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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김학천, 리인근, 마덕산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12-28 14:20:25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6군

(탕원유격대, 동북인민혁명군 제6군, 동북항일련군 제6군)

△ 탕원반일유격대

1932년 4월 (탕원)반일유격대 결성

1932년 10월, 중국로농홍군 제33군 탕원민중반일유격중대 (탕원반일유격대) 결성

1933년 1월 탕원반일유격대 재건

1934년 8월 4일 탕원반일유격총대 편성

△ 해륜반일유격대(실패)[]

1932년 겨울 항일무장 결성

1934년 2월 반일유격대 무장 200여명으로 확건

1934년 가을 해륜반일유격대 편성

1936년 1월 동북인민혁명군 제6군 설립(6개 퇀으로 구성)

1936년 겨울 동북항일련군 제6군 설립(10개 퇀으로 구성)

1940년 4월 동북항일련군 제3로군 편입(제3, 제6, 제9, 제11군으로 구성, 후에는 제3, 제6, 제9, 제12지대로 구성)

동북항일련군 제6군―사급 이상 장령

김학천(金學天, 1902—1942): 동북항일련군 제6군 제1사 정치부 주임

원명이 김석주이며 조선 함경북도 경원에서 태여나 부모를 따라 길림성 훈춘현 이도구로 이주했다. 1929년에 흑룡강성 보청현 3구 반제동맹 책임자가 되였고 1930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중공보청현위원회 조직부 책임자가 되였다. 1931년에 보청현반일회 회장이 되여 대중조직 사업과 항일유격대 지원 사업을 하였으며 1933년에 지하당 공작원으로서 호림현에 파견되였다. 1937년 12월, 동북항일련군 제6군 제1사 정치부 주임이 되였다. 1940년말 일본군의 ‘토벌’을 피하여 쏘련 경내로 이동해서 1942년 7월 흑룡강성에서 소부대 정찰 활동을 하던중 전사했다. (자료 출처: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

리인근(李仁根, ?—1935): 탕원민중반일유격총대 참모장

별명이 장추(張秋)이고 중공당원이며 황포군관학교 출신이다. 일찍 최용건과 함께 라북현 오동하촌에서 모범학교를 꾸리고 청소년들에게 혁명도리를 선전하였으며 조직의 파견을 받아 타곳에 가 중공기층조직 건설에도 참가하였다. 1933년 1월, 중국로농홍군 제33군 탕원민중반일유격대 참모장이 되여 하운걸(夏云杰), 대홍빈(戴鴻賓) 등과 함께 조기 항일련군 밀영근거지를 개척했다. 1934년 8월, 탕원민중반일유격총대 참모장이 되였다. 1935년 3월, 민생단원으로 몰려 처결당하였다. (자료 출처: 《흑룡강항일투쟁인물록》, 《동북항일련군명록》)

마덕산(馬德山, 1911—1938): 동북항일련군 제6군 제1사 사장

원명은 김승호(金乘浩)이고 1911년 12월 30일 상해에서 태여나 1927년에 부모를 따라 흑룡강성 라북현의 오동하 복흥촌으로 이주했다. 1930년에 청년단에 가입했으며 중공탕원현위원회에서 꾸린 제1기 군사훈련반에 참가했다. 1931년에 9.18사변이 발발한 후 항일무장투쟁에 뛰여들었으며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32년에 학립 새 농장으로 옮기고 고기잡이를 엄호로 삼아 지하항일공작을 하였다. 1933년 11월, 탕원유격대가 결성되자 사무장이 되여 부대의 후근 사업을 책임졌다. 1935년 10월, 선후하여 탕원 태평천경찰서와 량자하금광을 기습하는 전투에 참가했다. 1936년 2월, 당조직의 파견으로 동북항일련군 군정간부학원에 가서 3개월 동안 학습하였다. 졸업 후 선후하여 동북인민혁명군 제6군 제4퇀 련 지도원, 제4퇀 정치부 주임이 되였다. 1937년 2월, 제6군 제1사 사장이 되였다. 사장이 된 후 부대를 거느리고 부금, 보청, 동강 등지에서 항일유격근거지를 개척하며 화천현 화룡구, 부금현 쟈신즈 등에서 적의 유생력량을 소멸함으로써 제6군의 무기 장비를 대폭 개선하고 대오를 확대시켰다. 1937년 9월, 서광해와 함께 중공의란현당위원회의 배합하에 위만군 제38퇀의 2개 련의 의거를 주도했고 동시에 의란현 동부지구의 한간지주 왕치안 위자위단의 무장을 해제시켰다. 이 시기에 이르러 제1사의 병력을 4개 퇀으로, 근 2,000명으로 확대시켜 부금, 보청 일대에서 항일주력부대로 되게 하였다. 1938년 3월 8일, 제1사를 인솔하여 제5사와 함께 수빈삼구(綏濱三區)의 괴뢰경찰서를 습격하여 괴뢰경찰들과 자위단의 무장을 몽땅 해제시켰다. 3월 29일, 삼간방(三間房)변방경찰대를 습격하는 전투에서 전사했다. (자료 출처: 《흑룡강항일투쟁인물록》, 《동북항일련군장령전》)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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