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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88] 로년 3부곡과 〈너도 쌍쌍 나도 쌍쌍〉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1-10 15:58:38 ] 클릭: [ ]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 -88](허동철편4)

노래 〈오래오래 앉으세요〉가 많이 불려지고 인민들의 사랑을 받게 되자 많은 사람들로부터 “어머니는 ‘오래오래 앉으세요’라고 노래하는데 왜 아버지는 노래하지 않는가”고 문의하는 말을 여러번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래오래 앉으세요 〉 이 노래의 ‘어머니'는 ‘어버이'의 대명사로서 아버지, 어머니를 모두 대표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말을 롱담으로 받아들이며 귀밖으로 흘러보냈습니다.

기자들의 취재를 받고 있는 작사가 허동철.

그런데 어느 하루는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 리송영 국장이 저를 보고 “우리 아버지께서 ‘야, 송영아, 왜 어머니는 ‘오래오래 앉으세요’라는 노래가 있는데 아버지는 왜‘오래오래 앉으라’는 노래가 없느냐'고 하며 눈물을 흘리더라."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아버지를 가송하는 노래를 써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지은 노래가 〈로년을 잘 보내시라〉입니다.

1979년 연변인민방송국 방송일군들과 함께(앞줄 왼쪽 세번째 리송영 국장 뒤줄 오른쪽 두번째 허동철).

이 노래를 지을 때는 중앙으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지도부 세대교체가 한창인 시기인지라 등소평동지가 솔선적으로 일선에서 물러서면서 가시덤불 헤치며 사선을 넘나들었던 건국공신들을 2선으로 이끄는 모습도 떠올리게 되였습니다. 전설의 장군 남경사령부 허세우 사령원은 오각별이 달린 모자와 군복을 벗어 놓으면서 눈물까지 흘렸다고 합니다. 그러니 건국공신들과 로선배들은 이렇게 중국의 새시대 현대화건설에서 자리를 내주면서 또 새로운 기여를 한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것을 념두에 두고 〈로년을 잘 보내시라〉는 가사를 지었습니다.

이 노래도 방룡철선생의 작곡으로 되였습니다. 이 노래는 구련옥가수가 불러서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이 노래에서 "로년을 잘 보내시라"는 구절의‘잘'자 가사억양과 곡조가 신통하게 맞아떨어져 많이 흡족했습니다. 마치 〈우리네 자랑 꾀꼴새〉에서 "재청한다네"의 "재청"이라는 노래말 억양과 노래가락음조가 잘 어울린 것처럼 말입니다. 지난해인가 연변대중음악협회에서 공연을 할 때에도 구련옥가수가 또 다시 이 노래를 불러 공연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했다는 사실을 길림신문 기사를 보고 알게 되였습니다.

〈로년을 잘 보내시라〉를 부르는 구련옥 가수

저는 드문드문 마작실에도 드나드는데 마작을 치면서 “로년을 잘 보내시라”고 흥얼흥얼 부르는 노래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연집강가를 지날 때 건강관리센터에서 흘러나오는 “로년을 잘 보내시라”는 노래소리를 가끔씩 듣기도 하면서 이 노래가 군중속에 뿌리를 깊이 박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최근에 빵빵 음악제작실에서 연변가무단의 가수 김선희가 부른 이 노래로 광고를 했는데 구련옥이 부른 노래와 또 다른 맛으로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요청무대 담당편집인 류기영의 말에 의하면 요청무대 탄생 30주년 기념 요청음악통계에서 〈오래오래 앉으세요 〉가 첫자리를 차지하고 또 해외조선족들이 제일 많이 요청하는 노래는 〈로년을 잘 보내시라〉였습니다.

제가 작사를 한 노래가운데〈명절놀이〉,〈오래오래 앉으세요〉,〈첫날의 노래〉가 민속소재로 된 3부작이라면 로인을 소재로 하는 노래도 3부작이 있습니다. 〈오래오래 앉으세요〉와 〈로년을 잘 보내시라〉외에 〈한 삼백년 살아볼가 한 오백년 살아볼가〉가 있습니다. 이 〈한 삼백년 살아볼가 한 오백년 살아볼가〉는 자치주 성립 60돐을 맞으면서 연길시당위와 인민정부가 발기한 대중가요응모에 응해 지은 노래입니다.

방룡철 작곡가의 아들 방권일 교수(앞사람)를 찾아 새로운 창작을 시작하는 허동철 작사가.

저는 가사를 써가지고 방룡철선생의 장남 방권일을 찾아갔습니다. 방권일선생은 그때 북경음악대학원을 졸업하고 중앙텔레비죤방송국 음악편집으로 일하다가 연변대학예술학원에 와 교편을 잡고 있었습니다. 방룡철선생의 생전에는 그를 자주 만났는데 방선생이 세상 뜬 후에는 그가 북경에 가 공부를 하다 보니 자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미 학창시절에 피아노독주조곡〈장고춤〉(1등상), 민악5중주 〈더듬어〉(寻) 등 무게있는 작품을 써 전국경연에서 창작상을 받으며 두각을 내민 천부적인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지금 중국음악가협회 리사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가 학창시절에 쓴, 생전 들어보지 못한 현대풍격의 기악곡(테이프) 을 듣고 어쩌면 아버지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구나 싶어 크게 놀란적 있습니다. 그래서 크게 기대하고 그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방권일선생은 워낙 가요창작을 할 생각은 없었으나 모처럼 이렇게 찾아까지 오셨으니 꼭 쓰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써 갖고 간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팔청춘 꽃나이 지났갔다 한탄마오

칠십청춘 닐리리 노래하면 어떻소

궂은 일은 맘속에서 모두다 가셔내고

자손들의 축복 속에 함박꽃 웃음짓고

한 삼백년 살아볼가 한 오백년 살아볼가

 

달다가도 쓴 것이 인생이였던가요

울다가도 웃는 것이 인생이였던가요

좋은 일만 머리속에 그림을 그려가며

자손들의 축복속에 함박꽃 웃음짓고

한 삼백년 살아볼가 한 오백년 살아볼가

여기서 ‘함박꽃 웃음 짓고’는 역시 우리 민족이 함박꽃을 사랑하고 또 환한 웃음을 함박꽃웃음이라고 하기에 로인들의 즐거운 모습을 함박꽃에 비유하여 쓴 것입니다. “달다가도 쓴 것이 인생이였던가요/ 울다가도 웃는 것이 인생이였던가요” 하는 이 구절에서는 희로애락의 인생철리를 말하고 ”궂은 일은 맘속에서 모두다 가셔내고” “좋은 일만 머리속에 그림을 그려가며”에서는 건강장수의 비결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재래민요 〈한 오백년〉에서는 “한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아무렴 그렇지 그러구말구/ 한 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라고 한탄합니다. 그러니 민요 〈한오백년〉은 신세타령이라고 한다면 이 〈한 삼백년 살아볼가 한오백년 살아볼가〉는 흥타령이라고 해야겠지요.

연변가무단 안룡수, 마복자가수.

이 노래는 연변가무단의 안룡수, 마복자가수의 2인창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60돐 경축무대에도 오르고 가요응모 3등상을 받아안았습니다. 그리고 연변텔레비죤방송국 9.3기간 〈매주일가〉로 방송되였고 사회반응들이 괜찮았습니다.

얼마 뒤 불로송합창단 김락춘 음악교원이 〈한 삼백년 살아볼가 한 오백년 살아볼가〉를 합창무대에 올렸는데 한번 와 들어보라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몇십명 되는 중로년들이 4줄로 서서 악보를 손에 들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참으로 마음이 흐뭇해났습니다.

저는 이 노래는 ‘로년3부작'에 들어갈 만한 노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자치주 성립 60돐 응모작품 3등상을 받았고 연길시청춘음악교실 음악교재에도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연변텔레비존방송 요청음악을 책임진 리춘미편집한테서 이 노래를 요청하는 청중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말을 전해들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노래 〈오래오래 앉으세요〉와 〈로년을 잘 보내시라〉는 젊은 세대들이 로인들에 대한 축복의 노래로 되고 〈한 삼백년 살아 볼가 한 오백년 살아볼가〉는 또 젊은이들의 축복에 대한 로인들의 답복의 노래로 되여 무척 흐뭇합니다. 그리고 신통하게도 앞의 두곡은 방룡철선생과 합작하고 뒤의 한곡은 방룡철선생의 장남 방권일선생과 합작한 것이여서 또 너무 기쁘고 신기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딱 맞고 똑 떨어지는가 싶기도 합니다.

백발의 로년을 맞은 작곡가 동희철(오른쪽)과 작사가 허동철.

40년대 말부터 50년대 사이에 서방의 무도가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전에는 쏘련의 댄스가 들어와서 우린 소학시절 민족춤을 추던 형식으로 손목을 잡고 빙빙 돌면서 댄스를 췄습니다. 그런데 50년대에 들어오면서 무도가 흥행하기 시작하였는데 어지간한 청춘남녀들이 다 무도장에 다녔습니다.

80년대에 들어오면서는 청춘남녀 대신 중로년들의 무도가 흥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대형무도장도 생겨났습니다. 이런 사회문화환경을 배경으로 하여 쓴 것이 〈너도 쌍쌍 나도 쌍쌍〉입니다. 그때 당시는 비록 중로년들이 무도장의 주인공이였지만 저는 50년대 청춘남녀들이 무도장의 주인공이 되던 것을 80년대에 옮겨다 놓고 이 가사를 썼습니다.

구락부의 전등불 황홀한데

춤곡도 쿵자짜 성수나는데

고수머리 우쭐 앞에 나서니

쌍태머리 살짝 마주나서네

랄랄랄랄랄라 다정한 동무

랄랄랄랄랄라 손에 손잡고

즐거운 청춘 꽃피는 희망

//춤을 추며 노래하여라 //

 

옷고름도 나풀 춤을 추는데

너도 나도 쌍쌍 흥이 나는데

얌전한 아가씨 지칠줄 몰라

고수머리 정말 신이 났구나

랄랄랄랄랄라 다정한 동무

랄랄라라 손에 손잡고

즐거운 청춘 꽃피는 희망

//춤을 추며 노래하여라 //

저는 무도라는 이런 서양문화에 우리 조선족의 문화풍속을 접목해 보려고 시도하고 이 가사를 썼습니다. 이리하여 ‘옷고름도 나풀 춤을 추는데/ 쌍태머리 살짝 앞에 나서네’등 구절을 꾸며넣게 된 것입니다.

이 노래는 1986년 공청단주위과 주총공회 및 여러 신문, 방송, 출판 단위와 작가협회, 음악가협회에서 련합으로 가진‘연변청년들이 즐기는 노래 선발’활동에서 전 주 7,920여개의 단지부 (단소조)와 7만여명의 여러 민족 청년(해방군 포함)들이 투표를 하여 뽑은 13수의 조선족가요중의 한수로 되였습니다.

그 13수의 노래 속에는 제가 작사한 노래 세수가 들어 있었는데 〈오래오래 앉으세요〉와 〈형제자매들 한자리에 모였네〉,〈너도 쌍쌍 나도 쌍쌍〉입니다. 〈너도 쌍쌍 나도 쌍쌍〉도 역시 연변인민방송국 〈내가 즐기는 노래〉상도 받아안았습니다.

글 구성/ 김청수기자

사진 영상/ 김성걸 김파 정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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