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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리광림, 장성진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12-28 13:35:10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5군

(동북항일동맹군 판사처, 녕안유격대, 수녕반일동맹군, 동북반일련합군 제5군, 동북항일련군 제5군)

1933년 봄 (녕안)로농의용군 결성

1933년 5월 목릉유격대 결성

1934년 3월 수녕반일동맹군 설립

1935년 2월 동북반일련합군 제5군 설립(2개 사와 3개 독립영으로 구성)

1936년 2월 동북항일련군 제5군 설립(3개 사로 구성)

1940년 2월 동북항일련군 제2로군 편입(제4, 제5, 제7, 제8, 제10군으로 구성)

동북항일련군 제5군—사급 이상 장령

리광림(李光林, 1910—1935): 중공길동국상무위원회 위원, 동북항일련군 제5군 제2사 정치부 주임

길림성 연길현에서 태여나 룡정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1929년 여름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하고 1931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9.18사변이 일어난 후 공청단녕안현위원회 서기로 임명되여 녕안을 중심으로 동경성, 화검구, 소목단, 중마하, 천교령, 예허남구 등지에 공청단조직을 내오고 청년들과 인민대중들 속에서 애국주의사상과 당의 항일구국 주장을 널리 선전하였으며 많은 애국청년들을 당의 주위에 묶어세웠다. 1932년 현당위원회의 령도하에 애국청년들을 조직하여 유격대와 구국군에 보냈으며 대중들을 동원하여 구국군을 지원하는 사업을 맡아하였다. 그 해 5월, 길동지구에서 리두를 총사령으로 하는 자위군과 왕덕림의 구국군을 중심으로 한 항일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자 공청단원들을 구국군에 파견하여 정치사상 사업과 군사지휘 사업을 담당하게 하는 한편 녕안진과 동경성, 마련하, 후지, 동하투, 화검구, 소목단 등지에 청년단지부를 내오고 항일투쟁을 활발히 전개하여 공청단만주성위원회의 찬양을 받았다. 1933년초, 일본관동군의 진공에 리두와 왕덕림이 싸울 신심을 잃고 쏘련으로 넘어가자 리연록과 함께 노력하여 녕안지대에 흩어져있던 구국군부대 보충퇀을 중심으로 구국유격군을 설립하였다. 이 해에 중공길동국상무위원회 위원이 되였고 1934년에는 공산주의청년단길동국 서기가 되였다.

1934년 봄, 중공길동국이 취소되자 중공만주성위원회의 순시원, 공청단만주성위원회 특파원의 자격으로 밀산, 벌리, 의란 일대를 시찰하면서 길동지구의 당과 공청단 조직 복구 활동에 종사했다. 그 해 10월, 중공대표단에서 파견한 오평을 만나 길동지구의 당조직을 정돈하고 중공길동특별위원회를 건립할 데 대하여 토론한 후 녕안으로 돌아와 중공길동특별위원회의 결성에 참가했다. 1935년 1월에 주보중의 지휘하에 있는 구국군 료길변구 류수부대와 중공녕안현위원회의 지도하에 있는 녕안유격대, 녕안로농의무대 및 구국군의 시세영부대, 부현명부대 그리고 녕안, 왕청, 안도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반일산림대, 의용군부대들을 련합하여 제5군을 결성하는 데 참여하였으며 2월에 동북반일련합군 제5군 제2사 정치부 주임이 되였다. 12월 24일에 녕안현 강남(江南) 산동(山東)툰에서 괴뢰군 1개 퇀의 겹겹한 포위를 뚫고 나가다가 전사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장령전》)

장성진(張成鎭, 1912—1939): 동북항일련군 제5군 제3사 참모장

1912년에 조선 함경북도에서 출생하였으며 동북항일련군 제5군 제3사 제9퇀 제1련에서 전사로 있었고 후에 제3사 참모장이 되였다. 1939년 12월, 흑룡강성 부금현 사강(沙崗) 동남쪽에 위치한 매요구(煤窯溝) 관본영(關本營)에서 전투중 희생되였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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