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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련재] 《한락연을 추억하여》(20)한락연의 죽음과 신강미술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12-14 16:50:31 ] 클릭: [ ]
 
2014년 민정부에서 한락연에게 발급한 렬사증명서.
 
▨ 륙기청

성세재의 철막이 신강을 떠나면서 신강은 중국의 자유구역으로 다시 설정되였고 문화인들도 점차 이 새로운 부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중 화가들중에서 제일 먼저 해당 부락으로 들어간 것은 한락연으로부터 시작되였다. 하여 신강미술을 읽으면 서양화가 한락연선생을 접하지 않을 수 없다.

한선생은 지난해 처음 신강에 갔을 때 국내의 많은 학생들을 데리고 창작활동을 하였는데 풍경 고적지들과 사람들의 생활상황을 모두 기록하였다. 그는 먼저 우룸치에서 전시하였는데 내지의 모든 그림을 신강 동포들에게 소개한 후 천산 남북을 전전하며 신강의 그림자료들을 수집했다. 천산의 정상인 천지까지 정복하면서 위험과 고생을 이겨내며 수많은 귀중한 자료들을 얻었고 또한 우룸치로 돌아가 신강에서의 두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작년 늦가을 란주로 돌아온 후 11월에 신강 작품들을 란주에서 전시하였다. 그는 내지의 모든 것을 신강에 소개하고 신강의 모든 것을 내지의 동포들에게 소개하였다. 이와 같은 문화상, 미술상의 교류사업은 한락연이 시초로서 이는 전반 사회문화에 큰 기여를 하였다.

한선생은 남강을 려행하던중, 고차 부근의 산에서 석굴벽화를 발견하였다. 작년에 처음 모사해온 작품으로는 부족하기에 올해 또다시 조수들과 함께 고차석굴에 가서 벽화를 모사하였다. 그의 목적은 신강 사람들의 생활을 내지의 동포들에게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강에 있는 고대 중국 문화의 유적을 국민들에게 소개함으로써 수천년전에 신강이 중국의 판도였으며 신강에 어떤 미술품들이 있었는지를 알리고저 하는 것이었다. 이런 발굴사업은 국내에 사회문화를 소개하고 신강의 미술에 대한 기여가 굉장히 컸다.

불행히도 반년 동안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재앙이 갑자기 들이닥쳐 한선생은 사업에 목숨을 바쳤다. 한선생은 신강미술을 위해 사망했는데 이것은 나라와 민족의 손실이고 서북 문화계의 손실이며 신강 문화의 손실이다.

신강과 내지 미술은 한선생이 소통하기 시작하였다. 신강 고대 미술은 한선생이 발굴하여 사람들에게 소개되기 시작했고 내지 인민들의 생활은 한선생이 신강 동포들에게 소개하였는데 이것은 중요한 사업이다. 지금은 한선생의 죽음과 함께 완연히 중단되였다. 신강은 중국의 신강이고4억 5천만 동포들의 신강이며 신강 문화사업은 전 중국 문화일군들의 책임이지 소수 사람들의 책임도, 한락연 한사람의 책임은 더더욱 아니다.

한락연의 죽음은 슬프지만 신강 미술사업은 한락연의 죽음과 함께 중단되여서는 안된다. 전국의 미술종사자들과 우리 살아있는 미술가들은 한락연을 추모하면서 신강의 미술사업을 우리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큰 결심을 내려야 한다!

(출처: 1947년 10월30일 《평화일보》에 게재)

륙기청: 20세기 50년대 사천미술학원 교수였으며 근대의 저명한 미술교육가이며 중국의 저명한 유화가이다.

/편역: 《길림신문》 리전기자

/사진: 민족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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