춘스타트 무대를 보시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세계급 스타 레이디 가가의 안무가 리하타가 상해에 강의를 온다고 하여 무작정 비행기표를 끊어 배우러 달려가기도 했다.

마냥 함께 할 것 같았던 팀도 여러가지 원인으로 3번의 해체를 겪고 가족의 리해를 얻지 못하면서 10대 때 그렇게 즐겁던 춤이 20대에 들어서면서 싫어지는 순간이 왔고, 춤을 포기하려고 다른 일도 하면서 방황하기도 많이 했다. 그래도 결국엔 춤을 놓을 수 없었던 김인철씨. 그렇게 돌고 돌아 30대에 또 다시 ‘댄스’라는 우물을 다시 팠고 마침내 자신만의 '의미'를 찾았다. 요즘 김인철씨는 다른 의미의 댄서로 역할 전환을 했다.

자신이 반평생을 함께 해온 춤 경력을 바탕으로 예술생을 꿈꾸는 꿈나무들을 가르치고 있다. 안해 박미란씨와 함께 연변미카예술학원을 설립하고 인재양성에 매진하며 인생 제2막을 시작했다.

“제가 좋아서 배우려고 추는 춤이랑 다른 누군가를 가르치는 거랑은 차이가 많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연수기회가 생기면 상해든 한국이든 무작정 날아가 열심히 배웠어요. 요즘은 제가 배워준 제자들이 밖에 나가 인정을 받는 것이 그 무엇보다 더 행복해요.”

그리하여, 청춘스타트 무대에 오르는게 꿈이였던 김인철씨는 다른 새로운 꿈이 생겼다. 자신이 소시적 꿈꾸었던 것처럼 예술인을 꿈꾸는 미래 예능인재들이 더 큰 문화예술 무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하는 ‘예능꿈 제작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길림신문 김가혜 김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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