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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로 쌍두마차 이끄는 행복촌, 촌민들 '행복 벼농사'

편집/기자: [ 리창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05-15 09:07:24 ] 클릭: [ ]

                                                    

조선족청장년들이 대도시로,외국으로 진출하여 조선족마을들이 황페화되고 있는 지금, 매하구시 행복촌의 김소섭(69세)과 김영철(48세)은 촌민들의 토지를 양도받아 규모화농사를 하면서 마을을 지키고 고향땅에서 여생과 청춘을 빛내고 있다.

 69세에도 벼농사하는 토배기전문가 김소섭로인

매하구시 행복촌은 480세대에 4800무의 토지면적을 가진 규모가 비교적 큰 조선족촌이다.행복촌의 촌당지부서기 사업을 여러해동안 담임해온 김소섭 전임서기는 올해 69세되는 고령이지만 지금까지 벼농사를 견지하고 있다.몇해전까지만 해도 김소섭로인은 많은 토지를 경작하는 한편 벼종자배육을 했다. 그는 일찍 1999년에 고급농예사의 직함까지 받은 벼농사 실천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농민전문가이다.

벼자람세를 살펴보고 있는 김영철(좌)과 김소섭(우)로인

김소섭로인의 두 아들은 한국에 나간지 여러해가 되기에 살림은 비교적 부유하다.하지만 땅에 애착을 가지고있는 김소섭로인을 벼농사를 놓지않고 줄곧 견지하고있다.김소섭로인의 가정에는 지금 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는 손군 3명이 있는데 김소섭로인은 손군들의 공부 뒤바라지도 바쁘지만 벼농사만은 그냥 견지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행복촌의 김영철이 벼파종,벼육모,벼이앙의 기지화를 실현하였기에 벼농사가 한결 수월해졌다.올해 김소섭로인은 165무의 논을 경작하는 한편 촌민들의 벼육종과 벼농사의 전반과정을 기술지도하면서 마을의 급시우로 되고 있다.

벼육모 기지화를 실현한 48세 귀국귀농 촌민 김영철

조선촌마다 청장년들이 저마다 농촌을 떠나 도시와 외국으로 진출하여 마을이 로령화로 활기가 없어지고 있지만  행복촌의 김영철(48세)은 고향마을에서 규모화 기계화 벼농사를 하면서 꿈과 청춘을 빛내고 있다.

김영철은 1994년에 한국에 갔다가 2004년에 귀국하였다.귀국후 산동성 청도시에 있는 한국기업에도 취직했댔지만 1998년에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기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행복촌 3사의 사장과 촌의 회계업무를 담당한 김영철은 농촌의 토지가 무분별하게 양도되고 관리가 혼란한 것을 보고 자신이 촌민들의 토지를 집중양도받아 규모화벼농사를 실현할 구상을 하였다.

2009년 김영철은 행복촌 3사의 120무의 논을 양도받아 벼농사를 시작하면서 귀국귀농인이 되였다. 벼농사에 문외한인 김영철은 당시 촌당지부서기인 김소섭의 지도를 받으면서 벼농사에 점차 적응하기 시작하였고 경험을 하나하나 루적하면서 농사면적을 넓혀갔다. 어느덧 지금은 무려 700무의 벼농사를 하는 농장주로 탈바꿈하였다.

김영철의 벼육모기지

김영철은 농업기계화 실현에도 투자를 아끼지않았다. 지금까지 70여만원을 투자하여 벼파종육모기계,벼이앙기계,농약살포드론,벼수확기계를 구입하여 농업생산의 전과정 기계화를 실현하였다.

벼농사에서 벼파종과 육모는 농사의 시작이면서도 관건적인 환절이다. 행복촌에서 벼농사하는 농호들의 규모를 보면 많이하는 사람은 700여무가 되지만 적게하는 사람은 20여무밖에 안된다. 벼육모 또한 각양각색이여서 해마다 육모가 잘되지않아 고민하는 농호들이 속출하고 있었다.소규모농사호들의 고충을 듣고 전촌의 안전다수확을 확보하기 위하여 김영철은  2019년에 720평방메터되는 육모하우스 5개동과 260평방되는 육모하우스 15동을 지어 전촌 조선족농호 4호와 한족농호 14호의 벼파종과 벼육모를 공급하는 벼육모기지를 건설하였다. 이로써 1300무의 논의 안전다수확을 실현하였다.

논갈이에 바쁜 김영철

지금 농망기에 농촌에서 일군을 구하기 힘이 들고 소규모경작호들이 현대화와 기계화가 어려운 실정을 감안하여 김영철은 전촌 1400무의 논에 대한 대리파종,대리육모,대리경작,대리벼모내기,대리농약살포를 실현하여 소규모경작호들을 이끌어 함께 농업현대화와 농업기계화의 혜택을 보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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