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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75]105권의 대형 사료집 '탄생'(김춘선편4)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11-20 09:15:05 ] 클릭: [ ]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75](김춘선편4)

 

조선족력사연구에서 론문, 저작 등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론문이나 저작을 더 훌륭하게 완성하려면 이들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집대성한 사료집이 있어야 한다. 나의 지도교수인 박창욱교수도 이 방면에 대해 강조한 바도 있고 그래서 이러한 자료집을 출간하는 것이 의사일정에 올랐다. 나는 박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후 선생님이 옛날에 말했던 인재중심, 자료중심, 연구중심 그 세가지를 완성하기 위하여 몰두하기 시작하였고 이 사업을 20072008년부터 시작하였다. 그런데 내가 박사공부를 할 때도 그 이후에도 우리 연변을 비롯한 국내 여러 학자들이 중국조선족에 대한 자료집 출간을 여러차례 시도한 바가 있다.

초기에 류연산선생이 중심이 되여서 연변인민출판사에서《중국조선족자료집》1, 2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출간하면서 두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일단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면 그 자료를 장기적이고 계통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이 없이 서둘러 한두책씩 발간한 이 점이고, 두번째는 자료집을 발간하는데 그 자료의 성격이라던가 여러가지 외사문제라던가 출간원칙이라던가 이런데 저촉되지 않는지를 잘 검토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런 시도는 결과적으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실패하게 되였던 것이다.

명동학교 전람관에서.

이러한 실정에서 나는 당시 연변인민출판사 리성권 사장을 만나서 자료집출간에 대해 함께 계획해볼 의향이 없는가고 문의했고 리성권 사장도 일찍부터 자료집 출간에 직접 참여했고 후원해왔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의 의향에 대해 찬성과 지지를 표시했다. 이렇게 초기에 리성권 사장과 자료집 출간을 계획하게 되였다. 한국에서 박사공부를 하면서 박사학위 론문을 쓸 때부터 앞으로 사료집을 출간할 타산으로 론문의 주제를 <연변지역 조선족사회의 형성 연구>라고 비교적 큰 주제를 잡았고 그 론문을 완성하기 위하여 이주사부터 시작하여 조선족사회 형성과 발전의 여러 방면에서 자료를 대량 수집하였기 때문에 기본토대를 마련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21세기에 들어와서 통신, 컴퓨터, 각 지역 도서관 자료발굴이 많은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자료집을 출간할 수 있는 토대가 이미 마련되였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리성권 사장과 논의하였는데 얼마를 몇권 계획하는가고 물어서 내가 선뜻 적어도 백권은 해야 되지 않겠는가고 대답했더니 리성권 사장이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백권을 출간하느냐고 되물었다. “중국에서 그렇게 많은 자료집이 나왔지만 지금까지 백권의 자료집은 하나도 없고, 중국력사도 24사 정도로 나왔는데” 하면서 묻던 일이 기억난다. 그러나 우리 조선족의 력사는 기타 몽골족이나 만족처럼 대륙을 통치했던 그런 위대한 민족의 력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조선민족이 걸어온 력사가 상당히 유구하고 남긴 력사유적과 문화는 상당히 많다는 것을 여러번 설명하였다. 때문에 최소로 백권이고 그 이상으로도 만들 수 있다고 얘기했다. 우선 우리가 자료집이 체계적으로 나오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료의 질보다도 량적으로 집대성하여 후학들이나 교수들의 연구에 도움이 되게끔 하는 것이 우리의 선차적인 임무가 아니겠는가고 설득했다. 이렇게 2007년에 만나 토의하고 2011년부터 계획에 착수하여 자료집 출간을 시작하게 되였다. 그런데 이 사업은 방대한 사업이여서 막강한 경제적래원이 없으면 도저히 진행하기 힘든 일이였다. 그러나 리성권 사장은 나를 믿어주었고 또 자료집의 가치도 인정하였기에 국가의 큰 도움이 없이 소수민족도서라는 한권에 몇만원씩 주는 경제지원에 의탁하여 우선 출간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2013년부터 자료집이 나오게 되였는데 약 20권이 나오면서부터 이 책이 국가의 중시를 받게 되였다. 그러자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국가출판총서에 중점프로젝트로 신청하였고 이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전문가위원회에서 우리 중국조선족사료총서 전집 100권을 검증하게 되였다.

서재에서.

2014년 말이 아닌가 기억되는데 당시 북경에 있던 리성권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서 “지금 국가출판총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증단에서 우리 이 프로젝트를 심사를 하겠다는데 당신이 직접 와서 답변할 수 없겠는가? 주필이 반드시 답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면서 급히 북경에 오라고 했다. 당시 나의 어머니가 중병으로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이여서 떠나기가 힘들었지만 민족의 사명감으로 출판사에 련락하여 왜서 이 책을 출간해야 하고 출간할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며 가치와 사회적효과는 어떠한가 하는 내용으로 15분 분량의 PPT를 만들어서 부사장인 량문화와 같이 밤중에 비행기를 타고 북경에 갔다. 그 이튿날에 출판총서 전문가소조의 검증단 앞에서 답변을 하게 되였는데 저는 짧은 15분내에 왜 우리 조선족의 자료집 100권이 나와야 되고 어떠한 자료들이 망라되며 이러한 자료들의 가치는 어떻고 사회적효과는 어떻다는 것을 화면으로 아주 설득력이 있게 설명했다. 그때 당시 그분들도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소수민족의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백권이란 자료집을 낼 수 있느냐? 도저히 리해가 안된다.” 초기에는 모두 이렇게 생각했는데 나의 설명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였고 결과적으로 이 항목이, 중국조선족사료전집 백권 프로젝트가 비준되였다. 지금은 105권으로 나왔는데 100권은 문자화가 된 것이고 4권은 사진자료집으로 된 것이며 마지막 한책은 목록색인으로 총 105권으로 되였다. 어떻게 되였든지간에 출판총서 전문가 검증소조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통과시켰고 근 천만원에 달하는 출판거금을 출판사에 지원함으로써 우리 자료집이 금년에 도편사료집 4권까지 완성되면서 근 십년간 105권이란 거대한 자료집이 완성될 수가 있었다.

김춘선교수의 론문집 《북간도한인사회의의 형성과 민족운동》.

이 자료집 완성에는 여러가지 경제적문제를 제외하더라도 다른 많은 문제가 존재했다. 나 혼자의 힘과 정력으로 완성할 수 없고 수많은 인력과 교수들의 정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연변대학의 민족력사연구소와 고적연구소를 중심으로 편찬사무실을 앉혔고 몇명의 전문인원을 초빙하였으며 석, 박사 수십명과 국내외 수십명의 교수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이런 성과를 올리게 되였다. 방대한 량의 자료를 어떻게 체계를 세우느냐 하는 문제도 상당히 복잡했다. 결국 우리는 력사편, 정치경제편, 문화예술편, 철학종교편, 언어문학편, 민속편, 교육편, 신문잡지편, 사진자료편 등 9개 편으로 나누어서 자료가 발굴되는 족족 분류하여 편집한 후 십년간 출간했다. 책 100권이 나온 다음 국가중점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질이 보장되였는지 제시간내에 완성되였는지 다른 문제점이 없는지 등 검증과 확인을 거쳐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우수도서로 선정되였다. 그후 출판총국에서는 연변인민출판사에 국가중점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지표를 더 증가해 주었으며 연변인민출판사는 편집과 디자인 등 여러개 상도 수상하였다.

도서기증.

그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백권에 달하는 그 방대한 량을 어떻게 수집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자료를 수집하려면 연변내 도서관 하나로는 절대 부족하였고 거기에 교수님들이 수십년간 모은 자료를 다 합해도 부족하였다. 그래서 국내 뿐만 아니라 국외자료까지 수집하는 이런 막대한 임무가 완성해야만 했던 것이다. 우리는 출판사에서 주는 경비를 토대로 자료수집 계획을 작성하고 수많은 교수들이 자기의 연구시간을 희생하면서 총체적인 계획하에서 국내, 국외로 분산적으로 나가서 자료를 수집했다. 특히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길림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의 협조를 많이 받았다. 일본연구소에는 중국에서 유일한 만철당안(서류)이 소장되여 있었다.만철회사는 일본제국주의가 중국을 침략할 때 제일 큰 식민회사로서 침화정책을 추진한 대본영이였다. 그때 만철회사에서는 “만철월보”라는 자료집(잡지)을 냈는데 여기에는 대량의 자료들이 기록되여 있고 지금까지도 필름자료가 완비하게 보존되여 있었다. 그런데 그때까만 해도 이런 자료들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실정이였다. 일반인들은 열람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성정부에 제출하고 사회과학원에 제출하여 직접 정부와 유관부문의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연구소의 적극적인 지지하에 우리가 공동 합작하는 차원에서 연구소의 학자들이 자료를 찾아 우리들에게 제공하는 형식으로 도움을 받았던 일도 있다. 그외에도 대련도서관, 장춘, 길림, 할빈 등 각 지역의 도서관과 자료실들을 샅샅이 누비면서 자료를 수집해왔고 1910년대로부터 출간되였던 각 지역의 신문잡지도 수집해왔다. 이때 우리가 중점적으로 수집했던 것은 아마 중화민국 당안자료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때 중화민국 당안자료는 갓 공개되였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중시를 돌리지 않았고 거기에 대한 연구도 거의 없을 때였다. 우리 동북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민족사연구에서 지방당안자료를 제일 많이 연구하고 개발한 것이 우리가 아니겠는가고 생각한다. 이러한 발굴작업이 우선 박창욱교수님 때부터 시작되였지만 자료집을 편집하면서 체계적인 자료집을 만들기 위하여 수많은 교수님들이 몰붓은 많은 노력에 의해서 수많은 자료집들이 발간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중화민국당안자료는 주요하게 일제가 남겼던 당안자료 혹은 다른 당안이나 회억록에서 볼 수 없었던 당시 실질적으로 중국을 지배하고 있었던 정부의 당안자료로서 상당히 보귀하고 가치가 높은 당안자료였다. 이런 자료를 발굴하여 이번 사료집에 넣을수 있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자료수집에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당사자들의 회억록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항일투쟁을 비롯하여 해방전쟁, 조선전쟁 등에 직접 참여하였던 당사자들이 각종 회억록을 남겼는데 대체로 편면적이고 분산적이였다. 이 분산적인 자료들을 우리가 체계적으로 묶었고 그분들을 다시 찾아다니면서 수집, 정리하였다. 그리고 그외에도 많은 가정과 개인들이 사적으로 보관하였던 자료들을 발굴하여 당안자료에 수록한 것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중국조선족사료전집》100권 중의 부분적 도서(2016년 6월 22일 리광평 촬영)

금년에 도편자료집이 나왔는데 1,600여장의 도편이 여기에 수록되였다. 이 도편자료도 기존에 게재되였던 사진을 제외하고도 많은 학자들이 수십년간의 노력을 거쳐서 소중하게 보관했던 자료들을 우리에게 제공함으로써 이같은 도편자료집이 나올 수 있게 되였다. 도편자료집은 판권문제까지 존재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관계문제에서도 우리가 많은 신경을 써서 금후에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중국조선족사료전집》100권 중의 부분적 도서(2016년 6월 22일 리광평 촬영)

이번 자료집은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자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장서용으로 전국 내지는 국외까지도 널리 배포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의 현실에서 백권의 도서를 개인적으로 소장하기 어려운 것이 실제문제이지만 이 자료들은 정부나 학교, 학계에서 솔선적으로 문화를 전파하고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우리 조선족집거지라든가 조선족학교라든가 각 지역의 문화관 혹은 농촌에까지도 필요하면 전부 제공할 수 있는 이런 노력을 금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우리는 지금 정부측과 협의하고 있는데 나의 생각으로는 금후 중국 경내의 대도시를 포함하여 상해, 청도, 북경 등지에 새롭게 형성된 도시의 조선족집거지역의 문화사업을 위하여 사료집을 이들 지역에 지원하는 것은 우리들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소수민족으로서 백권의 사료집을 냈다는 것은 우리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는 처음이고 한족들도 그 성과에 대해 대단히 놀랄 정도로 우리 민족사연구에서 큰 성과를 거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이번 사료집의 출간은 금후 우리 민족사연구의 하나의 토대로서 후학들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다만 최초로 한 작업이였고 수십명이 공동으로 한 작업이였기 때문에 일부 자료선택이나 편집에서 많은 문제점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금후 이 자료집을 다시 정밀하게 재편하거나 혹은 보완하는 가운데서 극복할 바라고 생각한다.

/길림신문 글 구성: 김태국

영상 사진: 김성걸 김파 정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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