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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상기 31]일본에서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06-01 08:15:58 ] 클릭: [ ]

5월 25일 일본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선포한 긴급사태선언(4월 7일에 선포)을 전면적으로 해제하였다.이와 함께 손씻기와 마스크 착용, 인구 밀집 지역 방문에 대한 자제 등의 <새로운 생활양식>을 요구 하는 사회경제활동이 점차적으로 정상화되게 된다.

정상출근을 앞두고 거의 두달만에 마음 놓고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발길이 닿는대로 가보니 약방이다.그동안 마스크를 사기 위해 매일 한번씩은 들리군 했던 곳이다. 몇시간 씩 줄을 섰던 곳이고 거의 매일 실망된 얼굴로 나와야 했던 곳이며 가끔은 운좋게 마스크가 내손에 쥐여졌던 곳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진열대에 마스크가 꽉 차있는 정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질서정연하게 진렬된 마스크를 보니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수자를 제한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까지 붙어 있는 것을 보면 마스크위기가 이미 지난 것임이 틀림없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마스크가 능력이고 운이고 인맥이였는데…

요즘들어 일본 약방들의 진렬대마다 마스크가 꽉 차있다.

1월 말부터 일본의 약국들에서는 마스크가 종적을 감추기 시작했다. 화분증때문에 비축용으로 사두었던 마스크가 거의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가는 곳마다 마스크 진열대가 텅텅 비여 있었고 번마다 한 사람당 하나씩이라는 표어만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초봄부터 한참동안은 화분증으로 시달려야 하는 일본이기에 화장지처럼 늘 마스크를 비축해 놓는 것에 습관이 되였다. 여태 일본에서 24년을 살았지만 마스크를 살 수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일본에서 류통되였던 마스크의 70프로 정도가 사실은 중국산이였다 한다. 중국과의 물류가 정지된 형편에서 마스크가 종적을 감춘게 당연한 일이였다.

마스크뿐만아니라 오래지 않아 화장지도 없어 진다는 헛소문이 도는 바람에 화장지가 시장에서 종적을 감춘 적도 있었다.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화장지는 백퍼센트 일본산이기 때문에 재고가 충분하다고 몇번이나 강조했지만 한가족에 하나씩이라는 제한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사람들은 닥치는대로 사들였다.

그 리유는 비슷했다. 미지근한 물과 같은 정부의 코로나대책이 민심을 안정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난국인 일본은 수많은 자연재해를 겪어냈다. 100년만에 발생한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을 겪으면서 닥쳐오는 공포앞에서 내성적이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일본사람들의 국민성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였다. 그것은 개변할 수 없는 지리적인 위치에서의 적응능력과 재난을 벗으로 살아가야 할 일본사람들의 숙명과도 같은 처세원칙이고 지혜였다. 게다가 2003년에 발생한 사스(SARS)와 2014년에 발생한 마스(MARS)위기를 비교적 순조롭게 넘긴 일본은 코로나바이러스 발생초기 옆집의 불구경처럼 지나치게 락관적이였다. 병증상이 뚜렷하지 않고 아직 백신이 없는데다가 집단 감염과 의료 붕괴까지 초래하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그것은 위험한 착각이였다.

1월 16일 일본에서 첫 감염자가 발견된 것을 이어 2월 3일에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감염자가 륙속 나왔지만 일본정부와 일본사람들은 려행객들의 비자를 연장해 주는 등 인도주의적인 차원에 힘을 넣고 있을 뿐 바이러스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야 3월 2일부터 전국 소학교와 초・고중의 림시휴학이 시작되였고 3월 9일부터 특정지역에 대한 입국제한이 시작되였다. 강한 집념을 보였던 2020 도꾜 올림픽 개최도 3월 24일에 1년후의 연기로 결정되였다. 모든 대책이 한발 늦다는 느낌이였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코로나대책에 나선 시점에서야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확인할 유전자 증폭(PCR) 검사능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차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정부가 마스크부족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4월 17일부터 전국적으로 각 가정에 가제마스크 두개씩 분배한다고 선포하였지만 불량품에 대한 재 검품이라는 리유로 아직 마스크를 받지 못한 가정이 대부분이다. 정액급부금(定額給付金)의 대상과 액수가 오전과 오후사이에 변동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정부였고 매일 매체를 통하여 의료 전문가들과 경제전문가들의 의론을 들었지만 안심될 만한 명확한 방향이 보이지 않았던 두달간이였다.

3월 26일, 미국입국자제한조치를 시작한 나리타공항에서 시차계산착오로 미국에서 도착한 90여명의 승무원과 승객들에 대해 일반검역외 14일간의 격리조치와 공공교통수단에 대한 지도가 없이 무사통과시키는 미스가 생겼다는 뉴스에 아연해지기도 했다. 자연재해와의 공생에 익숙한 일본이지만 바이러스에 대한 대책은 미숙함을 보였다.

긴급사태시기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텅빈 아키하바라(秋叶原)역

여러가지 법적인 절차때문에 정부는 4월 7일에야 드디어 <긴급사태선언>을 발포하여 밀폐,밀집,밀접에 대한 회피를 호소하였다. 다만 재택근무와 영업자숙에 대하여 국민들에게 부탁하고 설복하는 형식의 <긴급사태선언>이였다. 벌책을 동반한 강제적인 대책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자숙과 사회적인 압력에 의한 일본특유의 코로나대책에 대하여 걱정하고 비판하는 이들도 많았다.

어떤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의 사람을 납득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가능성을 예측하면서 천천히 고려하고 판단한다. 실패률을 줄이기 위해 서뿔리 결론을 내리지 않는 그들은 흔히 ‘소극적이다’, ‘일처리 속도가 늦다’라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무난한 일처리방식인 일본식의 그 프로세스때문에 적시적이 되지 못하다고 비난을 받았던 바이러스대책이였다.

결과 근 한달전까지만 해도 “코러나19로 큰 코 다칠 일본”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일본이 일본식으로 바이러스봉쇄에 단계적으로 성공하게 되였다. “신기하다” “운이 좋았다”라는 세론의 평가를 받고 있는 동시에 결핵예방 백신에 대한 중시도와 일본인 특유의 유전자가 원인이라고 밝히는 전문가들도 있다.

하면 일본이 한달사이에 코로나바이러스를 봉쇄하게 된 요인은 무엇일가. 아베총리가 5월 25일 기자회견에서 전국민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다 싶이 제일 큰 원인은 일본사람들의 생활습성과 국민성이 아닐가 싶다. 일본사람들은 어쩌면 이런 결과를 예측하거나 목표로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달반이라는 기간, 불안함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자기 스스로 자기를 지켜야 한다는 강한 민심은 조용히 해야 할 일을 해 왔다.

우선 화분증때문에 마스크를 떠날수 없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사실 마스크를 사려 두세시간씩 줄을 선 사람들중에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것은 마스크가 없어서가 아니라 미리 장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중국 관광객들로 붐볐던 아키하바라 일각 /4월18일 촬영

다음 사람간의 미묘한 거리감이 그다지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몰려 다니거나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일을 저어하는 편이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거나 다른 사람 몸에 손을 대는 것을 그닥 선호하는 편이 아닌 일본 사람들이였기에 ‘사회적인 거리’가 오히려 쉬운 일이였을 수도 있다.

위생습관이 제일 중요한 원인이 아닐가 싶다. 공공 화장실에서 손을 씻거나 양치를 하기 위해 줄을 서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리고 정부가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초기부터 민간에서는 소독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알려졌다.

일본 사람들간의 무언의 책임감은 집단 감염을 확산시키지 않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책임감은 절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가 걸리면 가족이 걸릴 수 있게 되고 나의 회사와 가족의 회사가 봉쇄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대부분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다. 매개인의 그런 의식이 강제적인 조치가 아닌 상태에서 ‘사람간의 접촉 80퍼센트 삭감’이라는 정부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고 집단감염을 막고 감염자수와 사망자수를 줄일 수 있은 결정적인 요소가 아닐가 싶다.

코로나19로 새롭게 알려지는 일도 있었다. 프라이버시라는 리유로 입을 열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여서 감염루트를 밝히지 못하는 페단도 있었고 민감한 일부사람들 때문에 의료업 종사자들과 그 가족들이 바이러스 취급을 당하는 경향도 있었다. 더 놀라운 일은 감염자수 통계를 팩스로 보고하는 바람에 수자가 중복되는 미스가 생겼다는, 이외로 아날로그적인 면이 존재하는 것도 알게 되였다. 온라인수업조건이 구비되지 못하는 일면이 있었으며 일본의 도장문화가 재택근무와 같은 원격업무에 영향을 주고 있는 페단도 있었다. 제일 답답했던 일이 PCR검사단계까지의 절차였다. 반드시 의사의 결정에 따라 보건소에 상담을 해야 하고 지정해 주는 기관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그 과정에 증상이 악화된 례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그 절차가 있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보건소가 감염루트를 장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우연한 성공이였을수도 있는 일본은 상승선을 긋고 있는 파산률과 실업률, 2020도꾜올림픽 연기로 인한 경제적인 손실, 여러가지 제도와 절차에 대한 개혁 등 짊어지고 가야 할 과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긴급사태선언이 해제된 후 일주일간이 지났다. 여태 감염자수 <0>을 기록했던 기타규슈(北九州) 에서 집단감염이 발생되였고 도꾜의 감염자수도 줄지 않고 있다. 코로나 위기는 계속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감염루트가 파악되여 있다는 점에서 6월 1일부터 학교수업이 시작되는 등 일부 대책이 완화를 가져 오게 된다.

절대적인 코로나 봉쇄가 막연한 현실에서 <긴급사태선언>이 언제 다시 실시될지 확실하지 않지만 앞으로 얼마동안은 바이러스와의 공생과 전쟁으로 계속될 것 같다.

/길림신문 일본특파원 리홍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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