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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은 지금 38]련화촌,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당신을 맞이할 것입니다

편집/기자: [ 최승호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01-21 12:31:08 ] 클릭: [ ]

련화촌의 어제와 오늘

련화촌, 장춘시구역에서 약 80여킬로메터 떨어진 조선족이 많이 모여살던 마을이다. 이 마을은 네개 촌민소조에 호적인구는 500여명, 그중 3분의 2정도가 조선족이다. 하지만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촌민들이 외지로, 외국으로 나가면서 현재 이 마을의 상주인구는 약 180여명이고 그중 조선족은 50여명이 살고 있다.

지난 세기 60년대초에 수전농사를 짓기 위해 연변, 장백, 휘남 등지 조선족들이 당의 부름을 받고 이곳에 모여 벼밭을 일구면서 마을이 만들어졌다.

련화촌 지도부 관계자들과 길림신문 취재진

“우리 마을은 쌍양구에서도 제일 못사는 마을이였습니다. 개혁개방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외지로 일하러 나가고 토지가 일부 사람들에게 집중되면서 형편이 차차 나아지기 시작했죠.”련화촌의 촌서기인 진덕평(한족)의 말이다.

“십여년사이 한국으로 나간 조선족이 많아졌고 또한 젊은이들이 모두 가깝게는 장춘으로 멀리는 관내로 나가다 보니 마을에는 사람이 적어졌으나 경제형편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련화촌의 토지면적은 150여헥타르, 현재 련화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촌민은 30호정도, 그중에서 10여헥타르 이상의 토지를 도맡아 농사를 짓는 촌민이 3호 있다. 현재 촌민 인구당 수입은 5000원좌우, 거기에 도시에 나가거나 출국해서 보내온 수입까지 합하면 농민들은 부유하지는 않지만 안정되고 편안한 생활을 할수 있으며 현재 촌민 모두가 빈곤선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련화촌의 한족서기 진덕평

올해 65세인 진덕평은 이 마을의 원주민은 아니였다. 80년대에 련화촌의 전임 촌서기의 아들과 절친이였던 그는 늘 이 마을에 와서 놀다가 마을이 마음에 들어 부모들과 함께 련화촌에 이사를 왔단다.

“이 마을에 40여년 있었으니 고향과 마찬가지입니다. 1985년도부터 련화촌의 치보주임을 맡아 하다가 1994년부터 촌서기를 맡아서 지금까지 해왔습니다. 이 마을의 모든 촌민과 이 마을의 일초일목에 모두 나의 감정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밖에 나가 일하던 사람들이 명절때 고향에 돌아오면 꼭 진덕평서기를 찾는단다. 작은 선물이라도 들고 와서 그 사이 고향에 남아있는 부모님들을 잘 보살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취재를 받고 있는 진덕평서기

외국에, 외지에 나가 있는 조선족 촌민들이 신형농촌합작의료보험, 양로보험 등 사유로 도움을 청하면 두말없이 발벗고 나서고 촌에 남아 있는 로인들을 극진히 보살펴준다. 그는 또 해마다 큰 명절때면 마을의 개척자들인 로당원, 로전사들을 찾아 위문하고 식사를 대접하고 마을의 로인들이 앓으면 의사를 모셔다주던지 혹은 시내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가 치료를 도와준다.

련화촌 2촌민소조에는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한 녀성이 있었다. 남편과 외국에 나가있는 자식들은 그녀를 아예 관계하지 않았다. 정신장애가 하루하루 더 심해가는 것을 본 진덕평은 그녀를 정신병원에 보냈다. 그러나 병원치료는 구급대책일뿐 장구지책은 아니였다. 안전한 생활환경이 필요한 그녀였으나 남편과 자식이 있다보니 공립경로원에 들어갈 조건에 도달하지 못했다.이를 안스럽게 본 진덕평은 쌍양구와 장춘시 관계 부문을 몇달간 찾아다니며 교섭하여 끝내 공립경로원에 보냈다.

조선족 회원이 40여명이 있는 련화촌 로인협회에는 달마다 모두 모임을 가진다. 촌에서는 로인협회 무용복장이나 오락도구를 모두 해결해주는 등 해마다 만여원의 자금지원을 해준다.

련화촌의 환경건설

련화촌은 국도에서 약 3,4리정도 떨어져있다.이 마을을 찾아 들어가보면 논 밭 한가운데로 가로세로 뻗은 길가에는 심은지 몇년 안되는 나무들이 줄을 맞춰 늘어섰고 그 사이 사이로 가로등이 세워져있다.

“쌍양구에서 우리 련화촌처럼 모든 촌민소조마다에 가로등과 가로수들이 늘어선 마을은 없어요. 우리 촌사무실을 지은 이 몇년 사이 촌에서는 쌍양구와 장춘시 자금을 300~400만 쟁취해왔죠. 6년전에 총 길이 5000여메터되는 길에 가로등을 설치하는데 100여만원이 들었고 가로수를 심는데 150만원정도가 들었습니다.”

이 몇년간 진덕평서기가 주요하게 하는 일은 관련 부문을 찾아다니며 촌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쟁취해오는 일이란다.

촌사무실 일각

올해 봄이 되면 련화촌에 아스팔트길이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촌사무실과 문화정원건설에 사용될 자금도 이미 조달되여 올해내로 2층짜리 촌사무실이 개축되고 촌사무실 마당에 있는 촌민들의 문화생활에 리용될 문화정원도 더욱 완벽하게 건설되게 된단다. 또한 올해부터 새농촌건설이 시작되여 농민주택개조가 이루어진단다.

“지금도 깨끗하게 정돈된 마을길을 걷노라면 마음이 흐뭇해납니다. 이제 3,4년이 지나 새 농촌 건설이 마무리되면 련화촌은 몰라보게 변할 것입니다. 우리 마을은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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